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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하고피안(George Hagoppian)
1902년 여름: 삼촌이 매년 여름마다 풀을 뜯어 먹게 하기 위해 양들을 아라랏 산으로 데려가곤 했다.. 한번은 그의 삼촌이 그를 방주로 데려갔다.. 그들은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방주 한쪽 옆에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 구조물의 높이는 약 40피트(약 12미터).. 방주로부터 한 조각의 나무를 떼어냈다.
1970년: 엘프레드 리 (Elfred Lee) 라는 삽화가와 인터뷰.
2> George Hagoppian
1902년: 삼촌과 함께 아라랏산 등반. 얼음 덩어리 밖으로 튀어 나와있던 방주 잔해 발견. 방주 위로 올라감.
1904년: 다시 한 번 방문.
1972년: 그가 죽기 직전, 그의 증언 자세히 녹음. 녹음테이프는 음성분석시험 통과 했는데, 이는 그의 증언이 신뢰할 만함을 입증 하는 것.
3> 죠지 하고피안
1902년: 죠지 하고피안이라는 사람이 그의 삼촌과 함께 아라랏트산을 등반.. 방주의 지붕 위에서 본 방주의 높이는 약 12M쯤.. 삼촌이 총으로 방주를 쏘았지만 관통하지는 않았다고 보고.
1904년: 두 번째 등반.. 방주는 전체가 거대한 통나무로 깎아서 건조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970년: 매리랜드주 이스턴에서 방주연구가인 엘프레드리(화가)와 에닐 커밍즈와 녹음 인터뷰를 했을 때 기록된 이야기.
4> George Hagoppian
1904년: 아라랫산의 방주설이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한것은 1904년, 조지 하고피안씨가 자신의 큰아버지를 따라 아라랫산에 등정을 갔다 우연히 얼음안에 있던 괴 조형물을 발굴해내면서부터.. 조지씨의 큰아버지는 조지씨에게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아라랫산의 방주를 발견한것같다'며 조형물이 있던 자리에 자신의 옷가지등으로 큰 표시를 한뒤 하산을 하였으나, 후에 탐험가들을 데리고 다시 그 장소로 갔을때 아무것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하고피안씨의 일화는 신문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일약 스타가된 하고피안씨 가족은 평생을 아라랫산을 오르내리며 노아의 방주를 찾아다녔습니다.
5> 조지 하고피안
1908년: (다른 설명에는 1902년으로 되어 있음) 그리고 1910년에 다시 그의 삼촌과 방주를 방문.
방주는 낭떠러지의 끝에 있었으며 나무는 돌과 같았다.
1970년: 방주를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보고.
6> George Hagoppian
1907년: "방주 나무는 매우 딱딱하고 방주내부에는 이끼가 끼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고 1907년에 설명한 미국인 George Hagopian이 20세기 최초의 방주목격자이다.
7> 조지 하고피안
1904-06?: 10살. 삼촌과.
8> George Hagoppian
1905년: 10살. 삼촌과.
9> 조지 하고피안
1908년: 8살. 삼촌과. 70년 인터뷰. 72년 죽음.
10> George Hagoppian
1900년-1908년: 삼촌과.
11> 죠지 하고피안
-1908년: 목동인 죠지.
-기원 초기: 아르메니아의 수도자 죠지 하고피안(George Hagoppian)은 방주를 찾으려고 몇 번이나아라랏 산에 올랐다. 그가 세 번째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은 이 산에 오르지 말라고 하시며 방주의 나무조각 하나를 주셨다는 말이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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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초의 방주 목격자라며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는 한 사람?의 목격담이 저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나, 저런 얘기를 신뢰 할 수 있는 정보인양 올려 두고 있는 참 과학회?-창조과학회란 곳이나.. 재미있습니다.
궁한 본색을 감추지도 못하면서
형제 자매라 부르는 사람들을 기만하는게 그리 좋을까..?
요즘엔 이란의 엘부르즈 산에서도 삽질 하고 있다면서요?
-.,-
퍼온이 주) 이 글에 달린 댓글 몇개 :
Anderson - 방주는 1척이 아니었던거겠죠. 노아 함대 발진~!
ㅋㅋㅋ - 방주는 초반 투 스타포트 에서 나오는건가요?
북유럽신화 - 방주는 로템 11시 몰래 스타게이트에서 나옵니다 ㄱ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