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자 BBC 인터넷판은 증권사 객장에서 '노대통령 탄핵'이란 제목이 1면에 큼지막하게 실린 신문을 걱정스레 읽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을 게재하고 이 사진에 '북한 핵실험 사태로 시장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이를 본 국내 네티즌들은 “탄핵도 ‘핵’인가?” “BBC에는 한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라는 내용의 댓글을 올렸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북한 핵실험이 새로운 탄핵 요인이라는 중의적 표현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조짐은 이미 노 대통령과 열린당, 그리고 간의 불협화음에서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핵실험 직후인 9일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가 10일에는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는지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한발 후퇴했다. 핵실험 직후 격앙된 분위기에서 강경발언을 쏟아냈던 열린당 지도부도 10일 대북 포용정책을 무조건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한명숙 총리는 10일 본회의에 출석해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동일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 핵실험 이후 노 대통령과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일련의 발언들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을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여론과 국제사회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이 대북 포용정책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압력은 전시작전권 환수논의 중단 요구 때처럼 커지면서 여권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 열린당이 궁지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처신하고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소신과 철학을 더 내보이는 운동권의 체질이 소나기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 때 그러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0일 열린당 의원들이 드디어 해서는 안될 망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북한 핵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김한길 원내대표의 말로부터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라는 말, 심지어는 북한이 국제사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는 김근태 의장의 칭찬에 가까운 말까지 그 좌파적 색채를 그대로 들러내는 위험수위는 북한의 꼴통적 작태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열린당의 이목희 의원은 이날 국회 재경위에서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게 남한을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니지 않으냐. 핵무기는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라고 말했다가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으로부터 “핵 개발의 용처를 누가 아느냐. 우리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냐”는 반박을 당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북핵이 북·미 간의 문제인 것은 상식”이라며 억지를 계속 부리다가 이번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으로부터 “북·미 간 문제라면 왜 러시아나 중국, 일본이 신경을 쓰겠느냐. 북한 핵이 남한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여당의 인식이냐”고 힐난을 당하기까지 했다.
열린당은 이처럼 북한 핵문제에 대해 아직도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자국책이 아니겠느냐는 식의 북한 대변인을 자임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자신들의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준다. 김원길 원내대표는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위기가 외부에서 비롯될 때 내부 단결과 일치된 대응이 절실하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면서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한나라당을 비난했고, 김근태 의장도 "한나라당은 오늘의 상황을 준전시상태라고 주장하고 있고 전면적인 대결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경제가 어떻게 되던 상관 없다는 말이냐"고 따지면서 "지금은 경제에 주는 충격을 덜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니 한나라당은 우리 경제를 곤경에 빠뜨리는 언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할 말을 잃게 한다. 북핵이 한국을 향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됐다는 듯한 말들을 하다가도 돌아서서는 위기상황이니 내부에서 결속하자는 철면피들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이 하룻 만에 말 바꾸기를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얼굴에 철판깔고 치받는 저급한 열린당의 투사적 기질과, 그런 것들에게 지기 싫다는 대통령 자신의 앙칼진 또 다른 투사적 기질이 맞물린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유야 어떻든 그런 질 낮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계속 보이느니 차라리 이 기회에 탄핵이라도 받아 자리를 뜨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나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니 BBC보도가 앞서가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탄핵이냐 하겠지만 이렇게 탄핵을 다시 말할 정도로 이번 북핵사태는 현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 자금은 한국이 댄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8년 넘게 대북 포용정책을 펴면서 98년 이후 쌀-경수로 건설비 등의 명목으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8조원 이상의 거액이 이전된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결국 북한의 핵실험 자금을 한국이 댄 것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10일 통일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대북 송금 지원 투자 총정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돈은 7조9300여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북한에 제공한 모든 형태의 지원,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사업에 들어간 투자, 각종 현금 지원이 망라돼 있다. 또 북한 경수로 건설을 위해 제공된 대출금과 발생 이자도 들어 있으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보낸 불법 대북 송금액 4억5000만 달러는 제외되어 있으므로 이것까지 추가시킨다면 8조가 훨씬 넘는 규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의 각종 지원 규모는 김대중 정부 시절 1조4,915억 원, 현 정부 3조970억 원 등 모두 4조5,885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연간 대북 지원 규모가 1조42억 원으로 단일년도 지원액이 1조 원대를 처음 넘어선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대북 지원 규모는 2,422억 원으로 전년(563억 원)에 비해 4배 이상으로 급증했으며,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직전 연도(1,757억 원)에 비해 5배 이상으로 늘어난 9,744억 원을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정치적 목적 하에서 이뤄진 지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2002년부터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규모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지난해 1억2,064만 달러로 6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결국 국제사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권을 무시하는데 반비례하여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외의 모든 지원을 줄여가는 추세에 발맞춰 한국 정부의 지원 규모는 마치 그것을 상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대 정권중 좌파적 색채가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 두 정권의 장기집권을 통해 이른바 햇빛정책 운운하면서 북한에 대한 퍼주기가 상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북한은 이번 핵실험 강행까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식의 배은망덕한 뒤통수 때리기를 더욱 가열 차게 전개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꼴만 우습게 만들고 최대 지원자를 잃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정부의 선전선동에 속았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환상에서든 북한지원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대다수 국민들로 하여금 기나긴 미몽에서 깨어나게 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비싼 수업료를 낸 학습효과라 생각하면 그나마 덜 답답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