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고교생 열사 심광보를 아시나요?
90년 참교육 외치며 분신...2일 충주서 16주기 추모행사
이완구(toy2) 기자

▲ 심광보 열사 영정(왼쪽)과 유서 중 일부
ⓒ 이완구
1990년 9월 7일 오후 2시 20분. 충주시내 한복판 3층 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농민이여, 농민의 깃발을! 노동자여, 노동의 횃불을!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을 외치며 투신자살한 17살 고등학생 열사 심광보가 있었다.
▲ 심광보 열사가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투신자살한 건물
ⓒ 이완구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당시 명문고인 충주 C고 2학년 때 휴학하는 과정에서 '우리 학교에 전학 오려면 몇 천 만원을 낸다. 휴학계를 내면 다른 학생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생기지 않으니 자퇴를 해라', '가난해서 못 다닌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지금 휴학하면 못 다닌다. 나갈래?'라는 말들로 학업 포기를 종용받아온 심광보는 그런 학교를 '무서운 학교'라고 표현했다.
이런 학교의 모습들은 그에게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고, 휴학 중 지하철 신문판매 및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식은 '버림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생을 바치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70년대 전태일 열사가 우리 전 사회에 노동현장의 어려웠던 상황을 죽음으로 일깨운 의미만큼이나, 80년대 말 교육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었을 때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참교육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심광보에 대한 의미는 크다.
그러나 그가 교육문제의 해결을 갈망하며 해결책으로 여겼던 전교조에서조차 2004년이 되어서야 참교육상이 수여될 정도로 그는 잊혀졌었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심광보 열사 16주기 추모행사 거리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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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행사 중 벌어진 부네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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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심광보 열사 기념사업회(회장 권영국)'가 몇몇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족되어 심광보를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 심광보 열사 어머니
ⓒ 이완구
이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추모행사를 주최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받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2일 오후 6시 심광보가 분신자살한 자리(충주시내 국민은행 건너편)에서 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작은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에서 그의 동생과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니의 소원은 추모행사 참가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광보가 공부했던 교실에 사진가지고 가서 공부했던 자리, 거기 가서 추모제를 하고 싶다. 그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영정사진 가지고 학교 한 바퀴 돌아보아야 내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몸에 불을 붙이고 뛰어내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갈망했던 학교의 모습이, 지금의 학교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