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KBS 아나운서가 아나운서계의 '정체성 혼란'에 쓴 소리를 하고 나섰다. 그리고 모 신문은 "아나운서로 얻은 신뢰도 팔아 돈 벌다니…"라는 제목으로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기사를 뽑았다(스포츠 조선). "아나운서 조직 통제력 상실이 위기 불렀다"는 다소 점잖은 제목을 뽑음으로써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은 아니지만 다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연합뉴스).
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요즘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는 아나운서가 늘면서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다룬다는 점에 공통성이 있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이미 아나운서와 연예인간의 벽이 무너지는 일종의 크로스오버 현상이 아니냐, 지나치게 아나운서는 이래야 한다고 프로토타입을 고수하는 것이 고루한 보수적 시각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아나운서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최근에 SBS 아나운서의 세계미인대회 출전을 둘러싼 MBC 아나운서국장의 무절제한 비난과 이로써 촉발된 SBS와 MBC간의 이전투구가 압권이었다. 그런데 이 양 방송국간의 감정싸움에 가까운 헐뜯기는 여러 면에서 MBC측에 더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SBS 아나운서는 이미 미스 코리아로 선정된 상태에서 미스유니버스에 출전하기로 된 것을 놓고 비키니 차림이 어떻고 한 것은 감정적 날이 섰다고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세계미인대회에 우승한다면 MBC도 특종으로 보도할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미인대회에 사회를 보라고 초대한다면 그 자신은 안 나가겠는가? 출전은 안 되고 사회는 되고, 비키니는 안 되고 정장은 된다는 게 너무 고루해보였다.
그가 다른 방송국 아나운서의 일탈을 논하고 있을 때 자기 방송사의 아나운서도 오락프로에 나갔을 것이다. 물론 비키니는 안 입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여름 특집에 나간다면 비키니도 입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예오락 프로에서 별로 불러주지 않는 남자 아나운서들이 중심이 되어, 자기 방송국도 아닌 다른 방송국 후배 아나운서의 일탈을 [줄빠다식]으로 비판하는 식의 비판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어진 3대 공영방송국 아나운서들의 주간지급 화보 촬영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특히 3대 공영방송국 아나운서들의 화보촬영 때 MBC는 SBS와의 사건이후 얼마되지 않아 터진 이 사건으로 더욱 곤경에 빠졌었다. 그러나 세 방송국 어디도 화보촬영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고 유야무야되었다. 그리고 KBS인기 아나운서의 재벌가와의 결혼 등의 이슈와 맞물리면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는 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나운서 정체성 논란'의 근본 원인에 대해 "아나운서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의 데스크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KBS 강성곤 아나운서로부터 나왔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강 아나운서는 급속하게 '연성화'되고 있는 최근 아나운서계의 문제점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대로 끌려가다 보니 능력과 경력에 맞춰 필요한 곳에 아나운서를 투입해야 하는 아나운서실 조직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1985년 공채 11기로 KBS에 입사했으며, '문화탐험 오늘' 'KBS 음악실' '문화 한마당' 등을 진행한 중견 아나운서이며, 2004~2005년에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정치사회언론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아나운서 협회장을 거쳐 숙명여대에서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영향력있는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나온 문제제기와 자성론, 그리고 그 해결방안은 이미 나왔던 “나를 제외한 다른 아나운서들의 문제라는 식의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이 젊은 여자 아나운서만을 원하게 되면서, 아나운서의 출연이 연예인 캐스팅처럼 일회성으로 돼버렸다"는 현상진단과 함께 "결국 노련하고 신뢰감 있는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게 돼 궁극적으로 아나운서 직업적 전문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우려섞인 문제제기를 한다. 이어 "이렇게 신참 아나운서가 2~3년 만에 갑자기 스타가 되면 광고 등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아나운서 조직도 이를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는 설명도 문제제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나운서들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신참 아나운서는 곤란하다고 하면 제작진은 '그렇다면 프리랜서나 연예인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제작비가 올라간다'고 말하고 또 시청률 등의 이유를 내세우기도 한다"며, 아나운서들이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제작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나운서계의 문제가 결국 조직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나운서 출신이라고 해서 프리랜서를 '아나운서'라고 부르면 안된다. 그들은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통해서 얻는 신뢰도를 이용해 보험회사 CF 등에서 엄청난 출연료를 챙기고 있다"고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점은 방송국 너머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결국 방송국의 경영태도에 귀착된다는 것을 강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들의 KBS 1TV 출연 문제로 설명한다. "공영방송의 이념을 지키는 차원에서 1TV는 광고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정작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상업적 광고 이미지로 도배된 이들이 '아나운서'라는 이름하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CF를 통해 큰 금액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공영방송 이미지와 어울릴 수 있나요.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서민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어 아나운서 직종 자체가 젊은 여자가 하는 일로만 여겨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력 있는 남자 아나운서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남자 아나운서를 지원하는 이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아나운서의 연예인화, 내지는 상업화의 이면에 성상품화라는 천민 자본주의적 사회구조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로그램 연성화로 인해 남자 아나운서들이 반대로 성차별을 당하는 셈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젊은 여자 아나운서를 설정에 의한 보조 연출자 또는 눈요기감으로만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있어 이런 이미지가 심화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문제점과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대안으로서 "방송사 CEO가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건강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있어온 아나운서, 특히 여성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는 결국 해당 아나운서들의 직업의식 결여나 윤리교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고, 따라서 일부 기성세대 남성선배 아나운서들의 주장처럼 줄빠다식의 비난이나 개인적 처벌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방송국 경영진의 의식변화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얼핏 방송국내의 힘있는 다른 연예오락부서나 윗선에 문제가 있고, 우리 무기력한 아나운서계의 문제는 별 게 아니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 해당자의 문제로 돌리고 비난과 가학을 해결방법으로 제시하는 것보다는 진일보한 처리 방식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