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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타는 여자 편.

조원혜 |2006.09.16 09:39
조회 56 |추천 0

 

 

참, 고된 하루였어요.

마음을 추스르기엔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행복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그런 날이었습니다.

팬시점과 편의점엔 오색찬란한 사탕들이 가득하고,

거리엔 사탕 바구니를 들고

팔짱을 낀 연인들이 가득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에겐

참 위험한 날이었어요.

하마터면 저도 전화를 걸 뻔 했으니까요,

헤어진 그 사람에게...

그래도 다행히 안감힘을 다해 참았습니다.

전화기는 아예 꺼버렸습니다.

아무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요.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가자 하는 마음에

약수역에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광고 전광판에 예쁜 여자 모델도

사탕을 들고 서 있더라구요.

의상 광고였는데 제 눈엔 사탕만 보였습니다.

그녀의 턱에 누군가 수염을 그려놨더군요.

그래도 그녀가 나보다는 행복해 보였어요.

 

역에서부터 걸어 아파트 현관 앞까지 도착했는데,

순간, 아직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모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또 그랬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속상해 할 엄마를 생각하니,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아파트 앞 편의점에 가서..

자그마한 사탕 바구니를 하나 사 들었습니다.

근데 카운터 앞에서 계산을 하는 순간,

글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리는 거예요.

창피해서 뒤를 돌아 냉장고쪽으로 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맥주를 한 캔 집어 들고

그리고 다시 카운터로 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배도 한 갑 샀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로 갔어요.

그 사람이 밀어주곤 했던 그네에 혼자 앉아

발을 앞으로 굴렀다..뒤로 굴렀다..왔다 갔다 하는데,

맥주 거품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네에서 내려 시소 위에도 살며시 앉아봤습니다.

마치 그 사람이 저 쪽에 마주 앉아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난 점점 땅에서 멀어져 공중에 붕 뜨고,

그 사람은 점점 땅과 가까워지더니,

끝내 땅에 닿아 멈춰버리고...

그 사람, 나를 위해 그렇게 늘 땅에 닿아있었던 건데,

그래서 내가 공중에 붕 떠 즐거울 수 있었던 건데..

그땐 몰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이 시소에서 내려버린 후,

알았어요. 그 사람이 없는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박하향이 나는 담배예요.

이 무서운 담배를 왜 피우냐고

그 사람에게 늘 그랬었는데...

아무래도 전 이 담배보다 더 무서운 이별을 한 것 같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사랑은 타고나면 상처가 된다고,

그래서 사랑은 불꽃이 사라지기 전에

바람을 잘 막아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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