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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유광 |2006.09.27 11:51
조회 26 |추천 0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 과학

 

인류의 문명은 어떤 이유로 오늘날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그 원류를 찾는 책이다. 저자의 풍부한 인류학, 언어학, 생물학, 역사학적 지식들을 독자들에게 남김없이 선사한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들을 하나로 녹여 그가 이해한 독특한 세계문명의 역사를 소개한다. 왜 백인은 최강의 민족이 되었고 흑인은 노예민족이 되었는가? 중국인은 어째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을까? 이 모든 질문과 의문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그 답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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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5

 

기자들은 저자에게 한 권의 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은 문장을 만들자면 다음과 같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P. 195

 

다윈도 그 위대한 저서 에서 대뜸 자연선택부터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 저서의 첫 장은 우선 우리의 농작물이나 가축이 어떻게 인간의 인위 선택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 다윈을 생각할 때 우리는 대개 갈라파고스 섬의 새를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다윈은 그보다 농부들이 구즈베리(!) 변종을 만들어낸 이야기부터 꺼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그토록 기막힌 결과를 빚어낸 원예가들의 솜씨에 크나큰 놀라움을 표시하는 원예 서적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기술은 간단한 것이고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본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예외 없이 처음에는 가장 잘 알려진 변종을 재배하다가 그 종자를 뿌렸을 때 약간 더 나은 변종이 나타나면 다시 그것을 선택하는 식으로 되풀이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위 선택에 의한 이 농작물 개발의 원리는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P. 235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인류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동물의 가축화에 대해 설명해 준다.

 

P. 599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그곳은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 천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이 사라져간 과정은 강성한 제국들이 점차 서쪽으로 옮겨진 경로를 통해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

 

P. 605

 

중국이 정치적 기술적 우위를 유럽에 빼앗긴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지도에서 짐작할 수 있다.

 

P. 649

 

지난 12000여 년간 농경은 전 지구상에서 채 아홉 군데가 되지 않은 곳에서만 발생했다. 중국, 비옥한 초승달 지대, 나일 강, 티그리스 강, 페르시아 만을 연결하는 고대 농업지대, 그리고 다른 몇몇 지역들 말이다. 12000년 전 지구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했다. 오늘날 인류의 대다수는 식량 생산자이고, 나머지도 식량 생산자가 있어야 먹고사는 형평이다. 이렇듯 얼마 안 되는 발상지에서부터 농경이 퍼지게 된 이유는 수렵 채집민이 농경을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다. 조몬인들이 B.C. 10700년에서 400년까지 그러했듯이 수렵 채집민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대신 농경은 보다 우월한 농사기술을 발전시킨 식량 생산자들이 수렵인과 이족 결혼을 한 후, 수렵인을 죽이거나 그들을 경작하기 적합한 땅에서 몰아내면서 전파되었다. 근대에 들어서 유럽의 식량 생산자들은 북아메리카 서부의 인디언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아프리카의 산족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했다. 이와 비슷하게 선사 시대에는 석기를 이용하는 식량 생산자들이 유럽과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까지 수렵인들을 모조리 대체한 것이다. 선사 시대 내내 식량 생산자들이 수렵인에게서 취한 이득은 아주 적었지만, 그에 비해 B.C. 400년의 한국인 식량 생산자들은 조몬 수렵인들에게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이미 철기와 집약 농업에 관한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P. 665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리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정치적 집단 사이의 경쟁이 혁신을 자극한 반면, 통합된 중국에서는 그러한 경쟁의 부재가 혁신을 춤추게 했다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유럽보다 정치적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하면 더 좋아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유럽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지만 기술적으로는 덜 혁신적이었다. 나는 이를 보며 ‘최적 분열의 법칙’을 연상했다. 즉,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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