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찰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용하게 칼을 잘 가셨다. 한찹을 숫돌에 갈고 나서는 칼과 직각이 되는 방향으최 손끝을 대어 아주 가만히 만져보시괴는 만족할 때까지다시 갈곤 하셨다. 부엌에서 쓰는 크고 작은 칼이 무디어지면어머니는 할아버지께 칼을 갈아달라고 하셨고, 그러면 할아버지는 장독대에 갖다놓은 숫돌파 나무로 만든 숫돌 받침을 가져오라고 내게 시키셨다. 할아버지가 칼을 가는 모습은 참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 옆에 조그리고 앉아 물이 모자라면 물을떠다 드린며, 칼 가는 모습을 하염 없이 지켜보곤 했다.
슥슥 칼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하얗게 살이 드러나는 칼날의 모습은 가뿐합과 신선함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검은 때를 벗고 제 빛깔을 되찾으며 드러나는 그 예리함, 베어야 할 배추며 무며 고구마며 이런 것들의 살 슥을 파고드는 부드러운감촉, 팔놀림이 훨씬 수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뿟한 어깨, 할아버지는 그런 것을 가져다주셨다.
나는 낫이나 칼을 그렇게 산뜻한 물건으로 바꾸어주는 숫돌을 들어 옮기면서 작지만 묵직한 숫들을 늘 대단한 물건이라고생각했다. 쇠로 만든 칼을 예리하게 벼리어주는 돌이니 어찌예사로운 돌이라 하겠는가. 쇠보다 단단하고 쇠를 갈아서 다시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제 용도에 맞게 쓰일 수 있게 만들어주니 어찌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만 생각했지 칼이나 낫을 예리하게 벼리어주는 동안 숫돌도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쇠를 그냥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요술을 부리는 제 몸도 닳아 없어지면서 칼날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무딘 연장을 날카롭게 바꾸어주는, 쇠보다 단단해 보이는 숫돌도 보이지 않게 제 몸이 깎여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는 쇠절굿공이로 젖은 쌀을 찧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절굿공이가 닳아 작아지더라고 말한바 있다.
쇠절굿공이는 천하에 지극히 강한 것이고, 젖은쌀은 천하이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다. 지극히 강한 것으로 지극히 부드러운 것을 짓찧으니 , 얼마 안 되어 고운 가루가 되는 것은 필연의 형세이다. 그러나 쇠절굿공이도 오래되면 닳고, 깎이어 작아지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으로 통쾌하게 이기는 자도 반드시 남모르게 손실을 당하고 있는 게 있음을 알게 되 었다. 「이목구심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변함없이 굳세고 강한 것은 없는 것이다. 젖은 쌀을 찧으면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닳아 작아지며. 쇠를 갈아주면서도보이지 않게 깎여 나가는 것이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이다.
-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