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3월 24일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23세의 나이로 군대에 징집된 날이다. 해외 스타들은 별 핑계 안 만들어 내고 쉽사리 군대에 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엘비스는 흑인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R&B 사운드를 로큰롤에 도입, 접목시킨 새로운 스타일로 수많은 명곡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교 졸업 이후,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중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당시 일반인들에게 녹음 스튜디오 대여 서비스를 했던 [선 레코드(Sun Records)]를 찾으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의 독특한 보컬에 매혹당한 스튜디오 매니저가 사장 겸 프로듀서인 샘 필립스(Sam Philips)에게 그를 추천했고, 곧 'That's All Right(Mama)'와 'Blue Moon Of Kentucky'가 담긴 첫 싱글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순회공연에 나선 그의 섹시하고 정열적인 무대매너는 금새 많은 사람을 유혹했다. 그의 성적인 제스추어에 대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의 상업적 가능성을 알아챈 메이저 레이블 [RCA]를 통해 1956년 'Heartbreak Hotel'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8주 연속 차트 정상을 차지한 싱글에 힘입어 공영방송에도 출연한 그는 TV마저 무릎꿇게 만들었다. 다시 정상을 차지한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이후 그는 더블 싱글 'Hound Dog/Don't Be Cruel'로 11주 동안 US 차트 정상에 눌러 앉는다. 영화 [Love Me Tender]로 박스 오피스 기록을 세운 그는 동명의 타이틀 트랙을 5주 연속 US 차트 정상에 등극시켰고, 이후 [Loving You], [Jailhouse Rock], [King Creole]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들은 그의 군 복무기간 동안 개봉되어 여러 개의 히트 싱글과 더불어 2년 여의 활동 공백기간을 메워주었다. 제대 후 그는 이탈리아 가곡 'O Sole Mio'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It's Now Or Never'를 발표했고 이어 'Are You Lonesome Tonight?', 'Wooden Heart', 'Surrender' 등의 곡들을 히트시켰다. 그 후 몇년간 [Flaming Star], [Wild In The Country], [Blue Hawaii], [Follow That Dream], [Kissin' Cousins]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사운드 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는 사이 비틀즈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의 무분별한 영화 출연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가중시켰다. 60년대말 그는 라스베가스 무대를 통해 다시 라이브 뮤지션으로 돌아오는데 라이브 실황 'The Wonder of You'를 UK 차트 정상에 진입시켰고, 이어 라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That's The Way It Is]를 발매한다. 그러나 슬럼프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점점 더 약물의존도가 높아지던 프레슬리는 결국 1977년 8월 16일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간접적인 원인은 비만과 약물 과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