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여전히 비
3년 전부터 꿈꿔왔으며
3년 전부터 고민해왔고
3년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30일은 군 생활 2년보다 길었고
30일은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고
30년을 내다보기 위해서 세상과 이별을 고할 참이다.
오늘을 더욱더 기억하고 싶다.
내일은 어떤 슬플 날이 내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늘어가는 건 추억보다 한숨뿐.
나이를 먹는다는 게
경험을 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허탈감도 더해갔다.
Kiss The Rain..
언제나 구슬프게 들려오는 이 음악.
나에게 희망을 안겨 줄거라 믿었던 그녀에게.
Kiss off The Rain...
나 태어날 때부터 나 대신 울어주던 그 비.
언제나 나의 위기가 찾아올 때면 내 좌절들을 가려주었던 그 비.
그 비마저 이별을 고해야 그렇게 해야만 한다니..
그것이 내 운명이다.
알 수 있었던 것은 30일은 길었다는 것.
어젯 밤 늦게 자정을 넘어서 소위 계급장을 단 해병대 문재형이 우리를 위해 응원왔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늘은 마지막 전날..
비가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다.
서울로 가는 도로 차들은 비속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그동안 쉬었던 탓인가?
내 발걸음만 가벼워 지고 있었다.
부은 눈 사이로 빗물과 눈물이 섞여 들어가며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독의 말을 해주었던 그 의사.. 아마도 내 의지를 읽고 있는 듯 했다.
이제야 느끼고 있다.
척후로 홀로 앞장서고 있었다.
아마도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랴.
아무도 내 얼굴을 못본다.
간간히 쉬는 시간마다 본 내 얼굴..
아마도 대원들은 마지막의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염원과
해냈다는, 이제 다 끝나간다는 일념이 앞선다는 것을 난 3년전 경험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도대체 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갈구하고 소망하였는가.
내가 진정 바라던 건은 가까워 오고만 있는데
그녀도 목적지도 그리고 가족도.
이렇게 가까워 오고만 있는데
거리로 가까워 오고 있는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안내역할을 하는 도중 잠시 숨어서 장난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서울로 향하는 길.
내 고향으로 향하는 길.
그 어디선가 낯익은 그 길위로..
남한강을 따라 유유히 우리들은 비와 강물과 길에 몸을 맡긴 체 걸음을 차근차근히 옮기고 있었다.
용담대교.
양평 남한강 주변 경치의 거리.
양수리..
팔당댐..
용담대교... 다리의 길이만 해도 5km로가 넘는다더라. 저 끝없이 펼쳐진 강위로 달린다는게
상상도 안 해봤으리.. 남들은 그 다리를 차로 훌쩍 지나가지만
강위로 달리는 우리는 무엇보다 생각이 남으랴.. 강 다리위로 걷는다는 건
일상에서 그리 흔하지는 않는 일이다.
다리를 빼 놓고 생각하고 걷는다면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
양평에는 경치가 좋아 숙박업소가 집중적으로 즐비한 곳이 있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고
곳곳에는 그 경치를 즐길 만한 까페도 많다.
그 거리 또한 우리는 차가 아닌 두 다리고 걷는다.
양수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는 곳.
북한강과 남한강 서로 저멀리 떨어져 어떠한 고난을 겪은 지도 서로 모르는 체
아주 크게 만나는 곳.. 둘이 만나는 곳...
팔당댐..
낚서의 벽. 연인들이 사랑이란 단어로 서로의 이름을 써가며
변치말기를 맹세하고 표시하는 그 곳.
저녁 노을이 한강과 맞닿을 때 그 붉은 빛을 아직도 난 잊을 수가 없다.
비만 안 왔더라면 대원들은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래도 걸었다.
바지에 쓸려 다리에 무리가 와 중간에 숙영지로 돌아가는 대원 한명도 있었으나
그만하길 다행이다. 제때에 내게 말해줘서도 고마웠고.. 고운아..
지금은 저녁 6시반..
예정보다 1시간 반이나 더 걸었다.
길었으리라..
서울로 가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길었으리라.
향토사료관에 숙영할 예정이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사료관 운동장에서 숙박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광희, 대환이, 은선이가 수고를 해준 끝에
사용하지 않는 방바닥이 매우 부실했던 회관을 찾아 열심히 청소했었다고..
그곳에 있었다.
이윽고
5기 단장인 종걸이 형과 모두 국토대장정의 경험이 있던 01학번 선배들 영호형,우화형,희정이형.. 몸보신을 위해 치킨과 피자 맥주를 싸들고 응원 오셨다.
더불어, 나보다 나이 많은 05후배님의 방문.
“자식 힘들었냐?”
종걸이 형의 말..
“........”
미소로 화답.
모든 일정과 준비를 마무리하고 응원 오신 분들도 돌아가고..
롤링페이퍼를 주고 받는 우리들..
저녁을 더 이상 길게 보내고 싶지 않기에
큰 소리쳐가며 종이를 넘기라 했던 나.
내일을 기다려왔지만
과연 어떨까?
영광은 나에게 있다는 광희의 말이 있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영광은 우리 모두에게로..
우리 가족들 모두.... 영원히 이 2006년 7월을 기억하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장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이 글 속에서도 나의 해산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8월 1일 세상과 이별을 고하다.
‘나는 절대 국토대장정을 원망하지 않는다.’
지난 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에 국토대장정은 반년 그 자체였고
내 분신이 되었다.
돌이켜보고 지나고 보니까
이 국토대장정은 나에게 사람을 안겨줌과
동시에
뺏어가기도 했다.
지금와서 보니까
국토대장정은 내게 선물을 주었고
또한 커다란 가슴의 상처를 주었다.
눈이 다쳐서 난 상처를 말하는 게 아니란다.
많은 걸 얻으려 했던 내 욕심은
결국 많은 걸 잃게 만들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뼈아픈 경험을 이제서야 한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많이 아프다.
내가 다시 나으면 세상에 나올테니
내가 남에게 받은 상처
그리고 내 자신이 낸 상처
모두 내가 치료할 수 있으니
잠시만 안녕하자.
아주 잠시만.
안녕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분명 의지가 있는 것 같단다
그 마지막 날에도 나 대신 하늘이 울어주었고
난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장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이 글 속에서도 나의 해산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너희들을 책임지려 했던 내 사명감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할지라도
난 끝까지 오해하며 살련다. 그렇게.
후회는 남을 지라도.
가슴이 미어져라 터져도.
그 마지막 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본다..
그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