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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Rire : Essai sur la significance du comique』

김대옹 |2006.10.08 18:01
조회 14 |추천 0

『웃음:희극적인 것의 의미에 관한 소론』

 

 

                                                  Written By. Henri L. Bergson


 

 

길거리를 달리고 있던 한 남자가 비틀거리다 넘어진다. 이를 본 행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만약 그가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을 생각으로 그랬다는 것을 사람들이 가정할 수 있다면 그들은 웃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본의 아니게 주저앉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웃는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태도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에 의도하지 않은 바가 있다는 것, 즉 실수 때문이다. 길 위에 돌맹이가 하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걸음걸이를 바꾸거나 그 장애물을 피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유연성의 부족으로, 혹은 잠시 방심했거나 몸이 경직되어 있어서, 말하자면 몸이 뻣뻣해지거나 이미 지니게 된 속도의 결과로 인해, 상황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근육은 계속해서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은 넘어지게 되고, 그것을 보고 행인들은 웃는 것이다.

 

 

이제 자신의 사소한 일에도 수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임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의 주위에 있는 물건들에다가, 한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속임수를 부려놨다고 해보자. 그리하여 그가 펜을 잉크병에 넣으면 거기에서 진흙을 끄집어 내게 되고, 단단한 의자에 앉는다고 생각하고 앉지만 마루 바닥에 넘어지는 등, 결국 엉뚱하게 행동하고 쓸데없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속도의 결과에 의한 것으로, 습관이 그러한 움직임을 이미 몸에 각인해 두었기 때문이다. 행위를 중단하거나 바꾸었어야 했다. 그러나 천만에, 그는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일직선을 나아간 것이다. 따라서 사무실에서의 짓궂은 장난의 회생자는 길거리에서 뛰어가다가 넘어진 사람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동일한 이유로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다.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우리를 웃게 하는 것은 세심한 융통성과 민첩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의 어떤 기계적인 경화이다. 이 두 경우에 있어서의 유일한 차이점은, 전자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 일어난 데 반해, 후자는 인위적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행인이 구경만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실험한 것이다.

 

 

 

어쨌든 이 두 경우에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은 외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웃음거리는 돌발적인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사람의 표충에 기인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스꽝스러운 것이 내부에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경직성이 드러나는 데 있어서 상황의 우연성이나 사람의 장난에 의한 장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 대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소질로부터, 자연스러운 작용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계기들을 사람 자신이 이끌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반주에 뒤처져서 부르는 노래처럼,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막 했던 일에 항상 전념하는 사람을 가정해보자. 감각과 지성에 선천적으로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이젠 적합치 않은 말을 계속해서 지껄이는 사람, 그래서 결국 눈 앞의 현실에 대처해야 할 때, 지나가버린 가공의 상황에 계속 자신을 적응시키려 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경우에 우스꽝스러움은 그 사람 내부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 즉 소재와 형식, 원인과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람 자신이다. 방심한 사람(우리가 지금까지 묘사해 왔던 인물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이 일반적으로 희극 작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일까? 라 브뤼예르도 이러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 사람을 분석하면서 희극적인 효과를 무진장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지나치게 남용했다. 그는 메날크에 대해 중언 부언하면서 지나치게 길게 늘어놓아, 가장 길고도 세세한 묘사를 하고 있다. 아마도 주제의 용이함이 그를 붙든 모양이다. 결국 방심과 더불어 우리는 희극성의 원천 자체에 도달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원천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사실들과 사상들의 어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웃음에 본래적으로 내재한, 중요한 경향들 중 하나를 따라가게 된다.

 

 

                            - "희극성의 원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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