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판이 개싸움장이 되고 있다!
한국씨름연맹(총재 김재기)은 4일 오후 2시 상벌위원회를 열고 전설의 천하장사 이만기 교수를 영구 제명시키는 충격적인 징계조치를 내렸다. 이로써 그 동안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가며 갈등을 빚어온 한국씨름연맹과 씨름황제간의 관계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씨름연맹은 이 교수가 ▲한국씨름연맹을 부정하고 유사단체인 한국민족씨름위원회 발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역대 총재 및 현 김재기 총재 등의 퇴진에 앞장섰으며 ▲김천장사대회(2005년 6월) 때 유인물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했고 ▲언론 매체 인터뷰를 통해 연맹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을 했다는 등을 들어 징계규정 제15조의 중징계를 내리게 된 사유로 꼽았다.
민속씨름이 83년에 출범한 이래 선수 출신의 영구제명은 이교수가 처음인데다 이날 조치가 상궤를 벗어난 보복성이 커 보인다는데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 교수가 연맹에 관여하고 있지 않은 외부 인사임에도 불구, ‘씨름관계자’로 간주해 징계의 칼날을 들이댔다는 점은 상식 밖이며, 사실상 명예훼손 말고는 실질적인 제명효과도 없어 보인다. 그걸 의식한 탓인지 영구제명후 그의 천하장사 기록까지 씨름판에서 말소시키자는 발언까지 난무하고 있다. 거대 집단이 일개 힘없는 개인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영구제명)을 가하는 것도 부족한지 스스로의 역사까지 날조(천하장사기록 말소)하겠다는 식이어서 정당성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에 대해 이만기 교수 본인은 물론 민속씨름 1세대인 씨름동우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여론도 씨름연맹에 대해 비난일색이다. 이 교수는 이날 상벌위에서 “언론 인터뷰를 통한 연맹비판은 몰락하는 씨름의 회생을 위한 견해를 밝힌 것이며 일부는 현 상황을 설명한 것이 기사화된 것이다. 김천대회의 총재비방 유인물과 한민족씨름위원회 창설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2005년 김천장사대회 유인물 배포 사건은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으로 곧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며 한국민족씨름위원회 발족에는 발기인 300명 중 하나였을 뿐 창립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9월 4일 CBS라디오 파워스포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프로씨름단의 해체를 막고 젊은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마케팅 방안을 마련하자고 한 것이 비판이라면 앞으로 씨름계 앞날에 대해 누가 옳은 소리를 할 수 있겠냐"며 착잡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씨름황제' 이만기(42) 인제대 교수가 한국씨름연맹(총재 김재기)에서 영구제명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4일 오후부터 한국씨름연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4일 오후부터 글이 올라오기 시작해 밤 11시까지 200여개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연맹을 비난하고 이만기 교수를 옹호하고 있다.
"이제껏 연맹에서 어떻게 했기에 민속운동인 씨름이 이렇게까지 몰락했나“, "왜 사람들이 씨름을 안 보는지 알게 해 준다", "차라리 씨름연맹을 영구제명해라", "씨름연맹을 해산하고 사단법인 대한씨름연맹을 새로 발족하라”는 등 씨름연맹을 질책하는 주장들이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 민속씨름 융성기에 천하장사에 10차례나 오르는 등 최고 스타이자 한국씨름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이 교수는 은퇴 이후에는 TV 해설위원과 대학교수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모래판과 인연을 이어 왔다. 그러나 2004년 12월 프로팀인 LG투자증권 씨름단이 해체되고 2005년에는 TV 중계가 무산되면서 대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한 데 이어 올해에는 신창건설마저 해체되는 상황에서 이만기씨가 씨름연맹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양측의 골이 깊어졌다. 이만기씨는 "씨름연맹이 프로팀의 해체를 막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지고 김재기 총재는 물러나야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 같은 대립은 2005년 6월말 열린 김천대회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이만기를 비롯한 민속씨름동우회 회원들은 대회장에서 김재기 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결국 씨름연맹은 이만기씨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만기씨가 연맹을 부정하고 유사단체인 한국민족씨름위원회를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의혹을 갖게 된 것이며, 이 두 가지 이유가 중요한 징계 사유가 되었다. 상벌위원회에 참가했던 한 위원은 "연맹의 해명 요구에 대해 이만기씨가 부인으로만 일관했을 뿐 아니라 연맹의 품위를 실추시킨데 대해 뉘우침도 없었다"고 말해 감정의 골이 돌이킬 수 없이 깊어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욱이 씨름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만기씨가 보유하고 있는 민속씨름 장사 타이틀에 대해 "오늘 상벌위원회에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이 문제도(타이틀 박탈) 예의 주시하겠다"고 말해 상황에 따라 추가 징계가 논의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민속씨름동우회 회장인 이 교수는 “나를 씨름관계자로 여긴다면 씨름이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그 동안 동우회 등을 불러서 씨름 발전을 위해 왜 단 한 번이라도 얘기한 적이 없었느냐. 내가 연맹의 자리에 무슨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씨름이 잘되라고 한 얘기를 이런 식으로 몰아붙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영구제명에 대해 “당장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예상했던 일이므로 뜻을 같이하는 민속씨름동우회 를 소집해 응분의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번 징계를 둘러싸고 앞으로 모래판에 큰 회오리 바람이 일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씨름이 인기를 잃어가면서 대표적인 씨름선수들이 씨름판을 떠나고 있음에도 연맹은 이렇다 할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은 많은 불만 내지는 실망을 표했던 것이 사실이다. "(후배들의 격투기 진출은) 착잡하지만 씨름판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프로씨름선수가 씨름대회를 통해 적절하게 보상을 받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누구도 씨름선수의 격투기 진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최홍만, 이태현 등 씨름스타들의 격투기 진출을 씨름계는 서운하지만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강호동의 연예계 진출을 막을 수 없었고 맞기 않았듯이 말이다. 이런 현상은 씨름의 인기하락에 따른 투자부재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연맹의 무능력과 무대책이 문제라는 내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씨름연맹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따라서 영구 제명이라는 초강수를 둔 연맹의 조치를 이해할 수 있는 팬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도 보호받는 게 상식이거늘 내부비판자까지 퇴출시키는 행태는 전형적인 독선과 전횡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왕년의 씨름황제이자 민속씨름 스타를 영구제명한 것도 모자라 그의 천하장사 기록까지 말소하니 어쩌니 하는 망발은 씨름의 역사까지 날조하겠다는 것이어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고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동안 내부 갈등과 대회 중단 때문에 파행 운영됐던 민속씨름이 최근에서야 지자체팀들과 함께 판을 다시 벌이며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를 징계해 분위기 쇄신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난 일고 있음은 물론, 단순한 내분 정도가 아니라 씨름계가 두 조각나는 분열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영원한 씨름인으로 남아 씨름부활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씨름동우회와 논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의 대응책을 밝힐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가 회장으로 있는 씨름동우회는 천하장사와 체급장사 출신의 씨름인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어서 씨름연맹 못지않게 영향력이 큰 자생적 조직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거대집단이 힘없는 개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더 큰 상처를 입고 몰락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어 보인다.
대중은 그런 극적인 드라마를 사실 즐기는 경향이 있다. 사실 씨름은 K-1등의 격투기에 비해 단조롭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고 특히 천하장사가 점차 기술보다는 체격이나 몸무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기술씨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관중이 떨어지는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인기를 먹고 사는데 익숙해진 천하장사를 중심으로 씨름선수들이 연예인이나 격투기 선수로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억지로 막는다고 막아질 일이 아닌데 의리를 강조하고 계약으로 묶어 놓으려고만 한다. 적어도 그런 위기감을 느꼈다면 씨름을 보다 화끈하게 할 수 있는 룰을 개정하든가, 일본의 스모처럼 국기로 지정하여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했어야지 은퇴한지 오래되었거나 씨름실력도 개뿔 없는 인간들이 스스로 개싸움을 벌여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하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