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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너무 철이 없었구나

신용연 |2006.10.22 17:12
조회 71 |추천 0


 

엄마가 너무 철이 없었구나

 

오늘은 박경희님의 글을 띄웁니다. 박경희님은 농익은 아름다움이 여자나이 마흔의 속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십 고개는 살아온 것들을 굽어보며 성찰하는 언덕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연년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매일 전쟁을 치르며 살았다. 그때 나는 큰아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다.

작은아이에게 젖 물리기 전에 큰아이는 눕혀놓고 우유병을 물렸다. 엄마의 가슴에 안겨 행복하게 젖을 빠는 모습을, 큰아이는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툴툴대더니 애꿎은 우유병 꼭지만 뜯어놓았다. 나는 제대로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야단을 쳤다. 아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꺽꺽 울었다. 크게 울면 더 혼날까 봐.

 

시어머니와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모든 화풀이가 큰아이에게 갔다. 그때 아이는 이유도 없이 나의 신경질과 매질을 당해야 했다. 나는 큰아이를 학대했다. 마치 스무 살 남자애 대하듯, 무엇이든 네가 알아서 해라. 너는 형이다. 엄마가 힘드니까 네가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도 버거운 일들을 요구했다.

지금도 큰아이를 보고 있으면 무릎 꿇고 빌고 싶다.

"엄마가 너무 철이 없어 너를 아프게 했구나. 미안하다."고.

 

그때 내가 참된 어머니, 며느리, 아내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고한 정체성을 가졌다면, 애꿎은 내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을텐데……. 상처는 받는 사람만 아픈게 아니라, 상처를 주는 쪽 역시 편치 않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내가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나고, 내가 베 푼 것보다는 미안했던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장콕도가 `반성하는 나이, 마흔"이라고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리라. 반성한 모든 것들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 전에 다시 되풀이되는 삶은 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십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박경희 지음 `여자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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