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프랑스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루아르 지방은 수많은 고성들을 간직한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루아르 강 주변에 빼곡히 펼쳐진 성에서는 당장이라도 귀족들의 연회 음악이 흘러나올 듯하다. 르네상스의 대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한 쪽에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인문주의자들이 글을 낭독하고, 왕의 광대들이 궁정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성 벽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수상한 사람들을 감시한다.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지방은 15∼16세기 샤를 7세로부터 16세기 앙리 3세에 이르는 발루아 왕조 왕들의 흔적이 서려 있다. 차곡차곡 쌓인 성벽의 이끼조차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 루아르에는 역사를 보존하려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앙부아즈의 음모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아르 고성 중 가장 유명하다는 앙부아즈 성에 들어서면 아늑하게 꾸며져 있는 정원과 우뚝 솟은 전망대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전망대에서 보는 루아르 강과 프랑스 마을이 이방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마치 동화 속의 아름다운 마을을 보고 있는 듯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주는 아늑함과는 달리 앙부아즈 성은 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앙부아즈의 음모로 잘 알려진 이 성은 당시 1200여명의 신교도인들의 시체가 걸려 있었던 철로 된 갈고리가 전시돼 있다. 프랑수아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구교도인 기즈 공이 실권을 장악하자 신교도인들이 그를 암살하려다 발각돼 처참한 시신만이 성벽에 걸렸다고 전해진다. 구교도에 저항하며 마지막으로 항쟁했던 이 성은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묵묵히 기억하고 있다.
앙부아즈의 음모가 이 성의 아픈 추억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활했던 자취는 이 성의 자랑이다.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로 알려져 있는 다빈치는 1516년에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앙부아즈에서 살았다. 이 곳에서 다빈치는 궁정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기를 정리하고 풍부한 사색에 잠겼으며, 운하설계나 궁정설계 등을 지휘하면서 충실한 생활을 했다. 다빈치가 묻혔다고 추정되는 생 위베르 예배당은 이 성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이 프랑스 내륙의 작은 마을, 그것도 고성에서 말년을 보냈던 사실을 되새기며 다빈치를 추모하는 여행객의 모습도 눈에 띈다.
■앵드르의 보석, 아제 르 리도 성
이곳에 오면 눈에 밟히는 게 성이다. 관광을 위해 옮겨 다니는 성, 밤에 잠을 청하는 성, 자료와 사진, 영화속에 담겨있는 성, 그리고 미처 돌아보지 못했지만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성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돌다리의 역할을 한다. 수많은 성들 중에 루와르 지방의 대표적인 성 샹보르와 아제 르 리도를 추천하고싶다.
샹보르 성을 마주하면 우선 그 규모에 놀란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던 프랑수아 1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절대왕정을 열었던 태양왕 루이 14세 때에는 방이 440개나 되는 거성(巨城)으로 거듭 태어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입구의 대계단과 성에서 가장 넓은 루이 14세의 화려한 침실은 화려한 궁중생활을 대변한다. 프랑수와 1세의 회의실을 지나 지붕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앵드르 강을 가로지르는 섬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아제 르 리도 성은 프랑스의 소설가 발 자크가 “앵드르의 보석”이라고 극찬했을만큼 루와르의 고성 중 가장 품위있고 여성스럽다. 소박하고 검소한 것 같지만 그 도도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이 성은 1518년부터 1523년 사이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또 강물에 비치는 성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가갈 수 없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성 주변의 정원과 숲이 그림 같은 풍경을 띠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멋진 풍경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루와르에서 보낸 며칠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동화속의 마을을 걷고 성에서 잠을 자면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루아르의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더욱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