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 관한 짧은 단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고2때 읽고, 후에 '파우스트'를 읽고 또 그의 시집을 읽었고, 다른 기타등등의 작품을 읽었던거 같다.
독일의 바로 옆나라 프랑스의 작가와 많은 사상가들도 있었지만...나는 어쩐지 독일인들의 작품들이 와닿더라.
비록 세계1차대전, 세계2차대전 등등 큰 전쟁을 일으키며 많은 학살과 잔혹한 폐허를 유럽 전방위 국가들에게 남긴 나라 독일이지만....
독일인들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일본보다는 전쟁 때문에 생긴 자신들의 잘못들에대해 많은 반성을 한다고 들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본론으로 독일문학사상 괴테를 모르고선 독일문학 자체를 얘기한다는 것은, 한세기의 문학적 영웅을 터부시하는 것 이상으로 독일문학지식의 범주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나폴레옹도 존경했다던 괴테.
작가이자 시인이며 또한 정치가였던 괴테.
솔직히 과학자로서의 괴테는 내가 아는 한가지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그의 과학적 오류를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서 증명해냈으니깐.
천재하면 떠오르는 세 사람.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내가 지금 얘기하는 괴테.
괴테는 아주 부유한 상류가정에서 태어났다.
특히 괴테는 문학, 역사, 신학, 정치, 법률, 고고학 등등의 모든 학문을 어렸을 때부터 다루었으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을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훌륭한 예술가로서의 괴테는 그의 좋은 가정환경 속에서 감수성 풍부한 어머니의 사랑에 싸여 그림 공부에 치중한 데서 찾는다.
괴테는 미술, 연극 작품등을 철저히 독파한 일도 있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려고 라이프찌히 대학에 입학한 후, 좀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면서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호흡하며 본격적으로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괴테 역시 많은 독일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초기엔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작품들을 썼다.
그러면서, 괴테는 질서와 조화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로 서서히 변모해 간다.
그리고 수많은 여인들과의 연애....괴테의 여성편력에 관해서 나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판단과 그에 따른 해석을 할 수가 없다.
나의 연애관이 이처럼 폐쇄적인 것, 이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솔직히 개인적인 역사에 비극이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82세의 생애를 마쳤다.
괴테는 휴머니스트이며 이상주의자이다.
그점은 내 자신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그러나 괴테는 기독교신자는 아니었다.
그는 범신론자였고, 또한 사족이 되겠지만 내가 아는 수많은 문인들이 무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또는 범신론자이다.
괴테에 관해 써내려가면서 지금도 두 갈래의 길에서 멈춘다.
정말로 기독교적 형이상학적인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리고 유물론적 시각에서 보자면, 나의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자면, 나의 상반신은 천국에 갈 것이며, 하반신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두렵지 않다.
오늘은 특히!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