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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읽기에서 지혜문학의 문제점

신재구 |2006.09.03 21:55
조회 71 |추천 1

구약성경읽기에서 지혜문학의 문제점

 

 

1. 구약성경읽기에서 지혜문학의 문제점: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다가 소위 지혜문학이라고 불리는 욥기, 잠언, 전도서등에 이르르면 자주 이러한 생각을 하게된다. 즉, 이런 말씀은 불경에서 본 것같기도 하고 논어같은 동양의 고전에서 자주 대할 수 있는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들을 생각해보자.

 

"어리석은 자는 일생 동안 지혜있는 사람을 섬기면서도 진리를 알지 못한다 숟가락이 온종일 음식을 뜨면서도 끝내 짠지 신지 모르는 것과 같다." (出曜經 제1장 학문, 제6 자치품 735)

 

"슬기로운 사람은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지만 어수룩한 사람은 고집을 부리고 나아가다가 화를 입는다." (聖經 잠언 27:12)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아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子曰; 不患 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論語, 學而篇 16)

 

이 문제는 자칫 '결국 세상의 고등종교는 다같은 한 길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라든가, '성경의 내용이 인간의 성찰을 통하여 얼마든지 경험되는 것들을 기록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면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는 등의 매우 현실적인 기독교변증적 질문들을 야기시키기도한다.

 

구약성경을 차분히 읽어내려온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익숙해있던 이스라엘의 대(對) 하나님관계라든지,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국가적인 사건 등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매우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의 지혜를 기록한 말씀들에서 다소 긴장을 이완시키기도하고 새로운 맛을 볼 수도 있겠으나 웬지 지금까지의 맥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으리라. 사실 저 유명한 G Vos의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에 보면 이 지혜문학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이 성경신학을 서술해나가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지혜문학서가 구약성경의 전체 맥락에서 어느정도 이탈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하겠다.

 

 

 

2. 지혜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지혜문학이란 인간의 일상경험을 통하여 생애를 관조하고 삶에 대한 지혜를 모아놓은 고대의 문서들에 붙인 통상의 명칭이며 신적 계시라든지 신의 주도권을 말하기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 그리고 인간의 주도권에 호소하는 바가 그 특징을 이루고 있는 글들이다.

 

즉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지혜의 말씀들과 그 맥을 같이하는 유사한 문서들이 고대 근동지방(Ancient Near East) 즉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등지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잠언 30장이나 31장은 이스라엘의 저자가 아닌 다른 이방인에 의한 것이라고 소개되어있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유대의 전통에서는 욥기, 잠언, 전도서 그리고 외경의 솔로몬의 지헤서, 집회서등에 대하여 지혜문학이라고 부른다. 한편 지혜문학적인 풍모를 가지는 글들은 꼭 그와같은 지혜문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37, 신4:5-8 왕상 3:10-12, 단12:3이하 또 무엇보다도 창 3장과 같은 글들은 지혜문학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글들이다.

 

 

3. 구약성경신학과 지혜문학:

 

앞서도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지혜문학을 대하면서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대한 질문, 즉 성경에서 보는 일반적인 말씀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계시(self-revelation)였는데 지혜문학은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관조와 경험의 축적에 의한 지혜를 의미할 수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된다. 이 질문은 사실 지혜문학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있다.

 

G Goldingay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는데 지혜문학은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들 즉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여 그 신학적 중심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구속(救贖, redemption)에 있었다면 지혜문학은 창조(creation)라는 것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론 몇가지를 끌어낼 수 있다.

 

      3.1. 창조는 단지 지혜문학에만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세의 글이나 선지서에서 창조라는 것이 강조되어있는 것같지는 않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구속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신 것이라고 볼 때 지혜문학만이 유독 전혀 다른 신학적 구심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3.2. 지혜문학의 (특히, 잠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어 나오며 전도서에서는 결론부분인 12:30에서 나오지만 전체의 흐름을 완결적으로 주도하는 만큼 이 경우에는 횟수가 중요하지 않다. ) 반복되는 구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the fear of the Lord)'은 잠언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사상이라기보다는 이미 모세의 신명기에서도 강조된 바있는 언약백성의 태도였던 것이다. (신명기 1-14장)

 

 

 

4. 지혜문학의 특징:

 

      4.1. 지혜문학에서는 여호와라는 표현은 나오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든지 '우리 조상(열조)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때떄로 하나님이라는 표현보다는 창조자, 지은이(전도서 1장, 잠14:31, 15:5)등으로 지칭된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하겠다. 욥기를 보면 욥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곳은 이스라엘의 어느 곳이 아니라 동방(the East)의 우스(Uz: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y seires의 '욥기'를 쓴 F I Anderson은 이곳을 다메섹 남부의 Hauran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에 대한 기타의 제안에 대하여 IDB를 보라. )라는 곳이었다.

 

 

      4.2. 지혜문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계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경은 아닐찌라도 그렇다고해서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관조에 빠져들어가는 것이기보다는 창조신학에 터를 둔 '여호와 경외내지는 신뢰사싱'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현자(賢者)들은 지혜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있었고 (잠3:11-12, 16:1,2,9) 삶의 신비내지는 애매성을 지혜가 모두 꿰뚫어 알 수 없음을 인정한다. 여호와의 뜻과 간섭하심이 삶을 다스려간다는 것에 대한 인정을 볼 수도 있다. (잠언 16:1,2, 9)

 

 

      4.3. 지혜문학은 사실 인생을 어떻게하면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는가를 말하는 인생독본과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이면에서 이 글들은 매우 현실적인 삶의 안내를 하고 있다. 만일 모세오경이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으면 잠언은 매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음녀가 외갓남자들을 유혹하는지 그 유혹에 빠진자의 결국이 어떠한 지를 대단히 실감나게 현실적으로 가르쳐주고있다.

 

 

      4.4. 지혜문학의 인간관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일 뿐 아니라 지혜로와서 이 세상에서 위험을 피하여 자신의 삶을 매우 지혜롭고 규모있게 다스려가야 하는 책임적 자아로 그려놓고 있다.

 

 

      4.5. 구약성경이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의 구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것 즉 창세기의 초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인간과 죄, 하나님의 관계와 같은 것을 말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면에서 지혜문학은 구약성경의 주된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다.

 

 

      4.6. 우리가 지금껏 구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했는가를 보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하여 너무도 자주 인간역사의 명암을 절절히 읽어보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지혜문학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그 핵심에 다른 성경의 부분이 말하려던 것과 같은 것을 다만 다른 강조점과 양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해야겠다. (끝)

 

 

© 신재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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