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예수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마 1: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즉. 삼위일체론으로 봤을때 예수=성령입니다.
그럼 성령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롬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령이 우리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하셨는데 결론에 가서는 예수님께서 간구하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이나 예수님은 결국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이라고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지은 모든 불의와 허물을 변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대언자라고 말합니다.
요일 2장 1절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서 대언자라는 말은 ‘도와준다’ 라는 뜻을 지닌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를 번역한 것인데 요한복음에는 이 말이 보혜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언자’나 ‘보혜사’는 같은 성령을 칭하는 말씀입니다(요한일서 2장 난하주 3번 참조;대언자=보혜사). 그래서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증거하셨으니, 보혜사이신 예수님이나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같은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으니, 보혜사=성령, 보혜사=예수님, 그러므로 예수님=성령이라는 관계가 분명히 성립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요셉-예수님에 이르는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에서 시작해서 아담-하나님에 이르는 족보입니다.
왜 이런 차이점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누구의 후손입니까? 다윗의 후손입니다.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솔로몬의 후계를 다루고 있는 족보가 마태복음입니다.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나단의 후계를 다루고 있는 족보가 누가복음입니다(눅 3:31).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에 잉태되었고, 10개월동안 양육받았고, 출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엄연히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다윗의 후손이 되십니다. 그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 되실 수 있었던 겁니다.
성령=예수 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입장의 아버지는 요셉입니다.
2)예수의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마태복음의 기록은 유대인계통에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아버지격인 요셉의 족보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은 성령으로 나셨고 모든 사람의 근원인 사람 예수의 족보입니다. 근원은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성령으로 나셨으므로 육신의 모친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이나 마리아나 같이 다윗왕의 혈통을 이은 후손입니다.
요셉은 다윗왕 -> 솔로몬 의 계통이며, 마리아는 다윗왕 ->나단의 혈통입니다.
3)다윗은 예수의 몇대 위 조상일까?
족보에 전 가족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구약과 비교하면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 역대기, 열왕기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 몇 대를 비교하는 것은 의의가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족보가 다르니까요
4)예수의 모친은 누구일까?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19절). 보고 싶은 아들 예수가 갈릴리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모친 마리아는 한 걸음에 달려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가는 길에 예수의 동생들도 동행합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은 가버나움 근방에 머물러 계십니다. 모친과 동생들이 사는 곳은 나사렛으로 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혈육의 정을 확인하고 나누고자 하는 그들의 발걸음에는 아무런 장애도 불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집을 오랫동안 떨어져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들 예수 생각에 모친 마리아의 마음은 안쓰러움조차 있었을 것입니다. 제 때 밥은 먹는지, 잠자리는 어떠한지, 건강은 괜찮은지.... 모친 마리아의 가슴은 큰아들 예수에 대한 걱정에 밤잠 설치는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전에 고향 나사렛에 돌아왔다가 고향 사람들의 핍박에 생명의 위협마저 받은 일도 있었기에 더욱 애정과 그리움이 컷을 것입니다(눅4:16-30). 예수의 동생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널리 퍼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문으로 인해 마음 한구석에는 뿌듯함과 설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기가 치솟고 있는 예수를 아들로 혹은 형님 오빠로 두고 있는 가족들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가족간의 뜨겁고도 감격스러운 상봉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아들 예수에게로 혹은 형님 예수에게로 나아가는 길이 용이치 않습니다. 애써 길을 뚫어 앞으로 전진해보려고 하지만 보고 싶은 예수에게로 나아가는 길은 꽉 막혀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무리 밖에서 주위의 도움을 구합니다.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20절). 급히 사람을 시켜 면담을 요청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아울러 병자들도 고치시는 우리 예수님에게 긴급하게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모두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누구고 또한 형제는 누구일까? 부러움으로 어우러진 궁금증이 더해갑니다. 그리운 어머니와 보고 싶은 동생들이 왔다는 소식에 예수 그리스도도 얼마나 기쁘고 반가워할까?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21절). 매우 충격적인 발언입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진리입니다. 혹 기대를 잔뜩 모았던 모친 마리와와 동생들은 인간적으로 섭섭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둘러 선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가족'의 개념이 혈육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영적 원리를 따라 이루어짐을 증거한 우리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소망과 위로를 줍니다.
멀리 고향집에서 그리운 어머니가 왔다는 말에 '어머니'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와 힘껏 부둥켜안고 모자지간의 감격스러운 만남이 가슴 뭉클하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색을 하고 언뜻 듣기에 엉뚱한 말씀만 하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에 실망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 예수님께서 혈육의 정을 아예 무시하고 끊어버린 매정하고도 불효 막심한 분은 아닙니다. 가족들이 찾아 온 모습에 반가움과 기쁨이 우리 주님의 가슴에도 끓어올랐을 것입니다. 다만 주 하나님의 참된 가족이 누구인가를 가르쳐주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허나 하늘의 성부아버지는 마리아의 순결한 몸과 마음을 보시고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탄생시킬 여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천사장 가브리엘은 이 크고 기쁜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했고 이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크게놀라 두려워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신앙으로 담대히 하늘의 거룩한 신비를 받아들인다. 기독교 최대의 린리를 품는다. "주늬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그런후에 메시아를 이태케 된 ㅣ쁨과 감격으로 그녀는 마리아의 찬가를 힘차게 부른다(누1:46~55)
세례 요한의 모친인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향해 "여자 중 복된 자여"라고 말했듯이 인류가 생긴 이래 여자 중 가장 복된 자는 마리아가 아이니었을까? 예수님으로부터 '어머님' 이라는 소리를 평생 들었으니 말이다.
5)마리아는 동정녀 였을까?
http://cafe.naver.com/anyquestion/178 <-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정답은 '예' 입니다.
6)예수가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
원래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테어나서 어른이 되어서는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호구 조사령을 내리는 바람에..
사람들은 자기 옛 고향으로 돌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두 갈릴래아 나자렛을 떠나 유다지방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지요.
그때 마리아와 같이 갔었는데 그 당시 각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때문에
각 여관에는 방이 없어 결국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호구조사를 끝내고는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 갔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탄생은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성장은 나사렛에서 입니다.
7)예수는 언제 태어났을까?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은 BC4년으로 봅니다. 구레뇨가 한 호적의 시기와 맞지않는 것 등에 대하여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대로 본다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린 때에 호적이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바로 완료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완전히 호적등록이 끝난 것은 구레뇨가 총독되었을 때 였다고 봅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파란글씨만 성경의 기록이고 밑은 설명입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 첫번 째 한 것이라” 는
“이 호적등록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린 BC4년경에 시작되어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 AD6년에야 유대, 이스라엘, 수리아 등 인근지역까지 호적등록이 처음으로 완료된 것이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로마에서 유대만 호적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예를 들어 10년만에 호적등록이 완전히 끝났다고 해서 너무 길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8)에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이야기는 예수초기인가 말기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것은 두번 있었습니다. 요한복음2장과 마태복음 21장을 잘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2장은 예수님이 활동하시고 처음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을 배푸시고 난 초기의 일입니다
9)예수의 가르침은 주로 어느지역에서 했는가?
갈릴리지역에서 주로 하셨으며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에 몇 번 올라가셨고 죽으시기 전에 유대지역에 계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죽이려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루살렘 지역으로 갈 때마다 아주 무서워하고 가기 싫어하였습니다.
10)예수처형방법은?
유대인은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법적으로 사형집행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기들끼리 사형판결을 하고 빌라도에게 로마법대로 사형언도하도록 요청하고 압력을 넣은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는 것을 알았고 사형언도를 할 수도 없었지만 너무나 거센 유대인의 폭동이 두려워서 손을 씻고 책임회피하며 사형언도를 한 것입니다. 역사기록에 보면 당시 빌라도가 예루살렘의 로마군대로 폭동을 진압할 힘이 없으므로 가이사랴에 군대파견요청을 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전체 과정을 전부 혼자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11)예수는 죽는방법?
나무 형틀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부정하여 일자로 된 형틀이였다고도 하고 T자 모양의 통상 형틀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죄명을 기록하기 위하여 필요했으므로 T자형 형틀이어도 윗 부분을 추가하여 십자가가 분명히 되었을 것입니다.
12)예수가 죽은 이유는?
십자가는 당시 극악한 죄인을 벌하는 저주의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저주를 담당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예수님의 육체에 받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유다 어떻게 죽었나?
스스로 목 매달아 죽었는데, 줄이 끊어져서 땅에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터져 흘러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미리 목 매었을 때 죽었는지 떨어져 창자가 터져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4)예수의 성격은?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악인을 심판하시며 사탄은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도 잘 어떤 분이신 지 나타납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도 용서하시지만, “독사의 자식들아” 하시며 날카롭게 추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적당히 넘어가는 분이 아니십니다.
15)예수의 예언은 이루어졌는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는 말씀을 두고 유명한 불신론자 버트란트 러셀은 그후 제자들은 다 죽고 예수님의 재림후 임하는 영원한 나라를 본 사람이 없으니 거짓말이다 라고 주장하여 많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또 여러 성경의 틀려 보이는 말을 지적하고 설득하여 많은 기독교인이 신앙을 버리게 하여서 당시 기독교계의 금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건 사기이고 착각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건 그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세 사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이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후, 바로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이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직접 본 사실을 그들은 결코 잊지 않았고 다른 제자들과 후손인 우리까지도 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마태복음 24장 등에는 마지막으로 말세가 끝나고 실제 예수님이 권능으로 환난 후에 임하시는 모습을 예언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16)죄범한 형제에게 가르치는 예수의 용서법?
죄 용서의 방법중 마태복음 18장 15~17절은 같은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간의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22절은 우리는 같은 죄인임으로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고 마음으로 용서해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사건은 명확히 판단하고 집행하여도 사람 자체를 미워하거나 정죄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17)토기장이에게 준 은전 서른 닢(세겔)은 누구의 짓인가?
토기장이의 이야기는 예레미야에도 18장, 19장에도 나옵니다. 스가랴에 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특징은 우선 선민인 이스라엘인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시작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본답니다. 성경의 예언서는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등등으로 스가랴, 말라기까지 포함하여 이런 순서로 봅니다. 종종 그들은 이 예언서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예레미아의 이야기로 말하기도 한답니다.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레미아서의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쓸 수 없는 악한 그릇이어서 부셔버리고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12제자로 새로 가입된 맛디아입니다. 토기장이는 하나님 이시고 악한 쓸 수 없는 그릇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우리 각 사람도 하나님 앞에 아주 존귀한 그릇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하고 쓸 수 없게 되면 부셔져서 사탄이 벌 받아야할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18)마리아의 예수 임신기간은 몇년이상인가?
헤롯왕이 죽은 날짜와 예수의 탄생과 상관이 있습니까. 7번 답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전부 다는 못 했습니다. 시간과 여건이 충분하자 않기에 허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본질 적인 구원론은 변하지 않습니다. 말도 안되는 질문 삼가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