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민화
민화가 춤을 춘다. 그것도 흥에 겨워 춤을 춘다. 민화가 흥취에 젖어 있는 것이다. 선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가 그러한 예이다. 꽃과 나무와 글자의 획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이 그림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제(悌)'자의 획을 그림과 글씨의 조화로 그린 것이다. 1, 2획은 새 가운데 형제간의 의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 할미새로 부화되고, 3획은 팔랑개비 잎을 가진 나무가 심겨진 화분으로 바뀌었다. 또한 5, 6획은 모란꽃으로 변하고, 나머지 획만 매우 감각적인 곡선의 초서를 그렸다. 그런데 여기서 팔랑개비 잎을 가진 나무와 모란꽃이 S자의 곡선을 그으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꽃과 나무가 춤을 추는 것일까? 그것은 그것을 그린 화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흥취때문일 것이다.
나무와 꽃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에는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선문대학교박물관 (이미지 출처 : 선문대 소장 민화명품도록)
민화에는 밝고 흥겨운 정서가 빛난다. 흥취는 민화에 흐르는 중요한 정서이다.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에 그려진 철화문을 보면, 이미 흥취가 가득하다. 11세기에 제작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에는 새와 나비가 노닐고 당초문양은 자유롭게 구부러져 있다. 어깨에 베풀어진 국화당초문도 S자형으로 춤을 추고 있다. 이러한 흥취는 조선시대 분청사기, 철화백자의 문양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온다. 민화에는 이러한 민간미술을 통해 전해진 흥취가 되살아난 것이다.
민화 속에 담긴 흥취는 이미 고려청자의 문양에 보일 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고려 11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이미지출처 : 삼성미술관 소장품 선집)
흥겨움은 따뜻한 정서속에서도 피어난다. (대구 개인소장)는 흥취와 따뜻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 올라간 연꽃 줄기가 이 그림의 뼈대를 이루고 신구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서기(瑞氣)가 흥겨움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연꽃의 주홍색이 발산하는 따뜻하고 맑은 느낌은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 준다. 하늘에는 가는 선으로 가볍게 묘사된 구름이 편안하게 흐르고 있다. 작가는 연꽃의 맑고 화사한 느낌만을 정제하여 표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따뜻한 속에서 흥겨움이 피어난 작품이다. 대구 개인소장.
연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주제인다. 민화에서 연꽃은 불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상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더러운 속세에서 맑은 꽃을 피우는 진리의 상징뿐만 아니라 합격, 다산, 평화, 풍요 등 여러가지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이기 하다. 는 연꽃만 그린 것은 아니다. 위에 연화도, 아래에 백파주(百坡舟)의 고사인물도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상 서로 어울리기 힘든 주제인데, 민화가들은 과감하게 두 주제를 조합하였다. 그런데 위에 그려진 연꽃들은 마치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 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으로 시작하는 흥타령을 떠올리게 한다. 줄기를 S자형의 곡선으로 표현하여 흥겨움을 과장하여 나타내었다.
반면에 일본 개인소장 는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게다가 여름 막바지라 연잎은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무뚝뚝하거나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맑고 명랑한 기운이 화면에 감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밝은 채색, 맑은 선묘,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는 질박한 형상 때문인 것이다. 연잎은 춤추는 듯 떨어지고, 연줄기, 오리, 물고기를 감싼 장식적인 파도선과 점선으로 화면을 경쾌하게 이끌고 있다. 물고기의 경직된 모습은 연대의 구성적인 선들과 함께 오히려 현대적인 감각마저 느끼게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 출처 : 민화와 장식병풍)
일본 개인소장 (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 민화)
우리는 천성적으로 낙관적인 민족임에 틀림없다. 5천년의 역사를 한 민족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5백여년의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온갖 내우외환을 겪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그림 속에는 어두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인은 촌락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 서로 노래를 하고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오늘날 노래방이 성행한 우리의 풍속은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기질적으로 흥취가 넘친다.
그런데 민화를 보면,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가 언제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고 명랑하다. 민중의 낙천적인 기질이 민화 속에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서구 열강들의 진출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19세기에 유행한 민화에는 오히려 흥겹고 명랑한 정서가 더욱 환하게 빛났다. 그것은 기울어져 가는 조선의 역사를 정서적으로나마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민초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비쳐진다. 누군가 전쟁 시에는 희극이 발달하고 평화 시에는 비극이 성행한다고 했다. 적어도 19세기의 민화에는 이 이론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 정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