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으로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
옛날 옛적에, 훈장님과 세 제자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서당에 모여 글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업에 대한 세 제자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은 때로는 경쟁하며, 때로는 협력하며 매일매일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훈장님 또한 그런 제자들을 가상히 여겨 최선을 다해 가르침을 전수했고, 네 사람의 학구열은 온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여 천자문이 끝나가던 어느 날, 훈장님은 갑자기 책상을 옆으로 치우시더니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글 대신 인생을 배워 보고자 한다. 내 너희에게 각각 천 원씩을 줄 테니, 천 원이하로만 돈을 써서 이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져와 보도록 하여라. 기한은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무렵까지다."
세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글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지만, 단돈 천 원으로 방안을 가득 채워야 한다니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세 제자는 각자 흩어져서 각자의 해답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하루의 시간은 흘러, 땅거미가 지고 있었습니다. 드르륵 방문이 열리더니 첫 번째 제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주식증서가 들려있었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무릎을 꿇으며 훈장님께 말했습니다.
“훈장님, 저는 단돈 천 원으로 주식에 투자하여 돈으로 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달려가 매매차익의 극대화를 도모하였지만, 본전도 못 건지고 말았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훈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랜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정책규제의 심화로 인해 주식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하나, 단 시간에 이 방안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매매차익을 얻겠다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한다. 투자의 기본은 멀리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아니겠느냐. 너의 목표는 가상하나, 오늘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두 아이들을 기다려 보자꾸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제자가 도착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었습니다. 촛불에 불을 붙이면서 두 번째 제자는 말했습니다.
“훈장님, 훈장님의 숙제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하였으나 어둠이 찾아올 무렵에 저는 드디어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 촛불의 빛을 보십시오. 빛으로 온 방안이 가득 차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저는 이 과제를 내신 훈장님의 뜻마저도 깨달은 듯 싶습니다.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앞으로도 계속 쉴 틈 없이 학업에 정진하자는 말씀을 하고자 하심이 아닙니까?”
득의만면한 두 번째 제자의 얘기가 지속되는 동안, 훈장님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바로, 세 사람의 그림자였습니다.
“너는 나의 답에 근접하긴 하였다. 하지만 저 그림자를 보아라. 나의 조건은 이 방안을 가득 채우라는 것이었는데, 저 그림자 안으로는 빛이 침투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분명 우리 네 사람은 네가 말한 대로 끊임없는 학구열로 하루하루를 채워왔다. 하지만 빛은 결코 빛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느니라. 맹목적으로 빛만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그 빛 뒤로 그려지는 그림자를 볼 수 없게 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은 그러한 맹목이 아니다. 마지막 아이를 기다려 보자꾸나.”
두 번째 제자의 아쉬운 표정을 뒤로, 드디어 기다리던 마지막 제자가 방안으로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너의 답은 무엇이냐? 어찌하여 빈손인 게냐?”
“기다려 보십시오.”
세 번째 제자는 훈장님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 쪽으로 가더니, 이내 사이좋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사이트에 접속하였습니다. 훈장님이 주신 천 원의 돈은 이미 도토리 10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제자는 선물가게로 들어가더니 도토리 5개짜리 노래 한 곡을 사서 자신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온 방안 구석구석까지 세 번째 제자의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곡목은 트로트 가수 이상번의 였습니다.
“사노라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는 것을. 쓰다달다 걱정을 말고 툭 털고 일어나 봐요. ······ 어찌어찌 그렇게 좋은날만 있을까. 개었다 흐렸다, 흐렸다 개었다, 우리네 인생살이. 인생은 새옹지마·······.”
넘실거리는 댄스를 잠시 멈추신 훈장님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 현세기의 트렌드처럼 되어버렸다. 서점에 나가보면 팔리는 책들의 상당수는 ‘···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가지 일들’이 차지하고 있다. 과연 후회하지 않는 삶은 소망할 만한 것이지만, 그런 책들을 읽는다 하여 삶의 빈틈이 후회 없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잣대로 내 인생이 재단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이 피어날 뿐이다.
치열한 하루의 틈 사이사이에 자리하는 자신만의 시간이, 오히려 인생을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좇아감이 없으려면, 치열한 하루의 빈틈을 자기만의 것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멀리 뛰기 위해 다리를 접는 개구리에게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에도 그렇듯 잠시 숨을 돌리고, 다음엔 어떤 곳으로 뛰어가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네가 나의 뜻을 간파했으니,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도를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게 네 사람은, 그 날 하루만큼은, 아직 남아있는 다섯 개의 도토리로 어떤 곡을 사야할지 토론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원우 바이트 칼럼니스트 http://www.i-ba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