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23) 오후 3시 여의도 63빌딩에서는 한국 노동사 및 정치사에 있어서 꽤 의미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창립대회가 그것이었는데,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거대 전국조직과 전국 공무원 노총 등 현재 3분되어 있는 노동계에 뉴라이트 신노련이라는 네 번째 전국조직이 창립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상근을 두 번이나 경험한데다 노사관계를 전공한 나로서는 관심이 있는 자리여서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시작전 그 자리에서 한 선배의 소개로 김진홍 뉴라이트 공동대표를 소개받았는데, 글로나 말로는 여러 번 뵌 분이지만 실제로는 처음 만난 것도 기억할 일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수많은 시민단체와 노동계,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과 노동계 인사들의 면모는 2% 부족함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수에서 절반이 아니라 색깔에서 절반이라고 보여진다. 정치권은 국민중심당 대표외에는 모두가 한나라당 의원들로 채워졌고, 노동계 인사도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전국 공무원노총 위원장 외에 민주노총은 아예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반쪽짜리 전국노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뉴라이트 신노련이 지향하는 바, 그리고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 출신인 권용목 대표에 대한 민주노총의 거부감이 작용한 탓으로 보여진다.
▲ '뉴라이트 신노동연합(권용목 상임대표) 창립대회'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다. 권용목 상임대표가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날 창립대회는 몇 가지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권력의 탈환을 꿈꾸는 한국의 뉴라이트 세력이 노동부문에도 깃발을 올렸다”고 쓰고 있다. 권용목 상임대표의 전력이 그렇긴 했다. 87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가 민주노총이 대세로 자리한 한국 노동계를 재탈환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무튼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권 대표의 취임일성이랄까? "87년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여기 우리 이명박 전 시장님도 계시지만 제 이름이 더 높았어요, 그 때.“라며, 그 자리에 축하 인사차 자리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칭하며 87년을 회상하는 권대표의 말머리가 그것을 말해준다. 철 지난 영웅의 귀환이 불러올 반향이 첫 번째 흥밋거리였다.
신노련의 출범과 함께 이들이 정치세력화할 것이냐가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권용목 상임대표가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정몽준 후보 지지 전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권 상임대표는 이러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여기에 정치하러 왔나, 노조 현장을 바꾸러 왔나"라고 참석자들에게 물은 뒤 "우리까지 대선에 휩쓸려 잡탕밥을 만들지 않겠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정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정계진출설을 일축했다. 이어 그는 "저를 철새라고 욕을 하는데 세 번인가 정치권에 발을 딛었다"며 "한번은 다르지만 두 번은 친구 따라 강남 따라간 철새였다. 하지만 저는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 80년대에는 제 이름이 (정치인들보다) 더 높았다. 당시 국회의원 나오라고 했지만 전 나가지 않았다. 천성이 자유로운데 정치하겠나. 정말 정치는 하지 않겠다. 노동문제에만 전력하겠다. 그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지켜볼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에 대한 생각도 그러했지만 87년 당시의 그 치열한 투사도 더 이상은 아닌 듯 했다. 아직도 찌렁찌렁한 연설이 전사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련되고 순치된 모습에서 전향의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 "노동과 자본이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라는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공식을 폐기할 것"이라며 "21세기의 무한경쟁시대에 서로를 죽이는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그의 취임사와 "과거사는 다 지워버리자. 계란만 빼먹기 위해 닭잡는 일은 없도록 경제와 노동자를 함께 살찌우는 데 전력하겠다"고 밝힌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원건 공동대표의 취임사가 이들의 양대노총과는 다른 모습, 현재 이 사회가 요구하는 순치된 노동운동을 지향하겠다는 그 노동운동가답지 않은 모습이 이날 두 번째 흥밋거리였다. "국민의 외면으로 구시대의 노동운동은 막을 내렸다"고 선언하며 ▲노사간 가치관 개혁운동 ▲일터 사랑 실천운동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 실천운동 등을 신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준다.
세 번째 흥밋거리는 철저한 현대판이라는 점이었다. 신노련은 공동대표를 포함한 대부분의 집행위원들이 현대관련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이었다. 실제 신노련이 공개한 창립준비위원의 얼굴을 보면, 19명의 준비위원 중 현대관련 노조(부)위원장을 지낸 인사만 10명에 이른다는 점은 뉴라이트와 한나라당 게열이라는 정치적 영토의 한계와 함께 신노련의 조직력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참석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역시 현대그룹 출신이었다.
▲ 권용목 상임대표가 현대엔진 노조위원장일 때 회장으로 있었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권용목 상임대표를 격려하고 있다.
신노련과 현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며, 이날 권용목 상임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만남은 바로 이 현대와 신노련의 관계를 과거와 현재의 것으로 확장시키는 관건이 되었다는 것이 네 번째 흥밋거리였다. 20년전 현대엔진 회장 시절 이명박 전 시장은 당시 현대엔진의 노조위원장이었던 권 대표를 해고한 바 있다. 그래서 권 대표와 이 전시장의 사적․공적인 관계가 더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이날 이 전시장은 축사를 하는 내외빈 가운데 사실상 맨 마지막 순서였다. 사회자는 이 전시장을 마지막에 소개하는 것은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의 상임대표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회자의 그 말이 아니더라도 이 전 시장을 맨 마지막 축사순서에 배치한 것은 주최 측의 또 다른 알듯 모를 듯 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여하튼 사회자의 소개말처럼 상임대표인 권영목 전 민노총 사무총장이 현대엔진 시절 해고될 당시 이 전시장이 그 회사의 회장으로 있었으니 짤린 자와 짜른 자의 20년만의 해후였고 화해와 약속의 장이었다. 사회자의 그러한 특별한 인연이 소개되고 두 사람이 화해의 포옹을 하면서 후래쉬 세례가 터졌고 장내는 흥분의 도가니처럼 바뀌었다. 똑같은 상황도 연출과 각색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적이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힘찬 박수를 보냈다.
여러 내외빈 축사가 이어졌는데 초청인사들이 많아서 축사가 상당히 길어졌다. 특히 주최측이 의도적으로 시끄러운 정치권 얘기보다는 시민단체 인사들의 얘기를 먼저 듣겠다는 말과 함께 시민단체와 노동계 인사들 다음으로 정치권 인사들의 축사 순서를 배치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전 시장에게는 더 좋은 배치가 된 것 같았다. 국민중심당 대표, 한나라당 대표가 현재 정치권의 무보직자인 이 전시장보다 앞서 배치된 탓에 이 전 시장의 축사가 맨 마지막(대학생 대표를 제외)에 있었지만, 마치 최고인기가수가 가장 나중에 방송에 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특별한 이슈가 없었고 지루했던 다른 사람들의 연설 탓에 가장 많은 박수와 후래시 세례를 받은 것이 그러한 면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켰던 것 같다.
원고가 준비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날 두 사람의 연설은 그야말로 압권이었고, 어제의 원수였을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외친 화합과 단결의 외침이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미 초반에 있었던 취임사에서 권 대표는 이 전 시장을 염두에 둔 연설을 했고, 사회자의 자연스런 유도를 의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전 시장 역시 권 대표와의 구원을 염두에 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권 대표가 세계무대에서 뒤지고 있는 현 한국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노사관계를 말하면서 자신의 87년 당시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면서 노사협력과 상생의 길을 강조했다면, 이 전시장 역시 권 의장과의 특별한 인연을 말하면서 권 의장의 뜻밖의 결단과 용기에 대해 칭찬을 한 뒤 본인의 평소 소신인 일자리 창출에 대해 설파한 것이었다.
▲ 권용목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신노련이 정치를 하든 않든 뉴라이트와 연결된 그 성향이나 지향점에 있어서 커다란 정치적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점인데, 다섯 번째 흥밋거리는 그 파괴력이 어디에 실릴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뉴라이트세력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나라당은 신노련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음이 역력했다. 국민중심당을 제외하고는 열린당, 민노당, 민주당에서는 단 한사람의 축하사절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에서는 대권주자중 한 사람인 이명박 전서울시장, 강재섭 대표외에도 이재오·권영세 최고위원과 전재희 정책위의장, 이계경 대외협력위원장, 이주호 제5정조위원장, 나경원 대변인,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 등이 대거 참석하여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방불케했다. 특히 강재섭 대표는 "오늘은 노동운동이 새롭게 출발하는 위대한 날"이라고 추겨세운 뒤, "여러분을 설득해서 정치활동하자고 온 것 아니다"라면서도 "신노련의 방향이 한나라당과 같아 반갑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신노련은 이날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거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축사는 뒷부분에 배치했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신국환 국민중심당 대표로 정치권의 축사를 한정하면서 이명박 전 시장을 오히려 뒤에 배치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전시장과 권 대표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노린 점이라고는 하지만 박근혜 전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점, 신노련의 지도부가 이 전시장과 같은 현대그룹 출신이라는 점 등을 박 전대표 캠프가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