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이었을거다.
나는 지친 몸으로 지하철에 올라 자리를 찾은 후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아마 몸에서 힘이 아주 많이 빠진 상태라 그렇게 앉아있는 것 자체가 노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등받이에 기대어 습관처럼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즈음, 내 바로 옆을 쳐다보았다.
일본어다. 학습 유인물처럼 보이는 종이에 일본어가 아주 장황하게 적혀있었고 샤프펜슬로 곳곳에 토시 글이 적혀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종이를 잡은 손을 보았다.
거친 손이다. 늙은 손이었다. 놀란 마음에 손끝부터 반대로 따라 올라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족히 연세가 고희는 넘어보이는 할아버지셨다. 돋보기 너머로 그다지 크지 않은-12pt쯤 되는 글자체-글씨를 쳐다보시며 나즈막히 일본어를 읽어보시고 계셨다.
히라가나 몇 자 아는 나도 어깨너머 흘긋흘긋 바라보며 무슨 글자인지 입모양으로나마 읽어보고 있었으나 읽을 줄만 알았지 뜻은 전혀 알수없는 글들 이었다.
어르신 대단하시네. 라는 생각과 함께 내 고개는 다시 정면을 향했고 슬그머니 눈꺼플을 내렸다.
그리고 ..
내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살아계셨더라면 옆의 노인과 나이가 별 차이 없으실텐데...
우리 할아버지는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셨더랬다.
그래서 왠만한 한문과 일본어는 다 알고 계셨다고 하신다.
초등학교-그때당시 소학교-시절에 한국으로 오셨고 학교를 다니시다 6.25전쟁이 일어나 할아버지는 어린나이에 전쟁터에 나가셨다고 어릴적에 할아버지 다리품에서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이 그닥 중요치 않은 이야기 인 것 같아 어린마음에 흘려들었으나, 그것이 아주 자랑스럽고 중요한 일인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였다.
아버지가 고인이 명을 달리 하심을 보훈청에 신고를 하셨더랜다.
그리고 몇시간 후 보훈청에서 사람이 와서 빈소에 인사를 드리고 큰 태극기-아마 가로세로로 남자키만한-를 우리에게 주시고 가셨다. 참천용사에게 드리는 것이라며 ..
우리는 그것을 고인의 관 위에 덮어서 화장키로 했으나, 화장장측에서 말하길 이렇게 큰 태극기는 하사받기도 힘든 아까운 것이니 화장치 말고 가보로 내려보내는 게 좋다기에 일단 태극기를 걷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우리 할아버지의 말씀이 실언이 아님을 아주 많이 깨달았다.
기억난다.
다섯살이던 내 손을 잡으시며 간단한 일본말을 가르쳐 주시던 고인의 모습이.
더 내가 성장하여 충분히 걸을 수 있고 충분히 어른을 모실 수 있는 그런 때가 되면 함께 일본땅을 밟아보자시던 그 분이..
아마 고인은 나에게 당신이 실언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다시 추억에 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심했다. 그냥 실언으로 넘겨버리고 바쁘답시고 내 생각에만 치중했던 내가 너무 못났다.
분명 다리품에서 해주신 이야기들은 나만 들었을 이야기인데..
누군가에게서 전해져 거쳐듣지 않고 직접 귀로 들은 사람은 나 뿐일텐데..
아... 오늘따라 무척이도 사무치게 그립다.
잊혀지지 않는다. 2002년 음력 6월 2일 오열을하며 고인을 향해 목놓아 울부짖던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