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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이상민

장은수 |2006.10.26 17:27
조회 113 |추천 0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존경이라면 아직 웃길 수 있지만.. 한결같은 농구선수인 이상민은 운동선수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나때문에 보기 시작한 대학농구.. 남자들은 고려대를 좋아하던 때였지만 누나땜에 멋모르고 연세대를 좋아하던.. 호화멤버의 중심이었던11번의 이상민.

누가 그랬다.

"김승현은 흐름을 타는 선수고

                         이상민은 흐름을 잡는 선수다"

스타일이 다르고 광적인 농구팬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두선수를 비교하는것은 웃기다.  하지만..멋모르는 김승현팬들이 나이든 이상민과 비교하는건 좀 그렇다. 집에있는 누나가 예전에 모았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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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가드. 연세대 시절 이상민의 별명이다. 그는 홍대부고를 나왔다. 당시 고교농구는 춘추전국이었다. 서장훈과 현주엽라인의 휘문고, 제2의 이충희평가를 받았던 김병철의 용산고, 김영만의 부산고, 고교 농구사상 최고 탄력을 자랑했던 당시 센터 전희철과 당시엔 장신슈터 우지원의 경복고..  홍대부고는 이러한 상황에서 별 스타없이 3연패를 달성했었다. 이상민은 당연히 고교랭킹1위로 연세대로 진학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상민을 잡기위해 고려대가 손을 내밀었지만 고려대가면 농구그만두겠다는 말과 함께 연세대로 갔었다. 내 생각엔 당시 연세대엔 유재학이 코치로 있었다. 이상민이 지금 존경하는 선수를 묻는질문에 유재학을 말하는것 보면.. 그의 영향인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다. ㅋㅋ 

 당시 연세대. 우리가 알고있는 연세대때 말고. 이상민이 고등학교 졸업반시절.. 대학최고 포인트가드였던 오성식, 저승사자 정재근, 최고슈터였던 문경은, 김재훈이있었다. 당연히 이상민은 후보였다. 그에겐 오성식이 너무 큰 그림자였다. 프로에선 오성식이 별 주목 못받았지만 그 당시엔 제2의 허재라는 애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성식이 부상당했다. 2차 농구대잔치때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처리도 안된 이상민에게 주전PG의 임무가 주어졌다..   그날.. 연세대는 김현준의 삼성에게 최초로 승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2차 농구대잔치의 어시스트 1위는 당연히 있어야되는 강동희가 아니라 20살 1학년 이상민의 몫이었다. 그리고 연세대는 대학돌풍을 일으켰다. 기아,삼성,현대와 모두 대등했고 변화된 연세대의 중심엔 이상민이 있었다고 한다. 이상민과 짝을 이룬 문경은도 脫대학수준이라고 평을 듣기 시작한것도 이때였다.

 기억나지 않지만 잡지에 있는 이상민 커버스토리인가... 거기있는걸 발췌해봤다.

 내가 기억하는건 이상민이 3,4학년때다.  그때 연세대는 최강이었다. 대학팀으로 농구대잔치 우승도 이때 기록했는걸로 안다. 어느 경기에서.. 이상민이 무릎부상을 당했었는데.. 김성헌으로 교체되자 바로 흐름이 바뀌어 상대팀에 깨졌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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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지만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인 이상민은 프로에와선 두말할것없이 최고였다.

그의 나이 벌써 35.. 나의 기억엔 파란색 유니폼에 182의 키로 얌전하지만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며 덩크를 터뜨렸던 모습이 선한데.. 풀타임으로 뛰기엔 무리가 되버린 나이..

얼마전 인터뷰에서 은퇴시기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시점인것같다고 말하는 그...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의 얼굴처럼 영원할것같았던 농구선수 이상민이란 말을 들을날이 멀지않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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