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21~07.25]
▲ 황푸강 건너 외탄에서 찍은 상해의 야경
상해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 된 이후 국내 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영국에 의해 중국 최초로 개방될 당시 서양에 개방된 첫 항구도시이다.
오랜기간의 외국 조계지로 화려한 모습속에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엇던 상해는 1945년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재 탄생한 이후부터 등소평에의한 개혁 개방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같이 별다른 발전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개방이후 90년대 중앙정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 중심 도시가 되었다.
상해를 간건 처음이었지만...처음가는 상하이가 그리 낯 설지만은 않았다.
아마 사진으로 보고 책으로 보고 뉴스로 듣고...심지어는 한 가수의 노래에서 조차 빠지지 않는 상하이는 나에게 생소한 소재가 아니었다.
상해/소주/장가계/원가계를 다니는 4박 5일의 일정..
패키지의 좋은 점은 여러지역을 둘러보면서도 알짜배기 관광지만 둘러볼 수 있다는것이 아닐까 싶다. ^-^;;
4박 5일의 일정중에 오늘은 상해와 소주만 먼저 둘러보고 장가계와 원가계에 대한 소개는 다음호에서 다시 설명할까 한다.
북경, 홍콩..벌써 중국은 세번째 여행이네..ㅋ
세번째가는 중국여행인데..이번에도 아무런 준비없이 갈수는 없었다!!
나름 여행 필수 회화를 선별!! 얄팍하게 지식을 깔고 가기로 했다..ㅋㅋ
(쩌거)뚜어샤오치엔 : (이거)얼마에요??
따이꾸이러 : 비싸요..
피엔이이디알 : 깍아주세요.
워야오제게 : 이리주세요.
뒤부치 : 죄송합니다.
스프 : 선생 / 따거 : 형님(주로 우리가 운전 기사들을 칭하는 말;;)
신콜라 : 수고했어요.(이것도..이동하는 차량에서 내릴때 운전기사에게 하면 반응 굿!!)ㅋ
그럼 이제 출발~~!!
상해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비행기로 1시간 50분거리..
인천공항을 떠나 채 2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상해의 푸동공항을 알리는 승무원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해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어둑 어둑해진 저녁이었다.
상해에서 첫날의 일정은 동방명주와 상해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그리고 젤 중요한 저녁도 먹어야지!! ^▽^;;
상해를 잘아는 사람들은 상해에서 볼 게 동방명주밖에 없다고 말을하지만...나는 그 유명하다는 동방명주를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와서 보니 어떤 자동차 광고에서 중국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있다는 카피아래 배경에는 동방명주가 나오는데.....또 아는게 나오니까 어찌나 반갑던지!ㅋㅋ)
▲ 동방명주타워
상해에 동방명주는 관광객들이 상해를 방문하여 제일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고, 이 곳을 보지 않고서는 상해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인 상해 제일의 명물이다.
동방명주는중국 최고 높이의 방송관제탑으로 1991년 7월에 착공해서 1994년 10월에 완성하였다.
동방명주탑은 상해의 월스트리트라 할 수있는 푸동 루쟈쭈웨이 금융구에 위치하고 있는 방송 수신탑으로써 총 높이가 468m로 아시아에서 첫번째, 세계에서는 세번째로 높다고 한다.
중국의 펄 TV를 운영하는 미디어 그룹인 동방명주 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263m와 350m에 관광 전망대가 있으며 350m 전망대에는 귀빈실이 따로 있고, 일반 관광객들은 263m의 전망대를 이용하게 되어있다.
동방명주탑 내부에 있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10초만에 전망대에 도착하여 상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탑 주변의 초고층 빌딩들과 황푸강을 바쁘게 오가는 선박들은 상해의 발전상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 동방명주타워 내부 - 엘레베이터 기다리는 중..
▲ 동방명주타워 내부
밤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방명주타워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동방명주라고 한다. 또 동방명주의 영어 이름은 Oriental Pearl, 진주가 바다에 빠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도 한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상해의 명물인 야경!! 바로 외탄야경이다.
▲ 외탄야경
▲ 외탄야경
▲ 외탄야경
외탄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 현대 역사의 축도로써, 다양한 국가의 건축양식이 모여 있어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한편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밤엔 화려한 조명들이 전체 제방을 비추어 중국에 와있는건지 유럽에 와있는건지 조차 분간 하기 힘들 정도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탄에서 황푸강을 건너보는 동방명주탑의 야경도 빼 놓을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 외탄야경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상해의 아픈 역사가 관광객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제국주의 서구열강들의 이권다틈으로 식민지 점령 당시 서로의 위용을 드높이기 위해 경쟁하듯 각국에서 지은 건물들이 지금에 와서 빼어난 관광지로 변모한 것이다.
외탄야경을 보고 좀 늦긴 했지만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상해에서 유일하게 외탄야경을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해룡해선!!
지금에 와서 너무도 후회가 되는것은...왜 그때 멋있다고 탄성을 연발하기만 하고..먹는데에만 열중을 했는지;;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오지 못한게 정말 한이 된다.
다시 해룡해선을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_-;;;
그리고 우리의 숙소인 광동호텔로 이동하여 첫 날의 일정은 무사히 마쳤다.
▲ 광동호텔 객실내부
좋은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니 어찌나 개운한지.. 피로도 모르겠다.ㅋㅋ
▲ 광동호텔 레스토랑
두번째 날은 소주를 둘러보는 것이어서 호텔에서 적당히 아침식사를 하고는 일찍이 소주로 이동했다.
상해에서 소주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정도가 걸렸다.
소주=두꺼비??ㅋㅋ
나도 처음에는 소주라는 지명이 생소했었다.
쑤저우라는 명칭의 이곳은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조용하면서도 아름답고 분위기있는 곳이다!
소주는 옛부터 풍요와 전통의 도시로 중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던 곳이라고 한다.
상해를 먼저 여행한 후라면 정말 다른 분위기의, 그야말로 전통적인 중국의 모습에 또 한번 감탄할 것이다.
▲ 동양의 베니스 소주
"上有天堂 下有蘇杭(상유천당 하유소항 :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유명한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습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천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 동양의 베니스 소주
소주는 그야말로 'old city'로 고층빌딩은 눈을 씻고보아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대신, 도시 이곳저곳을 흐르는 운하와 낡은 돌다리들 전통 중국식 기와집과 나무 배, 순박한 웃음의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간 곳은 한산사였다.
▲ 한산사 올라가는 길
남조 양(梁) 천감(天監) 연간에 지어진 사원으로 원래 명칭은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는데 당대 고승인 한산자(寒山子)가 이 곳에서 머문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한산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 한산사 입구
중국 소주의 한산사는 규모가 크지 않은 사찰이다.
중국사찰의 특징은 황색담과 검은 기와지붕으로 단장을 하고 있다.
한산사 역시 벽면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것은 황실에서 방문을 했던 곳을 의미하며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색을 칠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한산사는 중국 당나라의 선승인 한산과 습득이 창건하였으며 두 선승이 아주 절친하게 지낸 것이 유래가 되어 이 지방에서는 결혼하는 신부가 한산과 습득이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고승 삼장법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기도하다.
또한 당나라의 시인 장계가 한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지었다는 풍교야백이란 시로 더욱 유명하여 그 시문이 비석으로 새겨져 있고 그 종은 일본에서 가져갔다고 하며 현재 일본의 재력가 등이 한산사에 대한 많은 금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 한산사
▲ 한산사
그리고 절 안에는 부처님을 모신 곳 말고도 공자를 모신 곳도 있었다. 절의 중앙에는 화려한 탑이 세워져 있어 이 탑에 올라 가 보니 주변 경관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유원!
▲ 유원
중국의 4대 정원 중의 하나로 다른 정원에 비해 아기자기하며 정교한게 특징이며 규모도 굉장히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하나, 내 기준으론 여기도 크다. 일개 개인의 정원이 왠만한 대학교 캠퍼스만하면 말다했지 머;;
▲ 유원
▲ 유원
유원은 1525년에 만들어진 정원으로 졸정원과 함께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원입니다.
명나라 가정 연간(1522-66)에 서시태가 개인 정원으로 만들었고,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동원이라고 불리었으나, 몇 번의 개축을 거쳐 청대에 유원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4개의 영역이 있어서 각각 다른 취향의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녹나무로 만들어진 오봉선관이라는 청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있다.
700m 길이의 장랑과 장랑의 벽면에 있는 화창이 있는데 각각의 모양이 다른 화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관이 볼만하다.
관운봉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태호석은 태호석의 왕이라 불리는 명석 중의 명석이다.
▲ 녹두바
유원에서 사먹은 녹두맛 아이스크림!
이름을 몰라서 내가 지었다!! 녹!두!바!ㅋㅋㅋ
유원에서 나와서 이동중에 발견한 신호등!
▲ 신호등
신호등에서 신호변경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저런게 있으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쩜...나쁠수도 있겠다..
카트처럼 카운트하면 부스터써서 바로 튀어나갈수도 있으니까...ㅋㅋ
중국에는 몇 가지 유명한게 있다..
진주, 실크, 차..등등... 그 중에서 소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유명하다는 실크공장도 잠깐 들렸었다.
공장 입구에 서있던 오토바이가 또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 실크공장앞에 서있던 오토바이
중국의 오토바이...표지판이 우리나라것과는 달랐다. ㅋㅋ
그럼 본격적으로 실크공장을 둘러 볼까나~ㅋ
▲ 실크 공장
중국 소주시는 세계적으로 실크의 원산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누에통을 물에 일정기간 담구었다가 유연성이 생기니까 그것을 누에통 실제크기 보다 몇 십배나 더 큰 유자(U)모양에 약간 땡기면서 씌운 후 말려서 말린 누에통을 두사람이 각각 화~악 잡아당기니까 우리가 덮고 자는 이불크기만큼 늘어났다.
▲ 실크 패션쇼
실크 공장에 가서 실크 제조 방법부터 패션쑈까지 보고 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도 뻔데기를 집어 먹으니가 벽에 이런 문구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 공장 입구에 서있던 주의 문구
그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호구였다.
호구는 소주의 상징으로 북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름은 해용산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춘추시대 오왕인 합려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뭍혀 있다고 전해 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호구에서 처음으로 만난것은 감감천!
▲ 감감천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그말이 유래 된 곳이 이곳이다.
우리나라 말인줄 알았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온 말인줄은 이번에서야 알았다.
눈 먼 동자승이 있었는데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동자승은 항상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힘들게 물을 길어왔었는데 어느날 꿈에 우물자리를 보게 되고 그곳을 파기 시작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중이 "그곳은 물이 안나오는 곳인데 열심히 판다고 물이 나오겠느냐, 만약 물이 나온다면 내가 두꺼비가 되겠다"라고 했는데 열심히 판 결과 진짜 물이 나왔다고 하며 그 우물 이름이 감천이라 한다.(달 감, 샘 천)
그리고 그 우물옆에 두꺼비 상도 있는데 예전 그 중이 변해서 된것이라 한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말이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보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감감천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시검석이 나온다.
▲ 시검석 안내석
▲ 시검석
호구에 들어서면 바로 타원형의 커다란 돌이 길가 오른편에 누워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검석이다.
이 시검석에 대해서는 두가지 전설이 깃들여 있는데 그 첫번째가 합려와 간장에 얽힌 이야기이다. 2500여년전 오왕 합려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당시의 장인 간장을 불러 100일 이내에 보검을 주조하도록 하명한다.
간장과 그의 처 막사는 3개월에 걸쳐 채광과 야금을 하였다. 그러나 중요 공정인 쇳물 주조가 여의치않자 막사는 용광로에 몸을던진다. 마침내 광석은 쇳물이 되고 간장은 두자루의 보검을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두 검은 간장과 막사로 이름을 붙인다. 간장은 날짜를 지켜 해용산(海涌山)에서 합려에게 칼을 바치고 합려는 이 칼을 시험해 보고자 커다란 돌을 잘랐다.
또하나의 전설은 진시황과 관련이 있다. 진시황이 합려의 검을 발굴한 후 시험했다는 설과, 진시황이 합려의 무덤을 발 굴할 때 한마리 흰 호랑이가 무덤에 나타났는데 진시황이 칼을 뽑아 들어 호랑이를 내리치자 호랑이는 도망가고 바위만 둘로 잘라졌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넓은 돌로 된 광장을 만날 수 있다.
▲ 신선놀음 장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 저곳이 바로 그 도끼자루가 썩어나갔다는 그곳이란다. ㅋㅋ
▲ 호구의 가마꾼
안가는 곳이 없는 중국의 가마꾼들;; 그 곳에는 여자 가마꾼도 있었다.
▲ 천인석
▲ 천인석
▲ 천인석
돌이 평평하고 넓은 것이 약 1,000여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한다. 산의 중심으로 호구내의 주요한 경관들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천인석에는 안타까운 전설이 깃들여 있는데 합려가 죽자 그의 아들 부차는 이곳에다 비밀리 무덤을 만들었다.
묘가 완성 된 후 부차는 그 비밀이 누설될 까 두려워하여 이곳 천인석에 공장 천여명을 불러놓고 주연을 베풀고 사람들이 술에 취하자 부차는 그들을 전부 살해하였는데 그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바위에 스며들었다고한다. 지금도 기후가 습윤할 때면 바위 위에는 피의 흔적이 배어 난다고 한다.
▲ 호구검지
▲ 호구검지
▲ 호구검지
▲ 호구검지
오왕 합려가 죽은후 그의 아들인 부차가 생전에 검을 좋아한 합려를 위하여 무덤에 보검 3천자루를 함께 매장하였다는 소주의 검지.
워낙에는 연못이 아니었으나 3,000개의 보검을 탐내하는 진시황이 보검을 구하기 위해 합려의 무덤을 파헤치는데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서 이를 물리친 후 진시황마저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파헤치다 만 곳에 물이 고여 훗날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구 정상으로 올라가면 중국의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리는 호구탑이 있다.
▲ 호구탑
호구탑은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와신상담"의 주인공인 오나라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그를 매장한 지 3일째 되는 날에 하얀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 때문에 호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이 47.5m인 8각형 7층탑인데, 약 15도 기울어져 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
말하자면 중국판 피사탑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벽돌탑으로 961년에 완성된 것.
▲ 호구탑
호구탑이 기울어진 이유는 호구검지에 있는 문화재를 찾기위해 발굴을 하는 과정에서 산 정상에 있는 탑이 기울어져 할수없이 문화재의 발굴계획을 포기했다는 말이있다.
호구까지 둘러보고 장가계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상해로 이동했다.(장가계는 다음호에~ㅋ)
장가계에서 2박 3일의 일정 후 다시 상해로 돌아와 처음 잤던 광동호텔에서 1박을 더 하고 이번여행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마지막날은 시내를 좀 둘러보고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는 거였다.
이동하는 길에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았다.
▲ 임시번호표지판이 없는 중국은 표지판이 나올떄까지 저러고 다닌다고 한다.
▲ 자전거 탄 사나이
중국이 자전거가 많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다닌다는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첨에는 많이 놀랐었지만...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날이 너무 덥다보니...별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 중국의 우체국
버스안에서 지나가면서 찍은거라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중국의 우체국은 초록색이었다;ㅎㅎ
호텔에서 약 20분쯤 이동한 후에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건너편에서 바라본 임시정부청사
▲ 임시정부청사 유적지
▲ 임시정부청사 유적지
▲ 역사자료 영상 상영 중
▲ 임시정부청사 입구
▲ 안중근 의사, 김구선생 흉상
▲ 임시정부청사 내부
언뜻보기에는 그냥 주택가 같지만...
그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유적지가 숨어있었다.
약 10분간 역사자료영상을 관람하고 1층부터 3층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는 짧은 코스였고, 그내부는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소박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개정안 본문],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국가와 군가 제정을 추진한 문서(1942)], [중국국민당중앙정치학교 공문] 등의 원문을 보존해 두었고, 이봉창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전시해 두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진리로 만변의 형세에 응부한다.
-1943년 가을 귀국전
▲ 임시정부청사
주택가 한가운데 있던 임시정부청사...
참 아이러니 하게도 역사의 현장 바로 옆집에선 빨래가 펄럭이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심적 동요는 없었지만 주위에 계시던 어르신들은 무척 침통해 하셨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상해에 온 한국인들은 동방명주를 못보더라도 꼭 들렸다 간다는 그곳..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마지막 관광지인 임시정부청사까지 둘러본 후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 푸동 국제공항
항상 브릿지로만 타고 내리던 비행기를 공항 한가운데서 타게 되니까 괜히 뒤돌아 손을 흔들어야 할것 같고..꼭 뉴스에서나 보던 국빈이 된 느낌이었다..ㅋ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매 여행을 다닐 때 마다 마지막 날이 되면 느끼는 것은 어디를 가나 아쉬움이 남는다는게 아닐까 싶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상해에서의 3일도 나의 여행수첩 한장을 장식하며 벌써 끝나버렸다.
운 좋게 비도오지 않았고 덥기는 했지만 관광에 무리가 갈만큼은 아니라 날씨 운도 따랐고, 같이 여행했던 일행들과도 마음이 잘 맞아 별 다른 마찰없이 유쾌한 여행이 되어 참 좋았다.
다음편에서는 이번 여행일정 중 중간에 빠졌던 장가계/원가계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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