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왜 주구장창 책만 읽고, 네 글은 쓰지 않는 것이냐고 다그치지만 난 사실 읽는 게 훨씬 좋다. 내가 글을 쓰고자 했던 것도 실은 보다 잘 읽기 위함이었고,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볼까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도 책을 살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을 찾다 내린 차선의 결정이었다. 만약 읽을만한 책이 계속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냉큼 책읽기를 그만둘 수도 있겠지,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가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박민규의 『핑퐁』같은 소설이 발표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 되겠다. 젠장, 왜 이렇게 재밌는 거야...
‘허약하고, 겁이 많고, 눈에 띄지 않고, 공부도 못한다’는 전형적인 따 스타일의 중학생인 못은 같은 반 친구인 치수가 ‘야, 못!’ 하고 부를 때만 반응한다. 치수에게 맞는 모습이 마치 망치로 못을 박을 때의 모습과도 같아 그렇게 불리우는 못의 유일한 파트너는 (친구라고 부르기엔 좀...) 모아이이다. 이스트 섬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의 거석처럼 얼굴이 거대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모아이 또한 치수와 그 친구들로부터 나와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전형적인 따 소년...
그렇게 동병상련의 생활을 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벌판에서 탁구대를 발견하고 느닷없이 탁구를 치기로 계획을 한 후에 탁구용품을 파는 가게인 에서 전직 탁구선수로 귀화한 한국인인 세끄라탱을 만나게 된다. 핼리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기다리는 모임의 회원들이기도 한 모아이는 이 모임을 통해 편의점 주인과 세끄라탱 등의 사람들과 연을 맺고 있는 상태이고, 못은 이런 교류마저도 부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못과 모아이는 서로를 향해 랠리를 시작한다.
사실 소설의 앞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이거 실망을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박민규 특유의 넉살과 허황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무지막지한 자신감의 포스는 느낄 수 있었지만, 이거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셈... 하지만 곧이어 이 괴물같은 작가의 괴물같은 상황설정과 괴물같은 논리와 거기에 괴물같은 재미가 뒹굴뒹굴 굴러오기 시작하는데 이거야 원 걷잡을 수가 없다.
“모아이의 집은 시의 외곽에 있었다. 정말 멀었다. 시의 지도를 같은 크기의 세계지도와 겹친다면 북극, 정도와 일치할 것 같았다...”와 같이 자유자재로(그럼에도 절묘하고 신묘한) 구사하는 비유는 작가의 거대한 장점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같은 반 친구들한테 뭇매를 맞으면서도 준비해간 돈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이를 지켜보던 노인들에게 안마를 받으며 그 돈을 주는 모아이이나(“너무 맞아서 그러는데… 혹 안마를 받을 수 있으면 일인당 백만원씩 드리겠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산 섹스인형인 캐서린을 직장상사가 강간했다며 우는 핼리혜성 동호회의 회원(“저는 울면서 캐서린을 씻겨주었습니다.”)이나, 조작된 실험공간에서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으면 지렛대를 누르는 동작에 있어서는 슈퍼한 쥐를 기를 수 있듯이 탁구를 치는 비둘기가 만들어졌고 그 비둘기에게 21대 19로 졌다는 세끄라탱(“그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어떻게 되긴, 그렇게 살다 죽었지.”)과 같은 절대 비교대상을 불허하는 캐릭트의 작가가 가진 장점을 들여다보자면 빙산의 일각이다.
“아무렴, 어떠냐는 것이다. 누가 따를 당해도, 누가 자살을 해도, 누가 살해되거나 누가 잠적을 해도-실은 그것이 인류의 반응이다... 따를 당한다는 것 말이야… 소외가 아니라 배제되는 거라고. 아이들한테? 아니, 인류로부터...”
사실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앞서 언급한 모든 장점들을 뒤죽박죽 마구 뒤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맛을 지닌(사실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이 우주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이기도 할 터...) 허름한 함바집의 비빔밥을 만드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스케일의 장대함은 성석제나 김영하가 보여주는 위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두 명의 중학생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소설이 사실은 인류의 역사가 굴러가는 숨겨진 원리를 핑퐁핑퐁 계속되는 탁구의 랠리를 통해 (도대체 탁구에 이렇게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니...) 설명할 수도 있다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이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 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영원히 계속되는 듀스포인트의 세계에 어느 날 착상을 하듯 탁구대가 있는 벌판에 도착한 탁구계의 외계인들, 그리고 결국 인류의 운명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게 된 왕따 소년 못과 모아이... 인류를 인스톨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왕따나 당하면서...) 계속 시스템을 돌릴 것인지, 못과 모아이는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 극도의 상상력을 구사하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또박또박 모두 뱉어내는, 이 참신하기 그지없는 늦깎이 소설가의 괴물같은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기대 백배다. 책을 모두 읽기도 전에 이 소설가의 다음 글을 어서어서 읽어보고 싶다고 희망하는 독자에게 무슨 글쓰기의 욕망이 생길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