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중일기 - 임진년(1592년) 3월 27일(병술/5월8일) 맑고 바람초자 없다.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동쪽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배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장계-임진년(1592년 5월)에... 그런데 일찍기 왜적들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배'를 만들었는데, 앞에는 미르머리를 붙이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였으며, 비록 전선 수백 척 속이라도 돌입하여 포를 쏘게 되어 있으므로 번 출전 때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갔다. 그래서 먼저 거북배로 하여금 적선이 있는 곳으로 돌진케 한 다음 천,지,현,황 등의 여러 총통을 쏘게 하자, 산 위와 언덕 아래와 배 지키는 세 곳의 왜적들도 철환을 비오듯 난발하는데, 간혹 우리나라 사람도 섞여서 쏘고 있는지라, 더욱 더 분하여 노를 빨리 저어 앞으로 나아가 바로 그 배를 두들겼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일시에 구름같이 모여 철환, 장전과 편전, 피령전, 화전을 천자, 지자 총통 등에 넣어 비바람같이 쏘아대면서 저마다 힘을 다하니, 그 소리가 천지를 흔드는데, 왜적들은 중상하여 엎어지는 자와 부축하며 끌고 달아나는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높은 언덕으로 도망쳐 진치고서는 감히 나와서 싸우려는 엄두를 못내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 중부장 광양햔감 어영담, 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 후부장 흥양현감 배흥립, 좌척후장 녹도만호 정운,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좌별도장 우후 이몽구, 우별도장 여도권관 김인영, 한후장 전권관 가안책, 급제 송성, 참퇴장 전첨사 이응화 등이 번갈아 드나들면서 왜선을 몽땅 당파,분멸하였으며, 김완은 우리나라 소녀 한 명을 찾아냈고, 이응화는 왜인 한 명의 목을 베었는데, 왜놈들이 멀이서서 바라보고는 부르짖고 발을 구르면서 대성통곡하였다. 나는 여러 배에서 용사를 뽑아 왜적의 목을 베려고 계획했으나, 산위의 덤불과 나무들이 무성하고 빽빽하며 날도 저물었기 때문에 도리어 피해가 있을 것이 염려되어 적을 수색하여 목 베지 못하게 하고, 짐짓 소선 몇 척을 남겨두고 끌어내어 섬멸할 계획을 세우고, 밤을 이용하여 배를 돌려 사천땅 모자랑포로 옮겨 진을 치고서 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