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마을엔 전화가 오직 한 대,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 전화해야 할 사람의 번호를 종이에 적고,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렸다.
앞사람이 뭔 이야기를 하는지 다 들렸다.
자식과, 친구와, 먼 데 있는 친척과, 일과 관련된 사람에게,
고맙단 말과, 미안하단 말과, 돈 빨리 달라는 말과, 돈 받았냐는 말과,
보고싶다는 말과, 니가 싫어졌다는 말과,
약속시간을 확인하는 말과, 언제 오느냐는 말과...
여러 말들이, 어느 집 누구가 하는지 다 들렸다.
줄이 긴 날은 서서 이웃지간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눴다.
무척 춥거나 무척 더운 날은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신기한 건, 꼭 전화해야 할 사람에게 반드시 전화해서
인생에서 실수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거다.
물론 지금처럼 '전화할게'라는 말을 남발하지도 않았고,
그런채로 일 년, 이 년을 지나가버리다가,
어느날 문득 그 사람에게 고맙단 말, 미안한단 말, 그외 꼭 했어야 하는 말들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없었다는 거다.
전화가 한 대밖에 없는 마을,은 이제 없다.
누구에게나 전화가 있고 무수하게 통화를 하지만
우린 왜 여전히 외로우며 왜 여전히 전화할게,와 같은 시든 인삿말을 주고 받을까.
왜 꼭 전화해야 할 사람들은 잊거나 미루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전화는 몇 번이나 반복할까.
백은하 시인 시집 중에서 - 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