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비 오는 날을 위하여
창 밖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둘 일이다.
노랑 할미새 찾아와 앉는 은행나무이거나
때가 되면 붉게 타는 단풍나무이거나
비가 오면, 비가 오면
한 잔의 낮술에 가슴을 태우며
단풍이 붉은 이유를
가을비 속에 적셔 볼 일이다.
가을비 오는 날을 위하여
한 번도 걸어 보지 않은 길 하나
남겨둘 일이다.
바다로 말없이 트여 있는 길이거나
그 시절 헤매이던 갈림길
가로수 몇 그루 언뜻 보이는 그런 길이거나
남겨둔 길을 위하여 비는 내리고
빗길 따라, 걸어 온 세월을 따라
물이 드는 나의 나뭇잎
하나 둘 세어 볼 일이다.
메마를수록 젖어들 줄 아는 또 다른 나의 순수 앞에
그냥 서 있어 볼 일이다.
수평선 하나 저 만치 두고
가슴 깊이 깊이 남겨 두었던 그 목소리를 찾아
전화 한 번 걸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