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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사랑해 |2006.09.24 00:41
조회 29 |추천 0


나는 버스에 올랐다.

 

중세스런 레이스장식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나는

 

'악마와 미스 프랭' 이라는 베이지색 하드커버의 책을 읽고 있었다.

 

책에 빠져서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한치의 시선도 양보하지 않고 책 속에 몰입해 있었다.

 

 

요즘 세상은 월드컵 붉은 악마에 물들어 있었고

 

그 단순한 환희의 악마보다 더 어둑한 악마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무가치하게 버려져 함께 즐길수도 없고 어디에다가 떠들수도 없는 세상의 불만쟁이와 함께 하고 있었다.

 

버스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그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20%의 사람들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제법 붐비는 정거장에서 빨간 승객들이 우루루 내렸고

 

나는 여유있게 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그 한 청년이 튀어나와 마치 자신의 원 의자를 찾아들 듯 내 옆자리로 찰싹 붙어 앉았다.

 

불만이 가득한 그의 몸동작에는 짜증과 오만불손이 묻어났으며

 

그는 반항적으로 풀어진 몸을 내 가까이에다가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꼴이었다.

 

그는 잠시 후 가만 있지 못하고 다시 내 뒤로 자리를 옮겼다.

참지 못하겠다는 양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보란듯이.

 

나는 그때까지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후 그는 다시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돌아와 앉았다.

 

나는 그의 태도가 껄끄러웠으나 책의 중요한 부분을 읽어가고 있었기에 

(이방인과 미스 프랭은 여우를 피해 나무위로 뛰쳐 올라가는 순간)

 

신경을 곧 거두고 책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나의 태도가 거슬렸는지

그는 흥얼거리는 소리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 노하기 시작했다.

 

나라가 다 축구에 미쳐있다며 미친 엿같은 세상이라 떠들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다리의 굵기, 얼뜻본 차림과 머리스타일을 두고 생각해 보면 꽤 젊은 청년이였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꽤 청순한 청바지와 썩 밝지 않고 어둡지도 않은 카라 셔츠의 차림이였다.

  

그는 분명 동반자가 없었다.

그러나 옆에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곳이라고

 

순간 시력이 빛을 잃고 온 신경이 청각으로 쏠려들었다.

 

멍청한 심장이 벌써부터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창 밖을 살펴보니

한적하고 으슥한 장승배기의 한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설마.

이 자가 살인사건의 그 수배자 일까

이런식으로 스스로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쾌락을 느끼는 것일까

 

그의 말들은 일반 사람들이 내뱉는 기운의 것이 아니였다.

 

그는 불만에 가득찼고

그 불만은 사회의 무관심과 애정의 결핍, 열등감 속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 이였다.

 

그의 상태를 알아챈 사람은 그 버스안에서 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 뿐이였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내 상태를 점검할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단지 책에 빠져있는 듯이 내보이며

머릿속으로 내가 앉아 있는 모양을 그려 보았다.

 

짙고 우울한 보라색 공주 원피스에 다리를 왼쪽 방향으로 기울여 모아서 뾰로롱 앉아있는 모양이 참 재수 없었다.

 

가냘프게 긴 손이 창백하게 벗겨진채

힘없이 살짝 꺾여진 손목이 간신히 베이지색 책을 붙들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 아무런 반응과 내색도 없이 활자에 정신을 꽂아 읽어내는 꼴이란 망가뜨리고 싶은 도도함과 죽이고 싶은 얄미움을 풍겨내고 있었다.

 

마치 온 몸으로

접근하지마. 나는 버스안에서도 잠잠히 책에 빠지는 우아하고 도도한 여자라고. 나와 이 안에 있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난 원래 마차를 타야했던 여자라고.

내 옆에 앉은 너에겐 신의 특권이 주어진 일이니 감사나하라고.

 

그 사회 부정응자에게 나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얌전한 체 하는 보라색 암코양이 같았다.

그는 엉덩이를 내 옷끝에 붙이기도 했고 거만한 팔을 내 뒷 좌석에 걸치기도 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은 이자가 단지 술이 조금 취했을 뿐일거라는 일상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생각.

 

그런 태도를 만든 만큼의 술냄새는 그에게서 나지 않았다.

 

어쩜 술냄새가 났을지도 모른다.

코는 긴장하면 냄새를 맡지 못한다.

긴장하면 배가 고프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경찰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여기에 파출소가 있어...

혀를 차며 그는 말했다....너무 가까워.

 

어찌되었든 나는 나의 분위기와 태도가 나의 재수없음을 반영함을그에게 주는 인상에서 지우려 노력해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아직 그와 눈길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와 친근한 인간의 눈길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눈길을 마주 칠 용기는 있지 않았다.

 

아마 나의 두려움과 공포감을 눈치채게 된 그는

더욱 나에게 우월함으로 다가와 나를 .

 

살인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나는 주위의 승객들에게 나의 위험의 순간을 알릴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 제각각 이였고 머릿속에 축구가 가득차 있었기에 날 돌볼 여유와 쓸데없이 소진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의 모든 에너지를 마치 머리 위에 원기옥을 만들듯

월드컵에 대한 집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방해 할 수 없었다.

 

지금 이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내가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최대한 집으로 뛰어들어 가야겠다.

 

여자를 따라 뛰는 남자는 주위사람에게 경계심을 주게 될테니.

그는 시선을 피해보려다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간 집앞의 골목은 한적하다.

 

그리고 나의 정거장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우선 내면의 호흡을 가다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

뒷문 앞에 섰다. 불안불안 휘청거리면 다가오는 아주머니를 배려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 드렸다.

그가 보았을까? 나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아님 나의 배려를 우월하기에 내부렸던 사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뒷걸음이 더 그의 성질을 건드린 일은 아닐까?

 

난 그를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버스가 서고

뒷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내리고

내가 내렸다.

누군가 또 그 뒤로 급하게 따라내렸다.

 

이로써 지금까지 나의 육감은 사실이였던 것이다.

 

뛸까?

 

갑자기?

왜?

 

그가 따라 뛰면?

 

그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앞으로 매일 밤마다 경계를 두고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버스안에서 책을 읽은 재수없는 여자애를

그냥 죽여버리기 위한 계략을 쓰기 시작한다면?

 

나는 집으로 가지 못했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과자를 골랐다.

이 늦은 시간에도 편의점에 들러 과자 한봉지를 사가는

그냥 평범하고 어린 여자애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앞에 도착할때 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살았다.

 

 

 

 

아.....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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