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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와 선생님> 제1화

박진석 |2006.09.09 13:08
조회 26 |추천 0

 몰려오는 잠을 떨치며 산등성이 굽이진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름 모를 작은 마을 하나가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이야 이 광경에 넋을 잃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하루에도 이 길을 몇번이고 왕복하는 시골의 한 버스운전기사니까.

 매일 듣는 익숙한 라디오. 이젠 지루하기까지 하다. 매일 만나는 동네 사람들. 저기 저 정거장 앞에는 시골이라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특히 오늘처럼 장이 서는 날이면 더욱.

 나물에 수공품들. 닭장에 영계들. 심지어 개까지 끌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별 말을 하지는 않는다. 신입때는 사람들이 동물들을 데리고 타는 걸 싫어 했지만 이런 것이라도 내다 팔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야박한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태현아빠!"

 나를 부르는 소리다.

 "태현아빠!"

 "아, 왜 그래요? 지금 운전하고 있는거 안보여요?"

 장날만 되면 읍내 정거장에서 꼭 닭 한마리씩 가지고 타는 고씨댁 할머니다.

 "나가 이번엔 정말로 좋은 닭을 팔러 가니까네, 이거 한번 볼란가? 이것 봐봐. 살이 올라가지고"

 고씨 할머니가 거동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운전 중에 닭을 살수도 없는 일이다. 고씨 할머니도 분명 빨리 팔아버리고 여기서라도 걸어서 집까지 가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게 뻔하다.

 "그렇게 좋으면 할머니 드시지 왜 팔려고 그래요?"

 "아니 나야, 아참! 좀 있으면 태현이 생일이 아닌가? 그래서 아들내미 삼계탕이나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물어 본거지!"

 "초등학생이 회춘 할일 있어요? 삼계탕은 무슨"

 고씨는 꼭 이런 식이다. 저번엔 등살에 못이겨서 배추를 좀 사준 적이 있었는데 집에와서 막상 속을 까뒤집에 보니..... 문제는 그것 만이 아니었다. 태현이 엄마, 그러니까 아내가 돌아간 뒤로 그럭저럭 집안 일을 맡아 보고는 있지만 아직 김치까지 담글 내공은 아니었다. 할수없이 옆집 김씨댁에게 부탁해서 몇포기 담기는 했지만 욕도 한아름 얻어 먹었다.

 "마누라는 이런 놈 놔두고 어디갔는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렇게 구불구불한 도로가 뚤린 산골에 살다가 보면 코너 건너편 상황에 무지해지기 마련이다. 아내는 그렇게 코너 맞은편 마주오던 차와 부딪쳐 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피의자는 도망갔다.

 김씨댁은 그렇게 떠난 아내가 하늘나라로 편히 갈수 있는 의식을 치르는 동안 음식이며 집안일이며 한동안 도맡아 해주었다. 나에게는 정말 천사같은 사람이다, 라고 하면 뭔가 허전하다. 그래, 덧붙여 나를 기죽이는 사람이다.

 그런 김씨댁에게 욕이라도 안 얻어 먹으려면 아무리 필요한 물건이라도 물어보고 사고 더군다나 강매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이런 다짐을 해보아도 시골 할머니들의 고집을 쉽게 꺽을 수야 있을까? 결국 고씨 할머니는 닭장에서 살이 오르긴 오른 닭을 잡고 한참 코너를 꺽고 있는 내 얼굴에 들이 민다.

 "이놈 퍼득거리는 것 좀 보소. 싱싱해 보이지 않는가?"

 "아씨! 살아있는 닭을 어떻게 봐야 싱싱해 보인데? 운전하는데 방해 되니까 그 닭, 도로 넣어요. 빨리!"

 "태현아빠 이렇게 안봤는데 한 성질하는구마. 내가 사람을 잘못 본기제, 안그라요?"

 가만히 자고 있는 할아버지는 왜 깨워서 쓸데없는걸 물어본담.

 "태수 자네, 시끄럽지도 않나? 그냥 사게"

 "잉? 아, 할아버지까지 왜그래요. 그럼 할아버지가....?

 그때였다. 시골에 사는 사람의 복장이라는 할 수 없는 차림의 한 여인이 버스옆을 지나갔다. 정거장도 아닌데...... 브레이크!

 순간 고씨댁이 앞으로 꼬그라 지고 잡고 있던 닭은 자유를 얻어서 버스 안을 활개를 친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람들도 깨어나 수근 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아내와 연애 할때 보았던 한 멜로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사이드 밀러에 비친 한 여인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진다. 주위에 소음이란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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