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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없는 마을 - 언론이 주목한 책

이대희 |2006.10.16 08:20
조회 81 |추천 0
 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

 


수묵향 가득한 한국화와 현대적인 만화 기법의 조화를 이루어낸 조재영의 그림에세이 .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충청도 산골짜기 작고 외진 마을 복탄리에서 보낸 작가의 어린 시절을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교회 없는 마을'에는 그리운 추억을 통한 공감과  서민들의 지나간 역사에 대한 추체험을 통한 공감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화폭들이 펼쳐져 있다. 교회가 안 들어섰을 정도로 외진 마을이기에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기 위해 이웃마을의 교회에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기어들어가는 복탄리 아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고향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1961년 충주에서 사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조재영은 열두 살 때 충청도 산골짜기 마을 소태면 복탄리에서 살았다.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탄 아이들과 함께 뛰어논 이 시간은 그녀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자 작품의 기원이 되었다. 2003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올해의 그림작가상'을 수상한 《고향 이야기》를 모태로 하여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인 '교회 없는 마을'은 이 시절을 소재로 새롭게 씌어지고 그려진 산문집이다. 그녀의 그림은 가장 개인적이고 한국적인 것을 모티브로 삼았음에도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어, 일본에선 자체적으로 팬클럽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프랑스의 '장 자크 상페'처럼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라고 한다.
조재영은 이화여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브라이턴대학 예술대학원 아트&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카툰을 전공했다. 유학 기간의 성과물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브라이턴대학의 교수들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모두 감탄해 마지않았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붓 터치와 현대화의 기법'이 창조적으로 어우러진 그녀의 그림이 서구 예술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신문 연재 그림, 캘린더 그림, 단행본 그림 등으로 작품활동을 해왔으며 현대예술관 초대전(2001), 일본 순회 전시(2003)를 포함한 다수의 전시회를 가졌다. 1993년에 경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만화과를 창설하는 등 후진 양성에 각별히 힘써온 그녀는 현재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꽃비처럼 쏟아지는 봄 이야기', '빛깔이 번져가는 여름 이야기', '열매처럼 익어가는 가을 이야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 이야기'…… 사계절 따라 우리가 고향이라 말하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한 가지씩 곱씹으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은 고향을 되새기는 계절, 가을의 정취에 걸맞은 아련한 그림들의 파노라마이다. 낡을수록 빛이 나는 어린 시절을 돌려주면서 일상에 지친 마음들을 위로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선물이 될 책이다.

 

 

 교회 없는 마을

낡 을 수 록   빛 이   나는  내   어린  시절

조재영 글.그림/열림원

 

 

 

꽃비처럼 쏟아지는 봄 이야기

미풍에 스친 벚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면 학교 운동장엔 꽃내음이 가득한 융단이 깔리고, 엄마의 하얀 포플린 스커트엔 사랑의 꽃무늬가 가득 수놓아졌을 것이다.

 

 

빛깔이 번져가는 여름 이야기

"야, 고기가 네놈들 잡겄다!"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들은 우리를 놀려됐지만, 우리는 어디에 가면 모래무지가 많고 어디에 가면 버들치가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열매처럼 익어가는 가을 이야기

"엄마, 저 감은 왜 안따?" "저게 까치밥이라는 거다. 나중에 추워져서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나 짐승들 먹으라고 남겨두는 밥이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 이야기

땅 속에 묻은 독에 김장김치가 가득하고, 마당 한구석에 장작이 높다랗게 쌓인 걸 보고 있으면, 우리 집이 부잣집이 된 것 같았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붓 터치와 현대화의 기법을 창조적으로 조화시킨 조재영의 작품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한 어린이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이 책은 무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을 지녔다. 이제 세계 곳곳의 독자들은 그녀와 함께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유년 시절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크리스 율렌 박사(영국 브라이턴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

 


 

에는 수목의 먹과 여백, 자연스럽고도 강렬한 컬러 채색이 어우러진, 그리고 만화 기법이 가미된 재치 있고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그림들이 나열되어 있다. 조재영 작가의 '수목 만화'는 독창성과 의미의 풍요로움을 중요시하는 유럽 만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로 다른 것을 조화시키는 여성적 융통성의 힘과 들판을 활보하는 어린 소녀다운 천진함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어느 날 기억의 서랍에서 꺼낸 아련한 그림 한 장

     - 고향의 추억을 간직하지 않은 어른은, 꿈을 꾸지 않는 아이와 같다

 

은 작가 조재영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특별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모두가 품고 있을 고향의 추억과 원체험을 일깨우는, 공감의  힘을 지닌 작품이다. 설사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고, 기억하는 고향이란 도시의 불빛뿐인 이들에게도 '지나간 그때 그 시절'을 추체험하게 하고 보편적인 '고향이라는 감정' 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한편으로 두려운 일이지만,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 오래된 마음의 보물창고, 진정한  나의 기원(起源)을 뒤적이고 발견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서쪽 하늘에서 먹구름이라도 몰려오는 날이면, 유난히 몸집이 작은 만수는 커다란 소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자기가 비를 쫄딱 맞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칫 금뜨게 움직이다 누렁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이놈의 누렁이, 빨리 집으로 가야제. 소낙비가 온단 말이여." 코뚜레 끈을 움켜쥔 만수는 어쩔 줄을 몰라 쩔쩔 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만수가 누렁이를 맨 끈을 놓치는 일은 없으라고 믿었다. 아버지에게 꾸중 듣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누렁이가 없으면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만수의 꿈도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소 한 마리에 꿈을 맡겼던 시절은 가버렸다. 그렇지만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소를 만나면 엊제고 만수의 간절한 꿈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44~46쪽, 만수네 소)

 

 

저쪽 풀숲에서 남자아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물을 튀기며 고기 모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에이, 피라미만 두 마리야." "이야, 빠가사리다!" 족대를 뜰 때마다 고기가 몇 마리씩 올라왔다. 버들치, 모래무지, 피라미, 각시붕어 등 갖가지 물고기의 퍼덕이는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물고기가 양동이에 그득해지면 다음은 매운탕을 끓일 차례다. 우리가 끓이는 매운탕은 주전자 매운탕이었다. 고기를 잔뜩 넣고 고추장을 듬뿍 푼 뒤에 깻잎, 고추, 마늘종, 호박잎, 양파 등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고 한참 끓이면 어느새 입맛을 다시게 하는 냄새가 진동한다. 주전자 매운탕 위로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듯 숟가락질을 하다 보면 금세 주전자가 바닥을 드러냈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가 만든 매운탕을 '걸뱅이탕' 이라고 놀리지만, 우리가 직접 잡은 물고기로 만든 매운탕 맛은 세상 어느 것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내내 우물가를 들락날락하며 물을 몇 바가지씩 들이켜야 했지만 말이다. (70쪽, 천렵)


 

 좋은 날에 아이의 눈빛 되어

     - 아이의 가슴으로, 아이의 눈으로 만나는 또 다른 세상

 

복탄리 아이들에게 '교회 없는 마을' 에 산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때는 크리스마스 때이다. 읍내에 있는 교회 꼭대기에 왕별이 반짝이고 창밖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불빛이 노랗게 새어나오면 복탄리 아이들은 몸을 쭈뼛쭈뼛하면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만큼은 산타할아버지가 모두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토박이 아이들은 복탄리 아이들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눈을 부라렸다. 그래도 그 시절,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위안을 받기에 충분했다(141~143쪽, 크리스마스).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 시골로 이사 갈 때도 어린 시절의 작가는 이삿짐 트럭이 달리는 황톳길에서 신기한 모양의 소달구지에 마음을 빼앗기고(25~26쪽, 이사 가는 날), 불 피울 때마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엔 아랑곳없이 장작불로 밥 짓는 풍경이 근사하기만 하고(28~29쪽, 복탄리의 밤), 서울 갔다 설날에 돌아오는 언니오빠 마중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엄마한테 차장 언니를 만들어내라고 떼를 쓰고(147쪽, 까치설날), 땅속에 묻은 독에 김장김치가 가득하고 마당 한구석에 장작이 높다랗게 쌓인 걸 보고는 부잣집이라도 된 것처럼 뿌듯해한다(152쪽, 장작과 아궁이).

아이의 가슴으로, 아이의 눈으로 만나는 또 다른 세상은 얼마나 은밀한 보물창고와도 같은지,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너무 잊고 사는 게 아닐까?

 

 

크리스마스가 되어 읍내에 있는 교회 꼭대기에 왕별이 반짝이고 창밖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불빛이 노랗게 새어나오면 우리는 몸을 쭈뼛쭈뻣하면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그날만큼은 산타할아버지가 모두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않다가 선물 욕심으로 교회에 왔다는 생각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그렇다고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태면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남한강변을 따라 좁은 황톳길이 길게 이어지고, 그 길로 막걸리통을 실은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지나갔다. 우리가 탄 트럭이 강에 빠지지 않을까 애를 태우면서도 나는 그 신기한 모양의 소달구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복탄린의 저녁은 어둡고 조용했다. 해가 지고 나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소쩍새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기름 램프 아래에서 숙제를 하다 잠들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코 언저리가 그을음 때문에 새까매졌다.

 

 

동네에서 정옥이와 미정이네 언니는 충주 시내버스 차장이 되었고, 용길이네 형은 서울에 있는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까치설날이면 친구들은 언니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노라면 그 속으로 온몸이 빠져들어가는 듯했다. "탁, 탁, 탁" 나무 타는 소리에 맞추어 불꽃이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은 마치 춤추는 모양 같다. 따뜻한 온기와 불꽃에 취하다 보면 하루 종일 뛰노느라 노곤해진 몸이 어느새 꾸벅꾸벅거린다.

 

 

 

"엄마, 포도 씨를 많이 먹었는데 배 속에서 포도가 자라면 어떡해?" "그래서 씨 잘 뱉으라고 그랬잖니. 배 속에서 포도가 자라면 이제는 포도 안사줘도 되겠네." "그럼 어떻게 해?" "씨가 자라려면 물을 줘야 하니까, 물을 안 먹으면 배 속에서 씨앗이 자라지 않겠지?" "그렇구나. 나 지금부터 물 안 먹을거야." 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지만 동생은 정말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동생이 아침 일찍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내게 귓속말을 한다. "누나야, 씨앗 다 밖으로 나왔다. 이젠 물 먹어도 되겠지?" (81~82쪽, 포도)

 

 

눈싸움을 하다가 지친 아이들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크기가 집채만 한 놈, 몸통보다 머리가 더 큰 놈, 머리에 모자를 얹은 놈, 팔이 하나 없는 놈, 찡그리는 놈, 슬프게 우는 놈, 입이 헤벌어지게 웃는 놈.....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사람을 보고 있으면 정말 따뜻한 체온을 가진 현실 속의 아이들이 거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눈사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55~156쪽, 눈사람)

 

에필로그

30년 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동창회 며칠 전부터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잠을 설쳤다. 개구쟁이 친구들 중엔 영화배우가 된 아이도, 중국집 사장이 된 아이도, 시내버스 운전사가 된 아이도, 태껸 사범이 된 아이도 있다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알아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도 잠시. 이제는 모두 어른이 되었지만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의 미소와 몸짓 속에는 여전히 어릴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친구들과 그 시절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나는 교실 안에서 낡고 오래된 나무 걸상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꼭 조그만 장난감 같았다. 우리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 보니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 속에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이 가슴속에서 새록새록 살아났다. 철없이 뛰어놀던 그 시간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아, 아름다운 나의 어린 시절......!


 

 언론이 주목한 베스트 BOOK

 지난 한주간은 추석 연휴기간이 길었던 까닭에 그만큼의 신간이 한꺼번에 몰려 언론사의 눈길을 복잡하고 다양하게 시선을 끌었습니다. 분야 또한 다양하게 다루어졌고, 흥미를 끄는 책들이 많아 즐거웠던 한주였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책들이 있었는지 자근자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은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세계의 유명 산악인들에게 가려진 '셰르파'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셰르파, 히말라야의 진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읽을수록 끔찍함을 느끼게 되는 의약 보고서 '몸사냥꾼' 이 지난주 신간중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신간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한나 아렌트 지음/김선욱 옮김/한길사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때, 지은이가 뉴요커지 특파원 자격으로 현지 재판을 참관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내용도 대강 알고 있는데다 대중매체에 실린 일반인을 위한 글이었기에 만만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번역 덕분에 뜻밖에 술술 진도가 나간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나치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을 고난 속에서 살아냈던 전선(戰線) 시대의 사상가가 아니겠는가. 쉽게 읽히지만 내용은 간단치 않다. 부제목이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인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히만의 처형 장면을 자세히 전한 뒤 이렇게 나온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아이히만은 재판 받는 내내 판에 박힌 상투어를 하고 충실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현실과 말과 생각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말이 특정 언어 규칙 혹은 코드에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바꿔 말하면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다. 한 마디로 아이히만은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이쯤 되면 아렌트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특수한 정체성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관점에서 아이히만을 '이해했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실제로 유대계 지식인들이 아렌트를 적대시하기도 했지만, 아렌트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소통하고 좋은 삶을 나누는 근거가 되는 인간됨의 보편적 원리가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아이히만을 분석적으로 이해했을지언정 공감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보고하는 듯한 문장 하나하나에 심리.철학.역사.정치 등이 갈마들어 있기에 곱씹어가며 읽어야 할 책이다. "히틀러에게 등돌린 이들은 아무리 뒤늦게라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했고 아주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용기는 경탄할 만하지만 그것은 도덕적 분개에 의해서나 다른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독일이 앞으로 패배하고 폐허가 될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 이 길지 않은 글이 자아내는 윤리적.역사적.정치적.심리적 함축이 사뭇 깊다.

자꾸만 도쿄전범재판과 야스쿠니 신사, 그리고 일왕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론이 떠오르는 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아이히만에 대한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이 수많은 범죄자들 가운데 희생자들을 실제로 죽인 것에서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었던가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의 기준과 관련된 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와 반대로,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 TIGERS OF THE SNOW

조너선 닐 지음/서영철 옮김/지호

조지 맬러리, 에드먼드 힐러리, 모르스 에르조그, 헤르만 불…… 히말라야 거봉을 오른 유명한 등반가들, 세상은 그들을 도전 정신과 인간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눈사태와 뒤틀린 크레바스, 빙벽 등 온갖 위험이 가득한 산에 도전하고 정상에 오른 등반가들의 모습은 모든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들 혼자서 산을 올랐을까? 고소 등반에 필요한 산소통은 하나당 10킬로그램이 넘는다. 산을 오르는 몇 개월 동안 먹을 음식도 가져가야 한다. 눈 위에서 자고 싶지 않다면 텐트와 침낭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자일과 피켈, 하켄 같은 장비 없이 산을 오르는 것은 자살 행위에 다름없다. 히말라야 원정엔 어마어마한 양의 물품이 필요하다. 누가 이 모든 짐들을 날랐을까?
등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답을 알고 있다. 등반대에 고용된 현지의 셰르파(Sherpa는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들이 날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쨌거나 셰르파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며, 산을 오른 주인공은 그들을 고용한 등반가들인 것이다. 모든 등반 관련 저술과 TV 다큐멘터리, 영화는 등반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을 위해 짐을 나르는 셰르파는 배경처럼 깔릴 뿐이다. 하지만 셰르파 없이 히말라야 등정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셰르파들을 주연으로 한 색다른 등반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런 혹독한 상황에서 셰르파들이 점차 일구어낸 성취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34년 낭가파르바트 등반이었다. 그때 무시무시한 눈보라로 낭가파르바트의 길고 긴 능선 위에 열여섯 명이 고립되었다. 등반을 이끌었던 독일 등반가들은 셰르파족과 약해진 등반가들을 버려둔 채 스키를 타고 도망쳤다. 남은 이들이 내려오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으로 모두 아홉 명이 사망했다. 그후 셰르파들은 산에서 유럽인들을 마냥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셰르파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1939년 K2에서 최초로 셰르파가 정상 공격조의 일원이 되었다. 정상 등정엔 실패했지만 셰르파가 백인 등반가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하산 과정에서 미국 등반가 울프가 내려오지 못하고 홀로 남겨졌다. 다른 모든 백인 등반가들이 그를 포기했을 때 셰르파들만이 그를 구하러 올라갔다. 셰르파의 주도로 인명 구조가 행해진 최초의 순간이었다. 비록 구조엔 실패하고 올라갔던 셰르파 셋 모두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들은 셰르파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리고 1954년,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은 이런 변화의 결과이자 셰르파가 히말라야 등반의 상징이 된 결정적 순간이다. 셰르파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주변으로부터 괄시받던 최하층 계층인 셰르파가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끊임없이 산을 오르며, 자신들의 등반 능력을 키우고, 다른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셰르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셰르파들의 등반 여정은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투쟁이다.
저자인 조너선 닐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히말라야 등반에서 조연으로만 인식됐던 셰르파를 당당한 주역으로 복권시켰다. 이 책엔 그전의 다른 등반 책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셰르파들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 개월간 셰르파 마을에 거주하여 셰르파 말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익혔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인 등반에 참여했던 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수차례씩 인터뷰했다. 그런 만큼 그의 셰르파에 대한 이해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 깊으며, 그는 이 책에서 셰르파들의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책은 셰르파의 삶과 역사를 알리기 위한 저자의 애정 어린 기록이다.

 

 

매의 노래 / 가家 1,2

(바진 지음/홍석표 옮김 - 박난영 옮김/황소자리)

바진(巴金)은 1904년에 태어나 2005년에 숨을 거둔 중국 작가다. 청조 말기에 시작된 그의 생애는 신해혁명과 5·4운동을 거쳐 국·공 내전과 대일 항전, 일제 패망과 중국 공산당의 집권, 문화혁명과 마오쩌둥의 죽음, 그리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 100년을 관통한다. 그 자신은 1932년에 내놓은 소설 를 통해 격동기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반봉건의 기치를 드높였으나 문혁 기간에는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난의 10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문혁 이후에 복권되어 중국작가협회 주석 등 요직을 맡았다. 1979년 중국 작가대표단을 이끌고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통역으로 따라간 이가 바로 나중에 중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가오싱젠이다.

바진의 1주기(10월 17일)를 앞두고 그의 대표작 와 수상록 가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봉건적 폐습에 목을 졸린 채 신음하는 대지주 집안과 새로운 사상을 무기로 그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투쟁을 다루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가오' 집안의 삼형제 쥬에신, 쥬에민, 쥬에후이다. 이들의 할아버지는 작은 왕국을 방불케 하는 집안을 철저한 봉건적 규율로써 다스린다. 삼형제 중 맏이이자 장손인 쥬에신은 근대교육의 혜택을 받은 인물이지만 장자로서의 책임감과 집안 어른에 대한 도리 때문에 할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러나 쥬에민과 쥬에후이 두 동생은 형과 달리 기존의 질서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고 반항한다.

작가는 젊은 형제들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으로 봉건 질서와 신질서가 충돌하는 양상을 그려 나간다. 우유부단한 순종형 인물 쥬에신은 친척 누이인 메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그 사랑을 포기하고 할아버지가 정해 준 여자와 결혼한다. 낙담한 메이도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그 결혼은 오래지 않아 깨지고 메이는 친정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메이를 잊고 있던 쥬에신은 아내와 메이 사이에서 갈등한다.

'집'은 낡은 세력의 근거지였다

형의 이런 모습에 대해 두 동생은 매우 비판적이다. 쥬에민은 그 역시 친척 누이인 친과 사랑하는 사이로, 자신의 운명이 형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서, 할아버지가 그에게 엉뚱한 혼처를 정해 주자 집을 나가는 행동으로 그에 저항한다. 막내인 쥬에후이는 셋 중 가장 과격한 인물. 학교 동무들과 함께 새로운 사상을 고취시키는 간행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할아버지의 압제와 큰형의 무능을 싸잡아 비판한다. 그는 또한 집안의 하녀인 밍펑과 사랑하는 사이로 결혼 약속까지 하는데, 할아버지가 밍펑을 다른 늙은이의 첩으로 보내기로 하자 밍펑은 자살을 택한다.

“자기 앞에 누워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다만 한 세대의 대표자에 불과하다.(…)이 두 세대의 간극은 영원히 메워질 수 없다”(1권 114쪽).

할아버지의 독선과 큰형의 무능력에 더해 삼촌들의 위선과 탐욕, 숙모들의 미신적 행태는 집안 분위기를 한층 암담하게 만든다. 주인공 쥬에후이에게 집이란 물리쳐야 할 적일 뿐이다.

“그의 눈에는 ‘집’이라는 것이 사막과 같았으며 낡은 세력의 근거지이자 적의 본거지였다.”(2권 177쪽)

그의 이런 판단이 지나친 것만도 아닌 것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상심한 메이가 시들시들 앓다가 죽고, 형수 역시 미신을 고집하는 숙모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채 아이를 낳다가는 숨을 거두고 만다.

“문혁 후유증, 생명 갉아먹고 있다”

“몇 마디 곡성과 몇 마디의 동정, 몇 방울의 눈물로 소중한 한 청춘을 매장하고 마는군요. 누님, 나는 누님을 그 죽음으로부터 불러내 누님이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에요.”(2권 208쪽)

“그는 이 집안에서 사랑을 짓밟는 어두운 힘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를 꿰뚫어보았다. 그는 또 소중한 젊은 생명들이 어떤 식으로 헛되이 희생되어 사라졌는지를 자기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2권 258쪽)


젊음과 늙음, 새로운 사상과 낡은 질서 사이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세상 없어도 나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들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2권 259쪽)라고 쥬에후이가 스스로에게 다짐할 때, 그는 할아버지와 삼촌 세대로 대표되는 낡은 봉건적 질서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다짐처럼 집을 나가 대도시 상하이로 향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반항아 쥬에후이의 관점을 주로 좇는 소설은 격렬한 분노의 어조로 시종한다. 낡은 세대의 가치와 행태를 일거에 부정하는 쥬에후이의 태도는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와 작가 자신의 세대에게는 그것이 타당하고 유효한 태도였음에 틀림이 없다. 가 중국 젊은이들의 뜨거운 지지를 업고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그 점을 보여준다.

함께 나온 는 바진이 문혁의 사슬에서 풀려난 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펴낸 다섯 권의 수필집에서 가려 뽑은 글들을 묶었다. 격동의 지난 세월에 대한 회고와 작가로서의 삶의 이모저모, 지식인으로서 중국 사회를 보는 태도 등을 두루 담았는데, 특히 자신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 문화혁명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두드러진다.

“10년 ‘문혁’ 중에 나는 수성(獸性)의 대발작을 충분히 보았으며, 언제나 조반파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늑대’가 되는지 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피해를 입었으니 고발할 권리도 있고 탐구할 권리도 있다. 왜냐하면 문혁이 남겨놓은 후유증이 지금도 나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짐승이 뒤바뀌는 과정을 똑똑히 보았다.”(68쪽)

출판사 황소자리는 와 함께 바진의 ‘격류 삼부작’으로 일컬어지는 과 , 그리고 선총원의 등을 ‘중국 현대소설선’ 시리즈로 계속 펴낼 계획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신문 발췌)

 

 

관심의 경제학 The Attention Economy

토머스 데이븐포트,존 벡 지음/김병조,권기환,이동현 옮김/21세기북스

'관심의 경제학'은 새로운 경제경영 트렌드서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목하지는 않았던’ 관심이란 렌즈로 오늘과 내일의 비즈니스와 경제의 핵심을 꿰뚫는 명쾌한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여느 경제경영 전문서와 달리 쉽게 쓰여 있어 경제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매끄럽게 읽을 수 있다. 특히 1장부터 7장까지는 경제경영의 문외한이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풍부한 사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 제너럴모터스(GM), 아마존닷컴, 삼성, 소니, 모토롤라, 존스 앤 존슨, 혼다, 시어스, 페라리, 콘세코, 시스코, AIG,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의 유명 기업은 물론 우리 귀엔 낯설지만 논지를 생생하게 살릴 수 있는 크고 작은 기업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중간중간 ‘○○의 원칙’으로 핵심정리가 되어 있고 좌우 사이드바와 (경우에 따라 경구에 가까운) 인용문들이 요소요소에 삽입되어 있는 데다, 이 모든 것이 잡지 식으로 편집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역사를 훔친 첩자 (김영수 지음/김영사)

삼국시대는 한반도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역사 기록에 남은 삼국 간 전쟁 횟수는 약 275회다. 삼국시대 역사를 대략 700년으로 볼 때 기록되지 않은 전쟁까지 포함한다면 1년에 한 번 꼴로 전쟁이 일어난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삼국시대는 전쟁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전쟁은 첩자의 온상이며, 첩자는 전쟁의 산물이다. 삼국은 모두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첩보와 그를 통한 정보 확보는 필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수많은 첩자가 양성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개소문과 을지문덕, 김유신 등이 활약한 역사 속 유명한 전투에서는 여지없이 첩자들이 등장한다. 다만 우리는 역사의 행간에 가려진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이다. 한 역사학자의 꼼꼼한 사실 확인과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첩자들의 단편적인 활약상이 전체 그림으로 완벽하게 복원된다.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제임스 본드라 할 만하다. 그는 치밀한 작전과 함께 심리전과 기만술 등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3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첩보전의 승리를 일궈냈다. 수나라의 식량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갔고 중국 황제의 '지명수배'를 받으면서도 동에 번쩍,서에 번쩍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교묘하게 수나라 장군의 마음을 떠보는 등 교란전술과 용병술도 뛰어났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도 첩보술의 달인이었다.

그는 교착상태에 빠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첩자가 잠입한 것을 눈치채고 그들에게 구원병이 온다는 허위정보를 흘린다.

이에 백제군은 동요하고 신라는 대승을 거둔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한 것이다.

고구려의 승려 첩자 도림은 백제의 멸망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는 고구려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것처럼 꾸며 백제로 넘어가서는 승려라는 신분을 이용해 개로왕에게 접근하고 왕의 취미인 바둑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후 각종 대형 토목공사를 부추겨 국력을 소진시켰다.

신간 '역사를 훔친 첩자' 에 나오는 첩보전의 모습들이다.

저자는 고대 한·중 관계사를 전공하고 13년 전부터 한국 고대사의 첩자 문제를 연구해온 국사학자.그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첩자활동 사례를 분석하고 생동감 넘치는 '첩자'의 역사를 재현한다. 삼국시대의 전쟁 기록은 무려 275회.목숨을 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 진영에 대한 첩보활동이 필수적이었고 첩자의 역할도 그만큼 컸다.

저자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fact)에 학문적 상상(fiction)의 살을 붙여가며 연개소문ㆍ을지문덕ㆍ김유신 등의 대형 전투와 호동왕자·낙랑공주 등의 숨은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고두현 기자(한국경제 발췌)

 

몸사냥꾼 The Body Hunters

소니아 샤 지음/정해영 옮김/마티

세계적인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그의 자서전이 '빅맨 빅보이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는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다. 일부 언론에서는 성장 장애라고 간단히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의 장애는 태생적이거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약 업계의 무분별한 임상 실험의 완벽한 결정판이었다. "엄마 젖만큼 안전하다" 는 카피를 달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임상 실험을 거쳐 FDA 승인을 따낸 이 신약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전 세계 2만 명 이상의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를 탄생시켰다. 임신 3개월 이전에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는 귓구멍이나 장이 기형이거나 항문이 없거나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짧은 아이를 낳았다. 당시는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할 경우, 그 의약품이 실제로 효과적인지 어떤지를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이니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놀라운 것은, 이 성분의 제품이 미국에서 지금까지도 판매된다는 사실이다.

의 저자 소니아 샤의 진술에 따르면,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터스키기 매독 연구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터스키기 사건(100~103쪽)이 폭로되고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거대 제약회사의 인체 실험, '몸 사냥' 은 날로 확대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가난한 환자는 제약회사의 손쉬운 먹잇감
법 체계는 의약 발달이 인류 전체에 어떻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보다는,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임상 실험을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왔다.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제약회사에 포섭당한 지 오래며, 제약회사의 임상 연구와 끈을 맺지 않은 종합(대학)병원 의료진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이 현상은 당연히 보건의료 정책이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일수록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규모 종합병원의 게시판은 언제나 실험 약의 혜택을 볼 것을 권장하는 공지들로 가득 하고, 갓난아이의 예방주사를 접종받으러 병원을 방문한 엄마들은 아기에게 실험약을 접종해볼 것을 권고 받곤 한다. 대가로 필수 예방주사 접종비가 모두 무료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에서 실시한 임상 실험 데이터는 서구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서구의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피험자를 찾는 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자, 거대 제약회사는 가난하고 척박한 나라로 실험실을 옮기고 있다. 마치 자동차나 의류 생산자들이 서구의 엄격한 노동법과 환경법을 피해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6년까지 클라소스미스클라인과 와이어스, 기타 제약계의 거물들은 임상 실험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실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가장 큰 실험장은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중국이다.
신약의 아버지는 위약 대조 실험
가난한 나라에서 무차별하게 시행되고 있는 임상 실험은 대부분 이중 맹검(double blind)으로 이루어지는 위약 대조 실험이다. 신약의 약효를 입증하는 데 가장 확실한 데이터는 다른 어떤 약도 투여하지 않고 각각 신약과 위약만 투여 받는 두 환자군 사이의 대조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위약 대조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 가운데 정확히 절반은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설탕물로 만든 위약만 제공 받을 뿐이다. 에이즈나 기타 중환자들이 의료인들의 손에 의해 방치되는 셈이다. 의료진의 우선순위는 환자의 치료가 아니라 제약회사에서 의뢰한 '실험 결과'를 위한 실험대상일 뿐이다.
그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리라. 실제로 임상 실험에는 세계의사협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구체적인 설명에 근거한 환자의 자발적 동의'가 필수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병원과 실험실에서 이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료 기록은 영어로 작성되고 실험약에 대한 정보 또한 영어로 기록되어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피험자들을 위해 임상 실험자는 통역사를 기용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설령 언어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처지와 의사에 대한 신뢰 사이에서 자세한 실험 규정들은 한갓 종이 위에 적힌 문구일 뿐이다.

"병을 치료하는 약도 좋지만,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은 더 좋다!"
신약은 쏟아져나오지만 전 세계 절반 이상이 30년 전과 똑같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가 그토록 ‘블록버스터 신약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돈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유하고 건강한 고객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약을 달고 살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현대판 블록버스터 신약은 페니실린과 같은 기적의 치료제가 아니라, 타가메트나 잔탁과 같은 속쓰림 치료제였다. 한 예로, 미국 전역에 불어 닥친 '콜레스테롤' 사태를 들 수 있겠다. 고 콜레스테롤이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연관성에 착안해 머크 사는 1987년에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메바코'라는 약을 출시했다(74~75쪽). 머크 사는 엄청난 광고와 홍보를 통해 콜레스테롤에 전 국민이 위협을 느끼도록 조장했고 4년 만에 연간 매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엘리 릴리 사의 항우울제 '프로잭'이나 훽스트마리온루셀 사의 알레르기 치료제 '알레그라'가 히트를 기록한 사례도 마찬가지다(78~81쪽). 이런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의 특징은 아프건 아프지 않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처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약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고치게 하기보다는 그런 생활 습관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대표적으로 화이자의 블록버스터 신약 '비아그라'를 들 수 있다.

"가장 위급한 질병으로 포장하라."
실패한 협심증 치료제 '실데나필'을 포기하려던 참에 이 성분이 남성 발기 부전에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화이자는 곧바로 이 성분을 상품화했다. 동시에 4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남성들이 20대와 같은 발기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문제시했다. 따지고 보면, 발기 장애를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너무 많거나 흡연을 하거나 과체중이거나 혈압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이자는 발기 부전이라는 용어 대신 성기능 장애라는 처방받기 좋으면서도 애매한 용어를 들여와 이것이 의학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선언했다. 폭발적인 반응과는 상대적으로 이 약의 부작용은 의도적으로 가려졌다(82~84쪽).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유사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의 경우 임상 실험이 일반적으로 심각한 병이 없는 피험자들을 상대로 단기간에 걸쳐 실시된다는 점이다. 더 위험한 질병을 겨냥한 약품의 경우에는, 위험을 떠안는 피험자와 멀리 있는 수혜자들이 실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백인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흑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수많은 피험자들이 희생되고 있고 '위약 대조 실험' 또는 '이중 맹검법' 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고 있다. 특히 자사가 개발한 약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다시 말해 뚜렷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제약회사는 최소한의 윤리적 책무도 무시한다. 태국에서 HIV 백신 임상 실험을 실시하는 백스젠은 태국 피험자들에게 소독 주사기나 콘돔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변명은 이렇다. "태국 관리들도 자국의 마약 사용자들에게 깨끗한 주사기를 제공하지 않는데 왜 백스젠이 그래야 하나?"(125~126쪽)
HIV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의 장 아프리카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에이즈를 만성질환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약이 이미 개발되어 있음에도, 전 국민의 수십 퍼센트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아프리카의 병원에서 제약회사들이 벌이는 일은 정반대다. 위약 대조 실험이라는 명분 아래 HIV에 감염된 임산부들이 아무런 보호 장치나 처방 없이 아이들을 출산하고 있다. 제약회사에게 이들은 값비싼 약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죽을 운명인 피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백인에게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흑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서구 제약회사의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내 몸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이 책의 이야기는 먼 타국의 일이 아니다. 오늘 바로 내가 그들의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서랍 속에 놓인 여러 종류의 약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배경은 실로 엄청나다.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반다나 시바, 위노나 라듀크 등과 함께 인종, 페미니스트 정치, 다문화주의에 관한 기사를 기고하는 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는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의 시민들이 불가피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녀는 우선, 피험자들에게 표준치료를 확보할 것과 개발 이후에는 약에 접근할 권리를 부여할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른 약과 신약의 효과를 비교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제약회사의 이윤을 조금 늦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천,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제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험자이자 동시에 피험자일 수 있는 전 세계의 시민들이 임상 실험의 실태를 알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다.
2005년을 스펙터클하게 장식했던 황우석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의 처음으로 '헬싱키 선언' 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생명의학 연구에서 무엇보다도 '윤리적 소명' 이 소중하다는 너무나 기본적인 상식을 무척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가짜 논문의 실체가 밝혀지고 난 직후 난자 채취를 시행한 사실을 두고 "헬싱키 선언을 준수했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황우석 박사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그것도 복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가 헬싱키 선언이 '있는 줄도 몰랐다' 는 발언은, 의약 분야에서 윤리 교육을 등한시해왔던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놀랄 일조차 못되었다.
소니아 샤의 고발은 제약회사와 의학계 연구자, FDA와 NIH의 종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거대한 제약 세계의 실체를 밝혀낸 최초의 저술이다. 그녀의 고발은 비단 미국 대 아프리카(또는 서구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100퍼센트 서양 의료 기기와 약들로 처방받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서구 제약회사에 이미 알게 모르게 포섭당했을지도 모르는 의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기본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 동아시아 역사 문제의 해법을 찾아서

아라이 신이치 지음/김태웅 옮김/미래M&B

 

마르크스 평전

자크 아탈리 지음/이효숙 옮김/예담

 

심판대의 다윈 - 지적 설계 논쟁

필립 E.존슨 지음/이승엽 옮김/까치

 

 

 10월 2주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 (2006. 10. 5. ~ 2006. 10. 1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5주째 1위 


세 여자를 살해한 사형수와 세 번 자살기도를 한 대학교수의 사랑을 그린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5주째 1위를 지키가고 있고,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인생수업' 이 2위에 올라섰습니다. 대리 번역 논란에 휩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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