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탄 불 위 작은 국자에서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면
어느새 흰 설탕은 노릇노릇 해지면서 고소한 향을 풍긴다.
이제 나무젓가락으로 소다를 "콩" 찍어서 휘휘 젛으면
점차 부풀어 오르면서 불투명 해진다.
그때를 놓칠세라 철판위에 국자를 "딱" 때리고 누르면
맛있는 뽑기가 된다.
뽑기를 전라북도 군산에 이사를 가서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봤다.
서울에서는 뽑기라고 하는데 군산에서는 "띠기"라고 해서 한동안 언어적 갭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었다.
아무튼 난 띠기를 한번이라도 먹어보는게 소원이었다.
부잣집 애들은 모양이 안이쁘다고 동전을 쌓아놓고 국자를 휘져어 댔지만
난 항상 그 옆에 앉아서 그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국자로 하는 뽑기 옆에는 항상 화살을 던지는 굴레 돌아가고 있었다.
화살을 잘만 던지면 50원만 내고 실내화 주머니 3개만한 잉어사탕을 먹을 수 있었다.
역시나 돈 깨나 있는 아이들은 연신 화살을 던졌고,
그들은 잉어는 못타도 중간 크기의 칼은 항상 쪽쪽 빨면서 집에 갔다.
난 역시나 돈주고 하진 않았고, 그 옆에서 주로 깨진 것들을 처리했다.
어렸을 때 뽑기는 사먹고 싶지만 돈주고 사먹긴 아까운 것이었다.
돈도 없었을 뿐더러 왠지 더러워 보였다.
그래도 맛을 본다는 차원에서 애들이 주는 걸 얻어는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옆에서 얻어먹고, 주워먹고 하는게 더 더럽지만 말이다.
난 23살이 되어서 뽑기가 다시 먹고 싶어졌다.
다시 먹고 싶어졌다기 보단 항상 먹고 싶었지만 유난히 더 먹고 싶은 것이 옳다.
그러나 어렸을 때 기억이 사라나서 길에서 파는건 도저히 못먹겠더라.
결국 종로 광장시장 그릇 도매 전문상가에 가서 뽑기 국자와 판을 구했다.
별, 사람, 하트 모양을 넣는 누름쇠 역시 구했다.
그렇게 집에서 처음 뽑기를 해먹는데 만원이 들었다.
23살이나 되어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뽑기를 해먹는 아들의 모습이 어머니의 눈에는 퍽이나 대견스러웠으리라.
그렇게 소원 성취 하듯 먹은 뽑기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뽑기가 맜있는게 아니라 뽑는게 맛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