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反響)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은 , 의 풋풋한 매력과 60, 70년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쿵푸 액션 스타 의 노련함과 중후함이 어우러져, 암흑가에 피어난 감성적인 사내들의 '의리'와 '우정'을 그린 수작(秀作), 아니 명작(名作) 홍콩영화입니다.
사실 '의리(義理)' 라는 단어의 뜻은 이기에 조직폭력배들에게 적용시키기에는 무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행동 이면에는 어느 정도 당위성이 있었기에 '의리'라는 단어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의리를 저버린 조직에 단신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도와주는 , 형을 원수 취급하던 이 에 의해 형제의 소중함을 깨닫고 형을 도와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으며, 한동안 '홍콩 느와르'는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웅본색]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는 동안 [영웅본색]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내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며 우정을 나눠왔던 친구들이 조폭이 되어 파국(破局)으로 치닫게 된다는 줄거리와, 특히 마지막 장면의 에필로그(epilogue)가 영화 [친구]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친구]는 주인공들의 의리와 우정이 산산이 부서지며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반해, 이 영화 [거룩한 계보]는 주인공들의 의리와 우정이 끝까지 소중히 지켜지며 [영웅본색]과 비슷한 결말과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친구]와는 사뭇 다른 내용과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직을 위해 '사고'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간 은 감옥에서 같은 조직에 있었던 친구 과 예상치 못한 만남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받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 빈자리는 바깥 세상에 남아있는 또 다른 친구 이 대신하여 채우고 있으며, 이 착한 친구는 의 부모님도 대신 모실정도로 의리 깊은 친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이들 세친구는 서로를 형제처럼 아껴주고 있으며 그들 사이를 어느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냉혹한 조직은 이들의 우정과는 상관없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며 서로를 갈라서게 만들려 합니다.
사실 이런 조직 폭력배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우정과 의리, 갈등, 그리고 복수극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우려먹은 뻔 한 줄거리이며, '조폭' 또한 한국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뻔 한 소재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특유의 위트와 유머장치를 영화 속에 집어넣어 기존의 조폭영화와는 다른 감성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제는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언어유희와 황당한 상황설정은 '장진식 유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 와 이 팽팽히 대립하는 첫장면부터 엇갈린 상황설정과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고깃집에서의 어린아이 같은 싸움장면, 어이없는 비행기 추락, 황당한 탈옥장면등 기상천외한 상황들은 '장진식 유머'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심지어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방장과 방장 부인의 만남장면에서도 '장소'의 의외성을 통해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이 영화의 가장 커다란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 작품이 늘 그러하듯 조폭 사회에도, 교도소에도, 심지어는 인질로 잡은 사진관 주인과 인질범 사이에도 정(情)을 느낄 수 있으며, 파렴치한 배신이 난무하는 현실 사회와는 다르게 끝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 하는 이들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나 따뜻합니다.
비록 결말은 조금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그들이 선택한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뭉클한 감동을 안고 결말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은 연기파 배우답게 액션연기와 코미디를 절묘하게 소화해 내었으며, 또한 무난하게 순하고 착한 조폭 역할을 잘 해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배역은 의리의 사나이, 사형수 역의 인것 같습니다.
고독해 보이는 모습 속에 숨겨진 야성의 모습, 그리고 끝까지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장렬하게 산화(散花)해가는 모습은 [영웅본색]에서의 을 떠올리게 했으며,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그의 연기력으로 배역을 너무나 멋지게 소화해내어,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목숨은 아니더라도 동고동락(同苦同樂)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까요?
의 시에서 인용하였다는 첫 장면의 자막과 대사....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
원래 그 시가 우정에 관한 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떠올릴 때마다 친구에 대한, 그리고 우정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새삼...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