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어찌나 감각적인 제목이란 말이냐. 게다가 패션잡지라니, 정말 눈이 얼마나 호사할지 기대만빵, 두근두근, 시사회를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펼쳐지는 패션, 패션, 패션의 향연! 난 절대 신지 못할 10cm이상의 뾰족구두서부터 부츠에 벨트에- 프로페셔널의 자세까지. Boundary spanner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선두에 서서 패션과 유행을 이끌어가는, 영화에 나오는 대로 '생활을 예술로 만들기 때문에 예술보다 더 위대한' 세계. 화려하고, 아름답고, 치명적이다.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런웨이의 사장 미란다는, '남자였다면 사람들이 존경했을' 최고의 실력을 가진 working holic에, 까다로운 악녀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중심축이자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주인공. 아름답고 또 냉혹한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 문제는 네러티브다.
보라색 글씨가 내용 얘기니까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마시길.
물론 원작을 영화에 줄이느라고 고생한 것은 알겠지만, 이 영화는 지나치게 '이야기'를 생략하고 화려함만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
패션계 1인자의 비서인 앤디가 각성해야 할 것은 과연 자신의 스타일이었을까? 제 1비서도 아닌 말단 비서의 옷매무새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단언코 절대 없다. 그녀가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패션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잡지 발간 작업과 회사 구조에 대한 철저한 조사, 하다못해 보스의 각종 취향과 식구에 대한 대처방법이었다. 그녀의 옷이 매일 바뀌는 것은 영화의 네러티브나 인과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영상을 위한 화려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이 입고 있는 패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던가? 절대 아니다! 단지 동료가 권해주는 옷을 그대로 입은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야 주워들은 지식으로 끼워입기야 하지만 말 그대로 철저한 연구나 이해 없이 '주워입은 것'에 불과하다.
왜 옷을 바꾸어입은 후에 갑작스럽게 인정받고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지는 알 수 없다. 미리 일을 처리해 놓은 것 몇가지는 반복되는 요구라면 당연히 비서가 할 수 있는 범위내의 업무였다. 즉, 비서로서의 자질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일의 횟수가 늘고 반복되면서 알게된 '예상가능성'에 의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아서 파리에 갔다고 하자.
왜 주인공은 퍼뜩 정신이 들어 런웨이를 떠나가는가? 물론 자신이 진심으로 걱정하며 사방팔방 뛰어다닌 일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미란다의 모습에, '정치적'으로 회의가 든 것은 관객인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란다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쫓겨날 리가 없지않는가.
그런데 새삼스럽게 그런 미란다의 모습에 실망이라도 한 것인지, 미란다가 이야기한, '이런 생활은 누구나 원해' 라는 말이 뾰족하게 허영의 풍선을 찔러 터트려버린 것인지, 정말 너무도 갑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따라갈 새도 없이 돌아와버리는 그녀의 의중은 알길이 없다~ 감독님, 너무 서두르셨어요.
여하튼 영화 자체의 화려함은 확실히 눈에 띈다. 패션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즐기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초보자로 선택하면, 관객은 함께 주인공과 배우고 커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주인공이 멋드러지게 '환골탈태'할 때 은근한 짜릿함을 받을 관객들 많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심리, 감정변화나 정상적인 네러티브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비추천,
'달콤한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메인카피에 끌려 처세술을 배우고 싶었던 사람에게도 비추천,
그러나 패션에 대해 관심많은 그대, 젊은 날의 고생은 어떻게든 견디겠다는 그대, 어디든 좋으니 취업하고 싶은 그대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