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디카 USB가 말썽이다. 사진은 나중에 다시 수정해서 올리겠다.)
10월 14일 토요일 오전 6시 30분
프리머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마조마했다. 매표소인 7층임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문이 열리려는 순간, 마음 속으로 제발…제발…을 외쳤다. 사람이 많이 없기를 바라는 맘에서.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대략 50명 정도가 내 앞에 줄을 서 있다. 정확히는 줄지어 널부러져 있다. 제길! 부지런한 타인들…역시 30대가 되면 수면 시간이 중요해서리…나는 니들처럼 팔팔하게 밤을 새진 못했다. 인정한다. 그 열정…원하는 영화는 끊기 어렵겠군…앞으로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줄에 쭈그리고 앉아 노트북을 켠다. 열심히 글을 써도 30분밖에 가지 않았다. 앞으로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악몽탐정]만이라도 끊었으면 좋겠다는 맘이 간절하다.
오전 8시 40분
표 예매를 마쳤다. 원하던 [악몽탐정]은 못 끊었지만 [사랑해, 파리]는 구할 수 있었다. 혜정양이 부탁한 [성가신 남자]와 내가 오전에 볼 [새해의 꿈]도 끊었다. 한 시름 놓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온다. 던킨 도너츠 야외 식탁에 앉아서 커피와 베이글을 씹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경험이 많다. 일단 올해로 부산 영화제 작품을 상영하는 모든 상영관을 다 돌아보게 된다. 아침 일찍 줄을 서서 현장 판매분을 구하는 경험도 처음이다. 어제 찜질방도 그렇고…벌써 세 번째 방문이지만 새로운 것 투성이다. 기분이 좋다. 새로운 느낌이다.
피씨방이 이렇게 좋은 휴식처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일단 써놓은 여행기를 올리기 위해 들렀는데 마침 무선 인터넷이 잡힌다. 그래서 예의상 컴퓨터는 로그인 해 놓고 노트북을 직접 만지며 글을 쓰고 있다. 친절하게 콘센트가 남는 게 있어서 노트북 충전도 겸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더욱 고마운 것은 자리마다 핸드폰 충전기가 있는 것! 이거야 말로 감동이다. 거의 필요한 모든 것을 피씨방에서 해결하고 있다. 부산은 꽤나 맘에 드는 곳이다!
오전 10시 30분
메가박스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나는 부산의 모든 영화제 상영관을 방문하게 된다. 메가박스 쪽도 프리머스랑은 별 다른 분위기는 없다. 아침에 현장 판매로 끊은 [새해의 꿈]을 보기 위해 입장한다.
[새해의 꿈]
감독 : 쳉 유치에
아싸! 대박이다! 고생해서 현장 판매분 구한 보람이 있었다. 비록 맨 앞자리에 앉아서 큰 스크린을 좌우로 읽어내느라 고생 많았지만, 이 영화는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이다. 대만 젊은 감독 쳉 유치에(이름 까먹지 말자…제발…)의 실험성이 짙은 영화로, 부산에 오면 이런 영화는 꼭 봐줘야 한다. 알트먼 식으로 여러 인물이 하루를 살아내는 이야기를 닮고 있는데, 판타지와 현실이 묘하게 섞여 구분하기가 어려운 몽환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으며 촬영이나 사운드 또한 실험성이 뛰어난 작품의 담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 완성도가 아주 높다. 윤회로 대표되는 장자의 사상을 적절히 담은 작품이며, 패기와 노련함이 동시에 녹아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한 컷 한 컷 신경 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세심한 콘티와 구성, 삶에 대한 진지한 희망과 부활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대단하다! 이번 영화제는 좋은 작품 투성이다.
오전 11시 30분
운 좋게도 이번 영화도 GV가 있다. 감독과 배우 두 명이 들어오는데, 누가 감독인지 모를 정도로 젊고 잘 생겼다. 젊은 감독이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소심해서 질문이라고는 못하는 내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하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질문이 감독에게 쏟아졌다. 그만큼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배우들이 묻히고 감독이 드러나는 영화라는 측면이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해가 가는 것은 여러 명의 배우들이 등장하므로 참석한 두 배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리라. 추가로 아쉽게도 감독에게 사인을 받으러 다가갔으나 내 앞에서 잘려버린 것. 이 모두가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거나 사인을 받으려는 행동 모두, 전에는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었던 것.
부산을 방문한 혜정양이 영화를 보고 메가박스로 달려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표 끊어준 것 고맙다며 맛있는 점심을 사주었다. 고맙다.
오후 3시 30분
서울에서 드디어 여행 파트너인 기지배군이 도착했다. 지하철 부산역을 지나면서 혹 어디 있는지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글쎄 나랑 같은 지하철, 그것도 같은 칸에 타고 있었다…하하…오늘 어째 뭐든지 척척이다. 좋은 날이다.
기지배군과 4시 [소립자]를 기다리며 남포동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나는 글을 쓰고 기지배군은 영화 데일리 뉴스 책자를 보고 있다. 동반자가 생겼다.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이제 보게 될 영화도 좋은 영화였음 좋겠다.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간다. 얼른 서둘러 이번 영화제 처음 남포동 대영시네마 상영작인 [소립자]를 관람하러 자리를 떠야겠다.
[소립자]
감독 : 오스카 뢸러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실망이다.
오후 7시 20분
야외상영관.
기지배군이 옆에서 부산 내려와서 처음 본 영화가 왜 이 모양이냐고 투덜댄다. 나 또한 여태껏 좋았던 기분이 한 번에 다운됐다. [소립자]는 우리의 샤크라를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사랑해, 파리]가 있지 않은가! 부산 영화제 사상 초유의 야외상영관 5000석 매진 사태! 이 영화를 통해 다운된 기분을 다시 업 시키자는 안위로 야외 상영관에 입장한다. 역시 어제처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뒤에 앉은 여자 두 명이 수다스럽다. 올드 보이의 우진 테마가 흘러나오자, 두 명이 싸움이 났다. 한 명은 친절한 금자씨 삽입곡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장화, 홍련에 나오는 곡이라며 우겼다. 더 압권은 이러고 있는데 혹시 알고 보면 외국곡 아닐까…하며 웃고 있는 거였다. 순간 너무 시끄러워서 뒤돌아 “이거 올드 보이의 우진 테마잖아욧!”이라고 말할 뻔 했다. 영화가 곧 시작한다. 참자…
[사랑해, 파리]
감독 : 무려 20명이다.
총 18개의 에피소드이다. 20명의 감독(둘이 같이 연출한 경우도 있다.)들에게 파리의 한 지역을 정해주고 5분 안에 저렴하게 사랑 얘기를 찍으라는 프로젝트. 이러니 5000석이 매진되지. 그 감독 중엔 우리가 잘 아는 구스 반 산트, 알폰소 쿠아론, 웨스 크레이븐, 빈센조 나탈리, 제라르 드빠르디유, 코엔 형제, 크리스토퍼 도일, 알렉산터 페인, 월터 살레스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 에피소드 들이 다 맘에 들었지만 제일 맘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올리버 슈미츠 감독(주로 TV시리즈를 많이 한 감독 같다.)이 만든 것으로, 칼에 찔려 죽어가는 라고스 흑인 주차 관리원이 주차장에서 본 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아…참고로 구스 반 산트는 이번에도 미소년을 등장시켜 동성애 코드를 이용한다. 흥미 진진한 이 영화는 아무래도 정식 개봉을 할 것 같다.
오후 10시 10분
오늘은 밤에 시네마틱 러브에 참가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새벽 5시까지 진행하는 클럽 파티이다. [사랑해, 파리]로 다운됐던 기분을 모두 해소했기에 가볍고 신나는 맘이었다. 짐을 둘 곳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동백역까지 다시 걸어갔다. 지하철 보관함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침 고객 안내실이 열려 있었다. 역 직원들이 친절하게 짐을 맡아주었다. 새벽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시네마틱 러브가 진행되는 부산촬영B스튜디오로 입장했다. 벌써 행사가 한창이었다. 남궁연이 드럼으로 흥을 돋구고 바비킴과 부가킹즈가 파티를 달구었다. 기지배군과 음악에 취해 흥겹게 새벽 3시 30분까지 놀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행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생략하겠다.)
새벽 3시 50분 (10월 15일)
해운대 소고기국밥집.
너무 열심히 놀았더니 지치고 배가 고프다. 택시 아저씨에게 국밥집을 가자고 했다. 아저씨가 친절히 해운대 유명한 소고기 국밥집 앞에 내려주었다. 2,500원짜리 국밥이 이렇게 맛있다니…거듭 얘기하지만 올해는 정말 새로운 경험 투성이다. 피곤이 몰려온다…안돼…지하철역으로 짐 찾으러 가야돼…
새벽 5시 30분
짐을 찾아서 남포동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내일 영화가 남포동 쪽이기에 피곤해도 이동해서 찜질방을 찾기로 했다. 지하철 안에서 [사랑해, 파리] 얘기를 주고 받다가 기지배군이 문득, 에피소드를 다 기억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자고 했다. 열심히 카운트를 해서 18개의 에피소드를 다 기억해냈는데 에피소드가 20개인 줄 알고 생각나지 않는 두 개 에피소드(실제로는 없는)를 끝까지 생각해내려다가 둘이 지하철에서 잠이 든다. (나중에 에피소드 18개를 모두 기억한 것이 맞음을 확인하고나서 둘다 소름 끼쳤다.)
새벽 6시 30분
남포동 찜질방.
아무래도 내일 아침 11시 영화인 난니 모레티의 [악어]는 놓칠 것 같다고 기지배군에게 말했다. 24시간 넘게 깨어있었더니 미칠 것 같다. 기지배군이 혼자 보러 다녀오겠다고 한다. 씻지도 않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