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about 그 여자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여자가 피씨 방에 들어와서, 돈을 내고 나갈 때까지
그 여자를 째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어 있었다.
나쁜 뇬, 숫자 뇬부터 시작해서
변비나 걸려서 치질로 고생해라, 똥 싸다가 파편이나 잔뜩 튀어라 하는 주문까지
그 여자만 보면, 짜여진 무슨 극본처럼 줄줄 외워대곤 했던 것이다.
다행히 날씨가 풀려서 화장실에 물도 나오게 되고,
그 여자가 또 그런 더럽고도 불미스러운 사건을 벌일 수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붙어보지는 못했지만, 생각날 때마다 이를 벅벅 갈아두고 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 화장실 사건 때문에 그 여자를 자세히 보게 되었을 뿐이지,
사실은 그 이전부터 우리 겜방에 자주 오는 단골이지 뭔가.
그저 조용히 와서 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다가 가곤 해서
신경을 안 썼을 뿐이지.
근데, 그 여자, 좀 이상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똥 사건 이후로, 내가 그 여자를 조사한 결과를 보시라.
1- 그 여자는 일주일에 여섯번은 겜방에 올 정도로 단골이다.
근데, 겜방에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가 않다.
나이를 보면 이십대 중반같아 직장인일 법한데,
겜방에 오는 시간은 점심 때쯤, 또는 밤 11시 넘어서였다.
또 어떨 때는 아침에 와서 밤까지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가곤 했는데,
그게 규칙적인 것도 아니었다.
겜방비를 대려면 돈을 벌어야 할텐데, 직장을 다니는 건지 안 다니는 건지.
계속 그녀를 관찰하다가, 혹시 갑부집의 문제있는 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암묵적으로 동생알바와 내리기에 이르렀다.
2- 그 여자는 도대체, 그 많은 시간동안 자리에 앉아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어서 괜히 근처에 갔다가는
엿본다는 의심을 살지 몰라 가보지는 못했지만,
써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흔한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언제 동생 알바가 슬쩍 지나가며 봤더니,
윈도우 프로그램 자체에 깔려있는 기본 게임인,
프리셀을 내리 세시간동안 하고 있었던 적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생알바와 나는 그 여자가
갑부집의 자폐증있는 딸이 아닐까 하는 두번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3- 평소에는 그냥 겜방에는 이러저러한 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있을 때, 가끔 무언가를 연속적으로 두들겨 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여자가 있을 법한 자리에서 울려오는 그 이상한 소리.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여자가 주로 앉는 자리의 키보드 스페이스 바가 고장나는 일이
두 세번 일어나고 나니,
정말 그 여자가 자리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키보드를 고장내는 손님 단속 안 한다고
알바인 우리는 욕만 잔뜩 먹어대고,
그 여자는 아저씨 없을 때만 나타나, 그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 중에는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게임은 없었으니,
그 여자를 이해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고,
또 키보드 좀 얌전히 써달라고 그 여자한테 얘기하면,
그 똥그란 눈으로 천연덕스럽게
"난 그런 적 없는데요."
하고 말할까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동생 알바와 내가 내린 그 여자에 대한 세번째 결론은
갑부집의 딸이긴한데, 자폐증에 수전증까지 있는 여자라는 것이었다.
4- 똥 사건 이전에는 그 여자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여자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다.
그냥 염색도 안 한 검은 긴 머리에,
사실 갑부집딸 같지 않은 그저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녔다.
근데, 그 이후로 가만 살펴보니 이목구비가 잘 잡혀있는, 못생기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별로 말도 없고, 또 예의도 없는 것 같지는 않고
진지하고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있곤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그 여자를 가리키며 똥 사건을 얘기하면
설마 저 여자라 그랬을라구.. 하면서,
오히려 내가 남을 모함하는 사람으로 매도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생 알바와 나는 그녀에 대한 네번째 결론이자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갑부집 딸이지만, 자폐증에, 수전증에, 정신분열에, 이중인격을 지닌,
그런 여자라고 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결론에는 그 여자를 밉게만 보려고 하는
나의 심사가 백분 반영된 것이긴 하다.
그런데, 미움도 관심이라고 하던가.
자꾸 그렇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보니,
또 그 엽기적인 화장실 사건도 어느덧 잊혀질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새 미움에서 시작한 관심이,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녀가 보이면 안심이 되는,
그런 이상한 관심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