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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과 제갈양의 비교.

김영종 |2006.09.06 16:49
조회 105 |추천 0
이순신 장군 이야기와 한국과 중국의 역사 비교를 하는 글이 많은데요.


그래서 이걸 연결해서 한국의 대표적인 위인 이순신 장군과 중국의 대표적인 위인 제갈량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순신 장군과 제갈량을 비교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습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이순신 장군의 경우는 고금에도 그 짝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제갈무후와 같은 수레를 태워


달림직하다라고 했고 조선후기의 학자는 이순신 장군이 제갈양보다 낫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요.


이순신 장군 개인은 제갈양을 무척 존경한 것으로 압니다. 시에서도 제갈양의 북벌을 높이 평가했고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자신의 운명을 걱정했을 때 나는 충성이나 인품이나 능력 모두 제갈무후만 못하다라고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공정하게 이순신 장군과 제갈양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통점.

 


1. 54세의 나이로 사망함.

 

 

2. 시호가 충무공.

 

 

3. 자기 나라 역사상 최고의 충신으로 기록되고 있음.(단순히 임금만을 위하는 충신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고


공이 가장 뛰어난 충신.)


 

4. 죽을 때 동쪽의 대장성이 떨어졌음.

 

 

5. 극도로 어려울 때 신선의 도움을 받았음.(제갈양은 소설이지만 삼국지에서 독룡동 돌파때 남만의 독룡동 산신령에게


도움을 받았고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초기에, 명량해전 전날에 신령으로부터 이기는 방법을 들었다고 함.)

 

 

6. 신무기 제작에 뛰어났음. (이순신 장군-거북선,조총을 새로 개량해 일본의 조총을 능가하는 조총을 만듬.  제갈양-


목우,유마를 만들고 십시연노를 만듬.)


 

7. 새로운 진법을 창안함.(이순신 장군-육상에서만 쓰던 학익진을 해전에 응용함. 제갈양-팔진도를 창안함.)

 

 

8. 지휘 스타일이 엄장으로 같음.(엄장-엄한 장수.)

 

 

9. 시를 지은 것이 있음.

 

 

10. 명문장을 남겼음.(이순신 장군-난중일기, 제갈양-출사표.)

 

 

11. 전쟁터에서 사망함.(이순신 장군-전사. 제갈양-전쟁터에서 병사.)

 

 

12. 청백리였음.(이순신 장군-가족이 가난했고 본인도 자신의 거처에서 이불과 책상,책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제갈양-최초로 재산공개를 한 사람. 뽕나무 800그루에 밭 50두락과 집 한채가 전재산. 후손에게 공신전이나 재물을 주지


말라고 했음. 이걸로 후손이 밥을 벌어 먹을 수 있게. 그리고 재산조사를 해서 하나도 틀림이 없었음.)

 


13. 일부러 적을 놓아준 적이 있음.(이순신 장군은 어느 전투에서 왜군을 지나치게 몰아붙여서 일본군이 육지로 상륙해


백성들을 괴롭힐까봐 일부로 왜군을 놓아준 적이 있음. 제갈양-유명한 칠종칠금.)

 


14. 아들이 전사함.(이순신 장군-이순신 장군의 아들 면이 일본군과의 전투중 사망. 제갈양- 사후에 아들 제갈첨과 손자


제갈상이 등애와의 전투에서 사망함.)

 


15. 여자의 유혹을 뿌리친 적이 있음.(이순신 장군-꿈속에서 어느 기생이 이순신 장군을 유혹했는데 이를 뿌리쳤음.


제갈양-아내인 황월영이 머리가 비상하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이를 걱정해서 결혼 첫날밤에 남편을 시험해 볼 생각으로


야한 복장을 한 기생을 대신 신방으로 들였는데 제갈양이 크게 노해 기생을 뿌리치고 아내를 맞아들였음.)

 

 

16. 후대에 큰 영향을 줬음.

 

 

 

17. 적에게도 존경을 받았음.(이순신 장군은 일본에서 특히, 도고 제독에게서 제갈양은 그와 싸웠던 사마의에게서 천하의

 

기재라는 칭찬을 들었음.)

 

 

 


차이점

 


1. 이순신 장군은 제갈양과 달리 숱한 핍박과 의심을 받았음.

 

2. 출장입상이 가능하나 이순신 장군은 제갈양과 달리 출장입상의 기회가 없었음.(출장입상-밖에 나가면 장군이 되고 안에


들어오면 재상이 됨. 우리나라에서 연개소문과 최영이 이랬다고 함.)

 

3. 이순신 장군은 무인이고 제갈양은 문인.

 

4. 제갈양과 달리 이순신 장군은 특별히 눈에 띄는 옷차림이나 다른 패션이 없었음. (제갈양의 트레이드 마크- 윤건,학창의,


백우선,사륜거.)

 

 

5. 이순신 장군은 제갈양과 달리 라이벌이 없었음.(원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수군에서 라이벌이 없었다는 말.)

 

 

우열비교.

 


1. 순수성: 이순신 장군의 승리. 이순신 장군은 제갈양과 달리 관직생활중 숱하게 핍박과 의심을 받음.


그리고 제갈양은 자신이 중국을 통일하면 자신이 매우 특별한 대접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그런 생각이 없었음.)

 

2. 여자문제: 제갈양의 승. 이순신 장군은 첩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 제갈양은 첩이 없었음. 게다가 아내인 황월영은


매우 못 생긴 걸로 유명한데도 제갈양은 평생 황월영을 사랑했음.

 


3. 재산문제: 이순신 장군의 승리. 이순신 장군은 매우 가난했고 제갈양은 그래도 뽕나무 8백 그루와 밭 50두락의 재산은


있었음.

 

 

4. 근면성: 제갈양의 승. 제갈양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반 말단 장수의 일까지 모두 다 한 것으로 유명함.


곤장 20대 이상의 일은 손수 처리했음. 그래서 부하들이 일의 양을 줄이라고 했음. 출사표에도 나오지만 유비로부터


명을 받은 후로는 밥맛이 없었다고 하고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았다고 함. 국궁진력이라는 이야기가 제갈양에게서 나옴.

 

몸을 굽혀 힘이 다하여 쓰러져 죽을 때까지 나라에 충성한다는 말.

 

 

5. 식사량: 이건 아무래도 제갈양의 승같음. 제갈양은 하루에 먹는 밥이 몇 수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함.


이순신 장군은 상세한 것은 모르지만 유독 밥을 많이 먹는 한국인의 습관을 볼 때, 또 188cm에 120kg의 거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밥을 많이 먹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함.

 


6. 싸움실력: 이건 당연히 이순신 장군의 승리.

 


7. 능력: 이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각자 판단하시길 바람.


제갈양이 나은 부분은 이순신 장군은 다스리는 지역이 전라도,경상도,충청도에 한정이 되어 있었고 그나마 경상,충청도 내륙까지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려움. 전라도라면 내륙까지 장악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경상,충청 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움. 그러나 제갈양은 촉의 전지역을 다스렸고 승상과 대장군을 겸했음. 삼도수군통제사의 벼슬을 가지고 활동했던


이순신 장군보다는 더 많은 일을 처리했을 것으로 보임. 전쟁에서도 제갈양은 사마의,가후(장량과 진평에 필적한다는 평을 들은

 

사람.),순욱(조조가 나의 장자방이라고 한 사람.),정욱,유엽(발석거를 만든 사람. 일종의 투석기.)등의 뛰어난 인물이 많았는데

 

비해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겨룬 사람중에(일본 수군중에서 명장이 없었다는 말.)라이벌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없었음.


무기제조에서도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만들었지만 어쨌든 고려 말~조선 태종때까지


거북선이 존재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기 때문에 제갈양이 목우,유마,십시연노를 만든 것에 비해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봄. 다만 일본의 조총을 입수해서 이를 바탕으로 연구해서 일본의 조총을 능가하는 새로운 조총을


만든 것은 제갈양의 십시연노와 같은 동격으로 볼 수 있다고 봄. 학익진과 팔진도는 비슷하다고 보고 병법서에서도 제갈양은


심서라는 병법서를 남겼지만 이순신 장군은 병법서는 남기지 못했음.


반대로 이순신 장군의 능력이 나은 부분은 제갈양과 달리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도 적과 싸워 모두 이겼고


심지어 모함을 받아서 서울로 끌려간 사이 대부분의 병력을 잃은 상태에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점. 그리고 이덕형이 지적한 대로


처음에 가지고 있던 병력보다 명량해전 이후에 1년만에 회복한 병력의 수가 더욱 많았음.

 


 

8. 체력.맷집: 이순신 장군의 승리. 특히 맷집의 경우는 더욱 그러함.


이순신 장군의 맷집으로 유명한 사례는 과거 시험은 물론이고 여진족을 정벌할 때 다리에 화살을 맞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싸웠고


싸움이 끝나고 나서 다리에 맞은 화살을 뽑았음. 어느 해전에서 싸울 때 왼쪽 어깨에 총을 맞아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 내렸는데


이순신 장군은 말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고 싸움이 끝나서 나서 어깨에 박힌 총알을 빼어 냈는데 총알이 6cm가 넘게 박혀 있었음.


총알을 빼낼 때 칼을 가지고 살을 가르고 뼈속을 긁어서 총알을 빼냈는데 이순신 장군은 담소자약(태연히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는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솔직히 불멸의 이순신을 안 봤는데 드라마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이야기와 해전에서의 이야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함.

 

 

이상입니다. 나름대로 이순신 장군과 제갈양을 비교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분은 이야기를 해 주시고 여기에 대해서 반론을 하실 님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게


반론을 해 주십시오.


이상으로 마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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