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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령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1)-[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上

이양자 |2006.10.11 15:44
조회 642 |추천 0


404쪽 | 210*148mm (A5)

(알라딘의 책 소개 난입니다)


책소개
송경령은 손문의 부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는 1920~1930년대 중국혁명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을 만하다.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에 의해 "중국의 미완성 혁명의 양심"이라 불리웠던 송경령의 일대기가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스라엘 엡스타인에 의해 저술되었다.
송경령은 근대 중국의 유명한 '송(宋)씨 가문'의 둘째 딸이다. 대만 총통 장제스의 부인이었던 동생 미령, 그리고 장 정권의 재정부장이며 갑부인 공상희(孔祥熙)의 부인이 된 언니 애령과 함께 급변하는 중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송경령은 혁명가의 아내로서 또한 혁명가로서의 치열한 삶을 살았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송씨 가문의 세 딸 중에서 송경령이 유독 중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았던 것은 유수한 집안에 태어나 유학까지한 인텔리였지만 자신의 생애를 낮은 곳의 인민들을 위한 헌신할 수 있었던 그의 애국심 때문이었다.
대륙의 한복판에서 중국 근현대를 관통했던 그녀의 전기는 상.하 두권으로 나뉘어 유학시절부터 만년의 재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그녀의 투쟁적인 삶 뿐 아니라, 우아한 풍모와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인품 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매력이 십분 잘 묘사되어 있다.

저자소개


이스라엘 엡스타인 - 191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출생하여 유년시절에 양친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천진타임즈』기자, UP통신 기자, 『보위중국동맹 신문통신』편집장 『중국건선(현 今日中國)』편집장 등을 거쳤으며, 1950년에 중국에 귀화하였다.
송경령 기금회 고문, 전국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인민전쟁(The People's War in China)>, < 미완성의 중국혁명(The Unfinished Revolution in China)>, <국민정부치하의 노동사정(Notes on Labor in Nationalist China)>, <변모하는 티베트(Tibet Transformed)>, <봉쇄를 뚫고 연안방문>, <엡스타인 신문작품선> 등이 있다.

이양자 (李陽子) - 1942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사 39집> <현대중국의 탐색> <중국근대화 역정속의 주요인물들>, 역서로는 <송경령평전> <송경령과 하양응>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

저자의 말


송경령시대의 중국사나 세계사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이 주목해야 할 여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전기이지 역사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전기가 역사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즉 송경령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지만 중국과 세계의 역사 이해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실제 이 양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송경령은 광범위한 문제들과 관련되며 그 위에 그녀의 풍부한 개인적 자질이 보태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에는 그녀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고서 그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취하였다.
해외에서는, 같은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온화함과 불굴의 의지를 겸비한 인물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중국의 양심'이라고 불렀다.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송경령을 알게 된 행운아들은 그녀에게 고무되었으며 열렬한 팬이 되었다.
당연히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상대편 적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생명은 위협받았고 그녀를 파멸시키려는 음모가 꾸며졌다. 동지들은 차례로 암살되거나 처형되어 쓰러졌으며 때로는 그녀를 공포에 몰아놓기 위해 그같은 수단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일신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전기를 쓰는 목적은 독자들에게 그녀의 모든 면면을 마주 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능하다면 송경령에 대한 신상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말을 통해서 엮어가고자 한다. 즉 수많은 편지를 포함해서 그녀가 저술했던 글들을 이용하여 묘사할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 이스라엘 엡스타인(지은이)
송경령은 세계 평화를 위해 사회활동가로 그리고 여성정치가로 쉬지 않고 정력적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여성들은 과거의 멍에를 영원히 벗어버리고 남녀가 함께 좀더 좋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목표로, 남성들과 완전히 평등한 입장에서 싸우고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어린이들의 육성과 교육에 애정이 넘치는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린이들은 미래 세계를 담당할 국민이며 건설자이기 때문입니다. 송경령은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이었지만 그것이 어떤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확고한 원칙을 지켜내는 강인함을 손상시키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 두 가지가 일체를 이루었습니다.
나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송경령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가져주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 때문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것을 희망합니다. 송경령은 90세 가까이 살았지만 언제나 정신은 젊었고, 모든 나라의 청년들의 미래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 엡스타인(지은이)

미디어리뷰


경향신문 : 송경령(1893~1981)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93년 중국어와 영어로 동시출간됐던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전2권) 번역본. 근대중국에서 송씨 가문 세 자매는 유명하다. 송경령의 언니 송애령은 갑부의 부인이 되어 부(富)를 취했다. 동생 송미령은 장개석과 결혼해 권력에 탐닉했다. 송경령은 ‘중국의 조지 워싱턴’ 손문에게 시집가 중국의 민주주의와 혁명을 위해 한평생을 불살랐다.
그래서 아직까지 ‘중국의 양심’이란 칭송을 듣는다. 그녀는 1914년 ‘중국의 국부(國父)’ 손문의 영문비서가 되었고, 이듬해 나이차가 너무 나고 손문의 삶이 위험하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문과 결혼한다. 손문 타계 이후 1927년 장개석이 혁명을 배반하자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과 연대했으며 사회주의 혁명 성공 이후에는 국가 명예주석이 된다. 그녀는 “(나는) 공산주의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모택동도 다른 사람보다 덜 싫어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녀로부터 중국에 대한 놀라운 균형감각을 얻을 수 있다. - 노만수 기자(2000-06-29)

동아일보 : 이 책은 만년의 송경령이 자신의 사후, 저자에게 전기를 써 줄 것을 여러 번 부탁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가 왜 굳이 이스라엘 엡스타인이라는 서구 지성인에게 자신의 생애 이야기를 부탁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송경령 자신의 개인사 뿐 아니라 복잡하게 굴절된 중국 근현대사를 놀라운 균형 감각과 냉정한 객관성에 입각해 기술하고 있다. -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2000-06-17)

동아일보 : 근대 중국에서 송(宋)씨 집안 세 자매는 너무도 유명하다. 특히 숭칭링(宋慶齡·송경령), 숭미링(宋美齡·송미령) 자매는 각각 쑨원(孫文·손문)과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아내로서 뿐 아니라 독자적 삶에 있어서도 20세기 '두 개의 중국'을 빛낸 가장 위대한 여성이었다.
송경령은 혁명가 손문의 비서로 들어가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여인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너무도 많이 난데다가 손문에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까지 딸려 있어서 경령의 부모는 완강하게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했지만 결국 그녀는 위험과 고난에 가득찬 혁명가의 아내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제 왕조를 타도하고 공화국을 세워 초대 총통이 되었던 손문은 중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근대적 중국의 건설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원세개 등의 구 봉건 관료체제와 투쟁하였는데 이 와중에서 두 사람은 도쿄의 한 일본인 친지의 집을 빌어 결혼을 해야 했다.
훗날 경령은 '결혼식이 치루어진 후에도 양친은 눈물로 애원하며 그 결혼을 취소해 줄 것을 호소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하였다. 손문은 경령과 단 10년이라는 짧은 결혼 생활을 함께 한 후 세상을 떠났지만 경령은 그의 사망 후 무려 60년 가까운 세월을 남편 손문의 혁명 목적에 충실하게 살았다. 인간 송경령의 진가는 남편 사후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중국과 서구의 국제 명사들과 두루 교류하면서 놀라운 우아함과 온화함 그리고 견고한 원칙과 높은 용기, 여성적 아름다움과 국제적 교양 등을 발휘하면서 국제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은 만년의 송경령이 자신의 사후, 저자에게 전기를 써 줄 것을 여러 번 부탁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가 왜 굳이 이스라엘 엡스타인이라는 서구 지성인에게 자신의 생애 이야기를 부탁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송경령 자신의 개인사 뿐 아니라 복잡하게 굴절된 중국 근현대사를 놀라운 균형 감각과 냉정한 객관성에 입각해 기술하고 있다.
수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 속에 송경령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인품의 향기, 그리고 지성미 같은 것을 함축성 있고 여운 있게 전해줌으로써 국제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애국주의자였던 그녀의 생애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너무도 극적인 중국 근현대사의 순간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잡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즉물적이고 인스턴트화 되어 날로 경박해져 가는 요즘, 깊고 온후하면서도 강인한 한 정신을 만나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전기이면서 전기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2000-06-17)

조선일보 : 폴란드 출신으로 중국에서 기자로 지내다 1950년대 중국에 귀화한 이스라엘 엡스타인이 썼다. 저자는 송경령에 대해 "교양과 교류면에서는 국제적이면서도, 혁명적 애국자로 강인한 심지, 원칙의 견지등이 혼연일체를 이룬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장개석과의 갈등, 모택동, 주은래와의 만남, 손문과 레닌간의 서신왕래를 돕던 일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 (2000-06-17)

조선일보 : 중국의 혁명가 손문의 부인인 동시에 독자적 노선을 견지하며 1920~1930년대 중국혁명에 영향을 미쳤던 송경령에 관한 전기가 한울에서 출간됐다. 에드가 스노우가 "중국의 미완성 혁명의 양심이며 항심"이라고 평했던 여성.
폴란드 출신으로 중국에서 기자로 지내다 1950년대 중국에 귀화한 이스라엘 엡스타인이 썼다. 저자는 송경령에 대해 "교양과 교류면에서는 국제적이면서도, 혁명적 애국자로 강인한 심지, 원칙의 견지등이 혼연일체를 이룬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장개석과의 갈등, 모택동, 주은래와의 만남, 손문과 레닌간의 서신왕래를 돕던 일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 (2000-06-17)

한겨레신문 : 20세기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손문)의 부인으로 먼저 유명해진 이 `송씨 가문' 둘째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전기가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1993년 쑹칭링 탄생 100돌을 기념해 중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출간된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이양자 옮김, 한울 펴냄, 전 2권, 각 권 2만5천원)은 90년 가까운 그의 생애를 근거리에서 포착해 유려하고도 정확한 필치로 풀어냄으로써 “전후 중국에서 출판된 10대 걸작 전기 중 하나로 꼽힌” 책이다. - 고명섭 기자(2000-06-19)

한겨레신문 : “세 자매 중 한 사람은 권력을 사랑했고, 한 사람은 돈을 사랑했고, 또 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했다.” 1930년대 중국 국민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이 쑹칭링(송경령·1893~1981)이다.
20세기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손문)의 부인으로 먼저 유명해진 이 `송씨 가문' 둘째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전기가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1993년 쑹칭링 탄생 100돌을 기념해 중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출간된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이양자 옮김, 한울 펴냄, 전 2권, 각 권 2만5천원)은 90년 가까운 그의 생애를 근거리에서 포착해 유려하고도 정확한 필치로 풀어냄으로써 “전후 중국에서 출판된 10대 걸작 전기 중 하나로 꼽힌” 책이다.
이런 높은 평가는 이 책이 쑹칭링이 살아간 시대의 중국과 세계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생활의 아주 작은 일이나 마음의 동요까지도 상세히 묘사해 전체와 세부를 균형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지은이 이스라엘 엡스타인(85)은 폴란드 출신으로 유년시절부터 중국에서 살다가 50년대 말 중국 국적을 얻은 언론인이다. 엡스타인은 1938년 통신사 기자로서 쑹칭링을 처음 만나 그가 죽을 때까지 돈독한 우정을 교환했다. 특히 첫 만남부터 6년 동안 이 전기의 주인공과 동지로서 일을 함께했고, 평생 11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만년이 돼 쑹칭링은 자신의 이 “신뢰하는 친구”에게 사후에 전기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그에 응답한 결과가 이 책이다.
쑹칭링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13살 때 양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식 고등교육을 받은 까닭에 그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신봉했다. 그가 세 딸을 차례로 미국에 유학을 보낸 것도 이런 체험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인으로서 애국심이 강했던 그는 쑨원과 절친한 사이였고 그의 급진 근대화 사상을 받들었다.
1911년 신해혁명에 성공해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에 오른 쑨원은 1913년 위안스카이(원세개)에게 쫓겨 일본으로 망명해 있었다. 웨슬리언 여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쑹칭링은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켜봤던 쑨원을 다시 만났다. 그때는 쑨원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젊은 칭링은 역경에 직면해 있을 때 보인 쑨원의 강인한 불굴의 인내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쑹칭링은 1914년 쑨원의 영문 비서가 되었고, 이듬해 그와 결혼한다. 나이가 너무 차이나고 쑨원의 삶이 몹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부모가 이 결혼을 격렬히 반대했지만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쑹칭링은 10년 뒤 쑨원이 59살로 타계할 때까지 배우자로서, 제자로서, 동지로서 그와 함께했다. 무엇보다 그는 쑨원에게서 급진적 민주주의 사상을 익혀 혁명가로 성장했다.
1927년 장제스가 혁명가들을 배반하자 그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과 연대해 중국혁명에 앞장섰다.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그는 쑨원에게서 배우고 발전시킨 혁명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국가 명예주석으로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는 전기의 주인공을 이렇게 평가한다. “쑹칭링 자신은 교양과 교류 면에서는 국제적이었지만 그는 무엇보다는 중국의 혁명적 애국자였다. 강인한 심지, 원칙의 견지, 주의깊은 온화함, 높은 용기, 표면에 나서지 않는 겸손함, 두드러진 여성적 아름다움이 혼연일체가 돼 매우 보기드문 품격을 이루었다.”
그것은 갑부 공상희의 부인이 된 언니 쑹아이링(송애령)의 삶과도 다른 것이었으며, 권력욕에 사로잡혀 독재자 장제스와 결혼한 동생 쑹메이링(송미령)의 삶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애드거 스노는 그를 “중국의 양심”이라고 했다. - 고명섭 기자(2000-06-19)

차례


저자서문
감사의 말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
1. 미국 유학시절(1908~1913)
2. 송씨 가계와 성장배경
3. 귀국 그리고 결혼(1913~1915)
4. 혁명가 손문
5. 공화국의 옹호를 위해 : 상해~광주
6. 국공합작과 손문의 죽음(1923~1925)
7. 한 사람의 여성정치인으로(1925~1928)
8. 기로에 서서 - 1927년의 무한
9. 모스크바(1927~1928)
10. 유럽에서(1928~1931)
11. 혁명가들을 위한 구출활동(1931~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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