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미안한 사람들이 있듯이, 서로에게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이 그렇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듯이 벗에게도 그런 마음이 항상 있다. 언제나 어두운 그늘 아래서 홀로서기에 낑낑대고 있을 때 그것이 틀린길이라며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다. 고마워서 미안하고, 감사해서 섭섭하고, 좋아해서 더욱 애틋한 그들을 기억한다. 없으면 허전하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붙어 있으면 서로가 함께하는 이들, 스스로를 '벗'이라 칭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어떤 질긴 실고리로 연결되어 붙잡혀져 있는 이들, 그래서 징그럽지만서도 무감각하면서도 편안한 듯한 녀석들, 그들이 내 앞에 있다.
어느 덧 내 나이 스물 다섯,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고. 나 엮시 그런 평범한 인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고독의 둘레에 엮어 놓은 체 기나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빛을 찾으려 애썼던 그런 비극의 주인공인 양 홀로 외로움의 벽을 만들었던 인간이라 생각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진정 나를 위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고,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벗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다. 참으로 실례되는 말들, '외롭다, 슬프다, 고독하다, 심심하다, 죽고싶다...' 이 섭섭함으로 가득찬 영역의 감정들을 이제는 지워야 할때인 듯 싶다.
기억속에서 떠돌고 있던 망녕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길 원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원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 내가 그 주인공의 역을 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다. 바람따라 정처없이 흐르다보니 오늘의 나를 고독의 틀에 갖추기에는 부쩍 커버렸다. 외로움도, 슬픔도, 고독함도 모두 가슴한구석에 묻어버릴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때로는 울컥거리며 힘들때도 잊지만 흔들리지 않으리라.
밤이 저물고, 어둠 속에서 바람소리만을 분간해낼 수 있는 시간, 이제는 그 시간이 두렵지 않다. 고개를 수그리고 이불속에 파묻혀 하루를 걱정해야 했던 시간들, 이제는 무섭지 않다. 감사함으로 나아감에 있어 이제는 그들이 나에게 감사의 이유가 될 것이다.
때로는 싫어도 술한잔 기울여야 할 때가 있다. 이 고통의 시간을 견텨낼 수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일 것이다. 농구공 한 번 튀겨 밤하늘의 별이 밝다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은 요동치는 심장소리와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소리칠 수 있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홀로 남을 수 있는 시각, 외로움과 그리움의 기로에 서있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치게 만들었던, 힘들게 만들었던, 폐쇄하게 만들었던 기나긴 고독의 여운의 끈을 놓아야 할 때인것 같다. 쉽지 않을 것이다. 무려 이십 오년이나 함께 해온 사이이니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라는 망상이 또다시 나를 괴롭힐 테니까. 하지만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있으니까. 분명 외롭지 않고 그리워 할것이다. 나에게는 '벗' 있으니까. 고마워 할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감사할 것이다. 오늘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계시니까.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든지 와서 나에게 기대어 그 시원한 그늘밑에 조용한 쉼터를 만들어주는 나무, 요란하지도 않고, 눈에도 띄지 않지만 뿌리만큼은 깊숙하게 박혀있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몰아치는 비, 바람과 내리치는 눈보라 모두 견뎌낼 수 있는 흔들림없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리라.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아직도 나는 그 '나무'에 유효한 것일까? 깊은 사색의 바닷속 하나쯤 어디에서 오늘도 나는 허우적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고마운 사람들 쉬게 해야 할 터인데,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