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30
엘케 하이덴라이히 -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
이마에 송송 땀이 맺힌 채 쩔쩔매는 겁쟁이는 상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설픈 아마추어와 침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카는 자신의 '첫 남자'를 직접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일을 우연이나 철없는 감정에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길을 훤히 꿰고 있는 남자를 찾아낼 것이다.
그토록 찾아 다녔던 사랑이 그녀의 인생에 있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사랑에는 언제나 수많은 기대가 따르고, 사랑의 증거들이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사랑 그 자체는 활활 타오르는 가시덤불 속에 숨어 있는 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유령처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전율은 분명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남자와 여자 사이에 감미로운 감정이 형성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서로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열일곱 살에 처음 사랑에 빠졌다. 첫사랑을 할 때 나는 그 사랑 때문이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빛에 금발머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나는 생기발랄했던 반면 그는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나와는 달랐다. 어린 나이에는 자기와 정반대의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고, 휴식과 이해와 조화와 일체감을 얻을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한다.
"그래그래. 아서 밀러가 마릴린 먼로를 만나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여자입니다.'라고 말하지. 먼로는 그 말을 자기만을 위한 값진 문장으로 간직해. 그런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있거든? 이런 경우를 소시지처럼 뭉갠다고 하는 거야. 너희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나만의 바이올리니스트, 당신의 미소는 반짝이는 상아의 빛처럼 부드럽고 섬세하죠. 때로는 고향을 그리는 향수처럼, 때로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처럼.'
이건 누구였지? 릴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왜 지금의 나는 사랑에 빠졌던 그 어린 소녀와 단절되어버린 걸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언제 모든 걸 잊어버린 걸까? 그때 나는 내가 무척 크고 대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작기만 하고, 내 심장은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다. 난 세상을 내 열정에 맞추기보다 내 자신을 세상에 맞추었다. 누구에게 잘못을 돌려야 할지 생각했다. 공부? 오토의 프래그머티즘? 첫사랑에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내 자신이 그리워졌다.
'네가 정말 좋아하고, 오직 너에게만 속하는 것에다 대고 네 마음을 속삭여봐.'
"네 주위엔 정말 바람 잘 날이 없구나. 그것도 네 아버지랑 똑같아."
"사랑은 완공되지 못할 공사 현장과 같으니까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하자, 엄마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한 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거야. 나에게도 그랬어."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창문을 활짝 열었었다. 비는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시구에 있던 표현처럼 참 처연하게도 내렸다.
'그는 식탁에 앉아 늙어감에 대해 생각한다. 내리는 비는 아직 그에게 음악이 되진 못했다. 그렇다고 이젠 소음이 되지도 않는다.'
이제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얘기하는 것조차 괴롭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한 사람이 그립다. 무딘 깃털과 비늘이 많이 낀 모피, 회색빛 영혼의 나를 받아줄 사람. 나에게서 다시 빛이 나게 해줄 한 사람. 나는 정말 나 자신이고 싶다. 아내, 엄마, 딸이나 할머니로서의 나가 아닌 그냥 그대로의 나.
너는 너 자신을 잃어버린다, 너는 너 자신을 다시 찾게 된다, 어느 순간 느끼겠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한 사람이 다가와 널 다시 찾아낼 거야.
카를과 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우린 입을 맞췄다. 마침내, 20년을 돌고 돈 시점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벅찬 행복에 빠져. 우리가 함께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지점에 도착했고, 우리 결국 이 지점을 향해 우리 자신을 몰고 온 것이었다. What was it I wanted? 나는 무엇을 원했지? 그래, 난 이걸 원했다.
여자가 붉은 장미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남자들에게 심어준 바보는 교수형을 당해야 할 것이다. 붉은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꽃에 속한다. 사랑을 하는 동안 늘 정해진 규칙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갑자기 알마의 마음에는 가느다란 두려움이 작은 파장을 내며 번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보기 좋게 다듬어져 누가 봐도 행복할 듯한 삶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요나단이 그의 말을 끊었다. "행복 같은 건 없어."
비비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행복은 있어요. 단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닐 뿐이지."
요나단은 하려던 마을 이어갔다. "행복, 그건 호텔 양탄자에 새겨진 태양 같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추억에나 있을 뿐이지. 사람은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단 걸 깨닫거든."
엄마의 장례식에서 우리 가족이 몰락하던 때, 그러니까 두 줄에 매단 항아리를 천천히 땅속으로 묻던 때, 그때 나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슬픔은 훨씬 뒤에 찾아왔다. 항아리 위로 흙을 덮으면서 나는 엄마가 평생 동안 완강하게 싫어했던 흙먼지가 엄마를 덮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런 생각만 했었다. 나는 촬영장에서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속에서 큰 얼음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그 얼음이 녹아 내 영혼에 홍수가 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는 차라리 빙산으로 남고 싶다. 물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봉우리를 지닌 빙산,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어두운 부분은 아래 숨기고 있는 빙산.
나는 맥주 한 잔과 화주를 시켰다. 우린 모두 자포자기를 해버린 암살단 같았다. 우린 뭔가 달라지기를 바랐다. 우리는 우리 안에 소리없이 변화가 닥쳐올 것을 믿었다. 변화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찾아와 지금껏 진행되어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리스 베커도 이제 변하겠지. 그가 결심했던 것이니까. 나는 자신의 뜻대로 변화를 찾아갈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보리스 베커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의 삶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할 만한 일인지 알고 싶었다. 하나 이상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한 번 이상의 죽음을 주어야 함을 그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