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방법론 타문화권 복음전달의 원리와 적용
서론 복음은 근본적으로 소식이기에, 그것도 기쁜 소삭이기에 전달을 내포한다. 선포되어야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복음의 특성이다. 복음은 진리를 전달하는 것을 내포한다. 또 복음의 진리는 효과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포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설득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달이 효과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듣는자의 배경과 필요에 맞게 적응 시켜야만 한다. 제1부 복음과 타종교와의 관계 1. 오늘의 종교 세계 우리는 복음의 효과적인 전달자가 되기 전에 우리의 현재 세계의 종교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세계 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 그들이 기독교 신앙에 도전하고 있는 방식들, 그리고 모든 곳의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과 다투는 다양한 세력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13:38에 나오는 예수의 이 말씀은 우리의 현재 세계 상황에 매우 적절하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기독교 국가란 단 하나도 없지만 거의 모든 나라에 그리스도의 진실한 추종자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리적 영역은 없다. 그러므로 기독인과 비기독인 사이의 경계는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진보를 막는 가장 큰 방해는 자체의 계층 내부로부터이지 외부로부터가 아니다. 이것은 종교간의 대면이 더 이상 동양의 국가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로 우리의 앞마당이 선교의 현장이 된 것이다. 현대의 종교적 상황에서 또다른 매우 중요한 요소는 비기독교 종교들의 부활이다. 정치적 독립의 결과로 아시아인은 그들 자신의 역사, 문화, 그리고 그들의 고유의 토착 종교의 신앙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황경에 대한 새로운 저항과 과련을 스스로 주장하면서 생기를 되찾은 옛 것들이다. 부흥 운동의 주된 특징은 국교를 확립하려는 경향, 즉 다수의 종교를 국교로 만드는 경향이었다. 아시아 종교들의 부활이 나타나고 있는 또다른 형태는 개혁이다. 이 개혁 운동의 배후에 있는 주된 세력은 높은 윤리적 규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에 대한 강조, 그리고 개인의 가치와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영향 그자체이다. 세 번째 형태는 르네상스 운동으로 그 과정은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종교의 주요 개념들을 재진술 또는 재모방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옛날의 신앙은 새로운 의미, 새로운 탄력, 그리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종교적 부활의 직접적인 결과로 기독교 신앙이 어느 때보다 폭넓게 비기독교 종교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높은 이혼율, 범죄율, 추한언행, 서양 제국주의, 자유로운 성관념등 우리의 실패에 대해 비판하고, 유일성과 진리에 대한 우리의 주장에 대해 도전하며, 그들 자신의 종교들을 대표하여 보편 타당성에 관한 터무니 없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절대진리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포기하고 모든 종교는 동일한 지위에 있다는 타협적인 태도를 받아 들이도록 촉구하며, 세속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에 서로 힘을 합쳐 현대의 이교도들을 종교적 신앙과 실행으로 되돌이키자고 한다. 비기독교 종교들에 의한 모든 외적인 부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어떤 지역에는 영적 진공이 커져가고 있다. 이 영적 진공은 전세계의 대학생들 가운데 아주 강하게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종교는 아편이다라고까지 한다. - 1 - 영적 진공은 또한 전세계의 도시 중심지에 있는 저소득 대중 가운데 강하게 있다. 그리고 다양한 환경적 요인들, 즉 정치적, 역사적, 사회 문화적 힘에 의해 영적 진공이 생긴 나라들이 있다. 영적 진공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교회에 굉장한 전도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적 진공은 복음 전파와 교회 성장을 위한 문호 개방을 해줄 뿐만 아니라 또한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영적 진공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기독교 신앙과 타종교 신앙 근본주의자의 입장 - 이 견해는 비기독교의 종교들을 거짓되고 전적으로 악한 것으로 간주한다. 세계 종교들을 사단의 지배 하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도 결코 비교되아질 수 없다. 단지 대조되어야 한다. 비록 이런 입장이 열정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유일성을 보호한다손 치더라도 타종교들과 타종교 문화에 대해 비난과 적대의 태도로 이끈다. 성취이론 - 근본주의자들의 극단적이도, 독단적인 태도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이론을 통하여 보다 회유적인 접근을 추구해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세계의 모든 종교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안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진리적인 요소들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복음은 절대 진리이며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과 세계 타종교와의 관계는 완전한 진리와 잘못이 섞인 부분적인 진리와의 관계인 것이다. 성취이론은 비기독인들을 접근하는 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그것은 비기독인들과의 대화를 위한 문호를 개방해 주고, 동시에 기독교신앙이 인류 전체를 위한 유일하고도 완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단언해 준다. 그런데 성취이론은 비기독교 종교들 간에 서로를 구별짓는 영과 정신의 근본적 차이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불연속성의 이론 - 이 견해는 1938년 인도의 탐바람에서 개최된 국제 선교사 회의에서 화란인 크래머 벅사가 그 회의를 준비하여 비기독교 세계에서 기독교 메시지라고 쓴 글에서 상술된 것이다. 비기독교 종교들에 관해서 크래머는 그 종교들은 인간의 사색과 모색을 반영한 인간의 종교적 의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계시와 세계 종교들 사이의 관계는 불연속성의 관계이며, 접촉점이란 결코 없다고 주장한다. 더욱기 복음은 종교들의 완성이 아니며, 복음이 그들의 종교적 체계들로부터 나오는 개인적인 모든 열망들을 성취시킨다는 것은 강하게 부인한다. 크래머는 기독교 계시에 대한 편파적이고 불안전한 이해의 어려움과 그 결과 평가와 심판의 기준에 대한 불안전한 이해를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례수님이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성령의 선물을 우리에게 약속했다고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자유주의 입장 - 자유주의 입장의 주창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 행위는 종교의 역사에서 하나님 계시의 전체 덩어리 중 한 조각일 뿐이며, 이 기독교 조각이 우주적 계시와 구원의 전체가 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진리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이 아니다. 그 결과 기독교를 그 자체의 범주 안에서 타종교 위에 군림하지 않고 종교들 중 한 종교의 위치에 놓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계시를 기독교만이 갖고 있다는 주장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입장의 모든 주장들은 인간의 이성을 신의, 계시 위에 두며 기독교 신앙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포기한다. 그것은 기독교 선교를 일으키는 동기 그 자체를 잘라버리는 행위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확신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관용해야 하지만 동시에 복음의 주장에 있어서는 타협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모든 태도는 존경과 사랑으로 특징지워야 한다. - 2 - 3. 질의 응답 각종의 종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그 종교들은 전혀 같지다 않다. 첫째, 모든 종교는 교리가 같지 않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 인간의 개념, 세상의 개념, 도덕율의 개념 모두가 다르다. 둘째로 모든 종교는 그 목표가 같지 않다. 불교의 목표는 생명의 소멸이며, 복음의 목표는 생명의 풍성이다. 힌두교는 윤회로부터 해방이라고 선포하지만 복음은 죄의식과 죄의 능력으로부터 해방이라고 선포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와 타종교들 사이에 유사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와 윤리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때문에 유일하다. 회심과 개종에는 차이점은 개종은 이름만의 외적 변화로 같은 수평선 상애서의 위치의 변경이다. 회심은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삶의 내적인 변화로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위치의 변화이다. 회심은 모든 삶에 기본적인 것이다. 우리의 몸은 변화를 시키면서 산다. 우리는 고기, 야채와 과일을 섭취해서 그것들을 피, 근육, 건, 뼈와 신경조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변화되어 온 것으로 중요한 질문은 영혼의 회심은 가장 높은 차원의 변화이며, 그로 말미암아 악한 자가 선하게 되며, 약한 자가 강하게 되며, 불순한 자가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4. 복음 대 종교 복음과 종교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종교는 우선적인 강조를 행위에 두지만, 복음은 우선적인 강조를 실존에 둔다. 이것은 기독교 믿음이 선행을 도외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선행을 중요시 한다. 이것은 단지 우선권의 문제이다. 종교는 외적 행동을 강조하며, 복음은 내적 상태를 강조한다. 종교는 주변에서부터 중심으로, 외부로부터 내부로 득어가려고 한다. 복음은 직접 중심으로 들어가서 안에서부터 밖으로 분출한다. 종교는 외적인 개혁을 목표로 하나 복음은 내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종교는 원리와 법칙, 규약과 강령에 강조를 두며, 복음은 인격에 강조를 둔다. 비기독교 종교들과 복음사이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이러한 종교들과 그 창시자들 간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관계가 없지만 기독교 신앙에는 그러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본직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신뢰하고, 그를 주돠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와 교재를 시작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종교는 선행을 강조하며, 복음은 은혜를 강조한다. 우리는 구원을 살 수 없으며 공적으로나 값을 주고 얻을 수 없다. 구원은 순전히 은혜이며 공로에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렇게 복음은 실존을 강조하며, 실존은 변화로 말미암고, 소속으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소속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해야할 메시지이다. 제2부 복음 전달의 방법과 원리 5. 복음 전달의 접근 방법들 복음 전달의 접근 방법들 중 수용할 수 없는 방법은 먼저 정면 접근법으로 이는 다른 신앙들을 공격적으로 논박하고 정죄하는 방법으로 거기에는 복음 전파를 위한 어떤 접촉점이나 거점도 없다. 그러나 타종교들 신앙과 신들에 대한 정면 공격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편견을 북돋아 줄 뿐이다. 다음은 악수 접근법으로 이 방법은 청중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 입에 맞고 쉽게 만들기 위하여 복음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 3 - 수용 가능한 방법들은 첫째, 마음대 마음의 접근법으로 이 방법은 우리 모두의 전도와 설교에 기초가 접근법으로 그것은 영적인 혼합된 공허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혼합된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청중들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접근법에서는 종교적 체계에 대한 철저한 지식없이 그 사람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 접근법에는 세가지 접촉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어휘를 통한 접촉점과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필요들과 문제들 가운데서 찾을수 있고, 다른 종교의 사상들과 관례들에서 기독교와 유사한 것들을 찾아서 복음 제시를 위한 거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사성은 진실되어야 한다. 셋째, 대조 접근법으로 기독교와 타종교들 간의 대조점을 발견하는 것으로 장점은 이런 대조들은 복음의 유일성을 계시해주는 것이고, 주의점은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경시하지 않음으로 나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제시해야 한다. 6. 복음 전달을 위한 준비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위해서는 먼저 선교지 종교를 연구해야 하는데 할 수만 있으면 종교 창시자에 대한 좋은 자서전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의 발전을 발견하고, 경전을 통해 기본적인 신앙과 실천을 발견하며, 종교의 주석을 통해 그 종교의 신, 축제, 종교 의식, 예배 형태, 족교의 정신과 목적, 기독교 신앙과의 공통 근거, 접척점, 그리고 차이점을 배워야 한다. 또 현지인의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 언어는 그들의 생각, 사고, 느낌을 나타내는 마음의 열쇄이다. 그리고 현지인과 일체감을 갖어야 한다. 일체감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을 나누고 어울리며, 집을 방문하며, 우정을 맺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마음과 정신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 성취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청취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도 중요하다. 7. 복음 전달의 기본적 원리들 첫째,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배경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복음의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둘째, 설교에서 긍정적이 되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전도자가 성서적인 금지 사항과 문화적인 금기 사항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복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에 피해야 한다. 그대신 주님의 주장과 약속들을 강조해야 한다. 또하나는 설교자는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복음의 유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음으로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 넷째, 복음의 시범에서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 효과적인 복음 전달은 진리의 구두적 선언 그 이상이다. 그것은 항상 선행이 따르는 진리에 대한 생생한 시범이다. 다섯째, 메시지를 듣는 자의 구체적인 필요와 관련시켜야 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필요이지 요구가 아니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다섯가지로 구분했는데 그것은 생리학적 필요, 안전의 필요, 소속과 사랑의 필요, 자기 존중의 필요, 자기 실현의 필요로 이 필요는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기본적으로 채워지지 않고 의식의 중심에 있으며, 현재 그 개인의 동기를 지배하는 필요이다. 여섯째, 성령을 믿고 의지하라. 전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의존하는 신적인 사업으로 하나님은 구속을 인간에게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들을 사용하여 인간들에게 접근하셨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신 이유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신인 협동 내지 동역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성령은 듣는 자의 마음과 정신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성령을 믿고 의지할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해야 한다. - 4 - 8. 복음 전달에 대한 장애 극복 효과적인 복음 전달에 대한 주된 장애들은 먼저 언어의 장애가 있다. 구두전달에 있어서 언어 구조, 생각의 형태, 어휘, 관용어, 함축, 그리고 단어의 뜻에서 차이점들 때문에 메시지를 전달할 때 문제들이 발생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회개, 믿음, 사랑, 죄, 구원, 성화 같은 복음의 기본적 개념을 전달하는 단어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난다. 어떤 언어이든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풍요로운 속담과 격언이다. 비구두 전달은 같은 몸짓이라도 문화적 배경에 따라 사람들에게 의미가 다를 수 있고, 그 결과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 오해도 일으킬 수 있음으로 선교사는 그가 받아들인 언어의 구어의 의미 뿐 아니라, 비구두적인 몸짓과 상징의 의미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풍습, 생활 방식, 태도, 관습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문화적 차이는 늘 복음 전달의 장애가 되고 있다. 한 족 속의 문화적 양식에 기돋교의 메시지를 적용함으로써 선교사는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이룰 수 있다. 즉, 성경적 메시지를 문화적으로 적절한 구두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메시지의 내용을 유지하려면 메시지의 형태가 달라야만 할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비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데 생기는 모든 장애 중에서 종교적 개념의 장애가 가장 극복하기 어렵다. 우리가 의도한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어떤 것은 조금 다르게 표현해야 하거나 우리의 용어들을 더 정확하게 규정해야 할 것이다. 가끔 비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체계 가운데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가르침과 개념들이 있으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9. 토착적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라 다른 나라에서 복음 전달이 여러 모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선교사 자신의 무감각과 무분별 때문이다. 선교사 전도자는 청중의 배경과 삶의 양식에 맞는 토착적 양식으로 하는 설교를 개발해야 한다. 설교의 주제나 예화는 사람들의 삶에서 선택하여야 한다. 많은 경우 미국식 예화가 다른 나라의 청취자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청취자에게는 전혀 낯설은 경험과 습관에서 나온 예화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시지가 늘 같아야 한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나 우리의 방법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해야 한다. 고정된 메시지와 융통성 있는 방법은 기독교 전도자가 따라야할 좋은 법칙이다. 그러나 어떤 관습적인 방법에 집착되어 역효과를 망각한 채 이러한 방법을 타문화권에 쉽사리 이식할 수 있다. 때로는 평범한 방법이 특정한 문화에서는 그릇된 방법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전도자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심각한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제3부 비기독인에 대한 복음 전달 10. 힌두교도에 대한 복음 전달 힌두교는 4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대 종교로 약 5억 5천만의 신도 대부분은 인도에 살고 있다. 힌두교는 창시자도 가지고 있지 않고, 교리적인 종교도 아니며 새로운 사상과 신들을 쉽게 흡수한다. 힌두 경전은 2,0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고,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관습을 망라한다. 이경전의 중요한 모음집은 베다, 브라마나, 우파니샤드, 라마야나와 마하브하라타, 바가바드 기타, 푸리나가 있다. 카스트 제도는 힌두 사회의 기본적 구조로 종교는 카스트 제도의 지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5 - 왜냐하면 각자의 카스트가 각자의 업보의 결과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직업에 따른 경제적 구분은 카스트 제도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하면 네가지 주된 카스트는 브라만(승려와 종교 교사), 크샤트리아(왕과 무사), 바이샤(무역업자와 상인), 수드라(경작자와 노예)가 있다. 힌두 철학 내지 종교의 토대는 일월론 곧, 세계에는 하나의 통일된 실재만이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이 유일하고 "영원한 존재"를 브라만, 절대자, 또는 파라마트만, 세계혼이라 부른다. 힌두 사상에 의하면 브라만은 히브리나 기독교 개념의 우주 창조자가 결코 아니다. 우주는 궁극적 실재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힌두교의 일월론으로부터 브라만을 창조의 총합체와 일치시키는 범신론의 형태가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많은 신을 믿는 다신론의 형태로 빠졌다. 힌두교의 삼신은 모든 보이는 것의 기원자이며, 창조자인 브라마, 보존자인 비시누, 그리고 파괴자인 시버로 구성된다. 삼신은 각각 아내가 있는데 힌두교의 만신전에서 주요한 여신들이다. 이 기본적인 신들 외에도 셀 수 없는 신들이 있다. 업보의 신앙은 힌두교 인생관의 특징이다. 업보는 문자적으로 "행동" 또는 "행함"을 뜻하며, 개인의 윤리적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연의 원리를 뜻한다. 업보의 신앙은 삼사라 곧 윤회의 교리를 동반하는데 이것은 이생에서 행해진 것은 내세에서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힌두교에서 죄는 진리에 대한 무지로 , 그리고 실재와 자아에 대한 그릇된 개념으로 정의된다. 힌두교의 목적은 윤회와 업보의 바퀴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목샤(구원)는 영육의 속박과 시공의 우주로부터 구원인데, 이것은 둘 다 업보의 법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구원에 이르는 세 개의 중요한 마가, 곧 길이 있는데 사욕이 없는 행위가 첫 번째 길이고, 두 번째 길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이고, 세 번째 길은 보다 높은 지식이나 영적 통찰력의 길이다. 힌두교에서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장애는 힌두교의 업보 교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할 때 발생한다. "사람이 뿌리는 대로 거둔다" 이것은 우리의 나쁜 행위나 죄에 대한 용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속을 위한 고난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외시킨다. 업보에 따르면 예수가 고통을 당한다면 그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이 법과 질서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임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더 높은 법, 곧 회심적 사랑의 법을 소개하신다. 고로 업보의 법이 한 원칙을 드러낸다면, 십자가는 한 인격을 드러낸다. 업보의 법은 죄가 우리를 대항하며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드러낸다면, 십자가는 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며 그에게 고통을 드린다는 것을 드러낸다. 업보의 법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말하나 십자가는 그를 사랑의 하나님으로 드러낸다. 힌두교 종교의 핵심은 신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러므로 힌두교도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이처럼 굉장한 집착의 시점에서 그들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곧 성육신이시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인류의 한 구성원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볼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고 우리는 죄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힌두교도는 자신의 업보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그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십자가의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로 인간의 죄를 해결하셨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순간 바로 이 즉석에서 가능한 것이다. - 6 -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살수 있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힌두교의 고상한 열망의 완성이다. 11. 불교도에 대한 복음 전달 불교는 BC600년 전에 탄생되었고, 힌두교와 인도의 소산이며, 가장 먼저 국제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2억 5천만에서 5억의 추종자들을 자랑한다. 불교는 동질의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교리와 관습을 제시한다. 세 피타카스라고 불려지는 정통 불교 경전은 기독교 성경 크기의 약 11배나 되고, 팔리어로 쓰여져는데 부처가 죽은 후 몇 세기 동안 문서로 기록되지 않았는데도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불교의 창시자는 힌두교의 크샤트리아 계급의 왕자인 싯타르타 과타마이다. 그는 궁전에서 온갖 사치를 다 하면서 양육되었고, 냉혹한 현실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러나 어느날 인간의 고통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29세의 나이에 그는 인생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부귀영화를 포기한채 밤중에 궁전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는 극도의 고행과 자기 극기로부터 집중적인 정신적 활동이라는 단순한 삶으로 전환하였다. 마침내 시타르타 과타마는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 오랜 명상의 극치에 도달하자 갑자기 그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어 부처 곧 깨달은 자가 된 것이다. 불교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사성제로 고난의 사실, 고난의 원인, 고난의 치유, 욕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8정도이다. 8정도에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바른행위, 정업(正業), 바른 노력, 바른 마음, 정념(正念)이 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으로 열반은 평안과 안식을 느끼는 순수한 행복의 상태이며, 완전하고 열정이 없는 행복이다. 즉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어떤 점에서는 불교란 힌두교에 대한 반란이었다. 부처는 베타의 희생제도, 브라만 계급의 지도력, 카스트 제도에 반발했으며, 팔정도를 따르는 댓가를 치르겠다고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조직 안으로 환영되었다. 그래서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업보와 윤회의 개념을 수용하지만 세계의 혼과 개인의 혼이라는 개념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윤회"보다 "환생"의 개념을 강조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갈라지고 소승불교는 열반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금욕적인 삶을 강조하며, 대승불교는 평신도에게도 구원을 제공하며, 구원의 방법은 부처와 보살을 믿는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대조점은 불교는 무신론이고, 인간 중심이며, 기본적인 문제는 고난이고, 구원은 고난으로부터 해방을 뜻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데 기독교는 유신론이며, 하나님 중심이고,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하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불교도에게 접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밥은 "사성제"와 팔정도의 복음을 통한 것이다. 인생은 각종의 고난을 담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불교는 욕구가 고난의 원인이므로 욕구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을 하는데 그러나 모든 욕구가 악한 것은 아니다. 성경은 고난의 근원이 단순한 욕구보다 더 깊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준다.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는 죄이지 슬픔이 아니다. 죄는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고 세상의 궁극적 원인이며, 인생에 의미를 주는 목적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반항과 불신의 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나 자신이다. 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하는 상태이다. 인간이 죄를 지은 순간, 십자가가 하나님의 마음 속에 형성되었다. - 7 -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통하여 인간역사의 조류 속으로 들어와 세상의 죄와 고난을 몸소 맛보셨고, 우리의 업보와 죄를 그 자신이 지셨고 그리고 그것을 가장 위대한 승리로 바꾸셨다. 불교는 인간 자신이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며 절대적으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인간을 위한 구원은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행동하셔야 한다. 예수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행위이며, 그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구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삶에서 삶으로의 구원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부처가 말한 삶에 대한 열망의 파괴가 아니라 만족이다. 불교에서 극기의 길과 윤리적 행위는 욕구와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수단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과 화해되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후에야 실현되는 길이다. 인간은 도덕적이고, 선하고, 예의바르면서도 여전히 죄인일 수 있다. 물론 구원받은 삶은 도덕적이고 선한 행위의 삶이며, 또한 구원은 윤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나무는 불교와 기독교에 있어서 의미 심장한 상징이다. 불교도들은 과타마가 보리수 아래서 묵상하는 동안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보리수를 공경한다. 그것은 지식의 완성, 자기 구원의 성취,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달려 죽었던 나무, 곧 십자가는 사랑의 완성, 우주적 구원, 분리가 아닌 참여를 의미한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보는 것은 바로 이 희생적 사랑이다. 12.정령(精靈) 숭배자에 대한 복음 전달 정령 신앙이란 말은 "호흡" 또는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말 anima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영적 존재가 있는 것을 믿는 것이다. 정령 신앙은 아주 오래된 종교로 오늘날 자신을 힌두교, 불교도, 회교도라고 부르는 자들의 선조들도 한때는 모두 정령 숭배자들이었다. 정령 신앙은 주로 세계의 전통적인 종족 사회에서 발견되며, 그 수는 2-3억이 된다. 정령 신앙은 종족이 있는 수만큼 그 수도 다양하기 때문에 단일한 토착 종교로 간주될 수는 없지만 전체 정령 숭배자들의 세계에 걸쳐 흐르고 있는 어떤 공통적인 원리와 특성이 있다. 정령 숭배자는 삶을 세분하지 않고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모든 활동은 전체에 소속된다고 한다. 정령 숭배자는 영적 존재의 무한한 다양성에 의해 지배받으며 살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영적인 힘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 세상, 종족, 삶과 죽음, 하나님 또는 신들과 종족과의 관계에 관한 산화를 가지고 있고, 이 신화는 실생활에서 종족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정령 숭배자는 삶을 주기적인 순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주기적인 원리에 대한 중요한 점은 시간에 관한 정령 숭배자의 견해로 그것은 과거는 현재 반응해야 될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중요하며,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으며, 현재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들의 주된 특징은 영적 세계는 아주 실제적이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초연한 존재로 인간의 일상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신중에 가장 인기있는 신은 대개 번식의 여신이며, 영적 세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상의 영 또는 살아있는 죽은자 이다. 영과 영적인 힘에 대한 믿음은 마술과 종교 전문가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마나를 얻고 조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마술은 적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정령 숭배자의 삶은 금기에 의해 지배된다. 정령 숭배의 내적 약점은 명확한 윤리적 체계에 대한 도덕적 기초는 결여되어 있으며, 삶의 의미와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에 만족스러운 해답을 주지 못하다. 삶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종교적 지도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쓰임을 받지만 신뢰하고 따를 인물은 아니다. - 8 - 정령 신앙의 비극적 결과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고 있으며, 영의 세계나 영의 숭배자 가운데는 사랑의 개념이 결핍되어 자비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막아버리고 인생에 대한 숙명적인 경해를 갖도록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게되고 알 수 없는 분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사는 감정이입과 사랑을 가지고 정령 숭배자를 한 인간으로 다루고, 그들의 단순한 생활 양식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그 사람들과 일체감을 가지며, 그들의 언어와 사고 방식을 습득하며,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알며, 그들 신앙의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참된 경험을 하게할 진리는 먼저, 하나님을 단지 창조자와 율법 수여자로서만이 아니라 구세주와 아버지로 제시해 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적과 비유, 그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단순한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계시된 종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령 숭배자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가 그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이 십자가의 비극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때 그는 죄에 대한 두려움과 용서함의 필요를 느끼게 되고, 심판으로부터 피할 어떤 방법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마지막 제물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그 제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또 두려움은 정령 신앙의 지배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기독교 전도자는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자연의 힘을 이기시며, 영들보다 강하시며, 죽음을 이긴 숭리자이시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13. 회교도에 대한 복음 전달 흰두교는 가장 역사가 짧은 큰 세계적 종교로서 모하멧에 의해서 창시되었는데 그는 570년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6살에 고아가 되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후에는 숙부 밑에서 성장했다. 12살에 시리아에 갔다가 거기서 바히라(Bahira)라는 기독교 수사를 만났다. 나중에 그는 카디자라는 부유한 과부의 대상을 책임지는 직업을 얻었고, 그의 경제적 시회적 지위는 향상되었고, 25살에 15년 연상인 카디자와 결혼을 했다. 40세에 명상을 하다가 자신이 유일한 참 신인 알라의 선지자로 부름받음을 느끼고, 메시지를 선포하고 심판의 날을 경고했지만 메카에서의 반응은 오히려 반대가 일어나자 622년 그는 메디나로 퇴각했는데 이것이 회교의 시작이었다. 632년 그가 죽을 때쯤 아랍 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회교를 확립하였고, 오늘날은 약7억의 추종자가 있다. 이들은 신앙의 기초적인 조항이 있는데, 그것은 알라-신은 유일하고 창조자이며, 심판자이다. 천사들은 빛으로 창조되었는데 그들 간에 계급이 있다. 거룩한 책들-구약 성경은 성스러운 책들로 강주되는데, 보통 율법서인 토라와 시편인 자부르 두권의 책이다. 선지자들-신의 선택자 아담, 신의 설교자 노아, 신의 친구 아브라함, 신의 대언자 모세, 신의 말씀 예수, 신의 사도 모하멧인데 모하멧은 가장 위대하며, 모든 선지자들을 대신한다. 예정론-모든 일의 발생은 변하지 않는 알라의 천명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고 한다. 심판의 날-각인의 악하고 선한 행동은 영혼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긴 다리를 건널 때 특수 저울로 측정된다. 또 이들은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 먼저 증거의 말씀 암송-"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멧은 알라의 사도이다" 이것은 유아가 가장 먼저하는 말이며, 죽어가는 자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기도문 암송-매일 새벽, 정오, 오후 중간, 해질 때, 어두워진 후에 기도를 해야 한다. - 9 - 금식의 달-회교의 9번째 달인 라마단 달은 금식의 달로 지켜야 한다. 법적 구제금-모든 수입의 1/40을 구제금으로 내야 한다. 메카의 순례-모든 회교도는 최소한 일생에 한 번 요구된다. 이런 회교도 전도에서 주된 문제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회교도는 수세기에 걸처 불행한 관계를 맺어왔다. 모하멧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이 하나님과 마리아와 예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오해하였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회교도들에 대항하여 성지의 통치권을 다시 얻기 위해 칼을 들고 온갖 학대를 다한 십자군 이후 회교들의 마음에 특히 전 아랍 세계에서 원한의 잔재로 남게 되었다. 또한 문화적 장벽이 있었다. 회교도는 종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체계이기도 하며, 개종자들은 추방당하며, 심한 학대를 받고 때로는 죽음에 이른다. 또 종교적 장벽이 있다. 그들은 코란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편견 자세를 갖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회교는 세계의 모든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와 더 가깝기 때문에 대면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회교는 복음의 기본적인 진리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어떤 신학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 유대교와 기독교 성경의 현존하는 사본이 변조되었다고 하면서 오늘날 사용되는 번역판의 성경에 있는 차이를 지적한다. 그래서 현제 상태의 성경은 믿을만하지 못하며, 그러기에 진정한 신의 계시를 주는 것은 코란이라고 한다. 또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기독인이 세신을 믿음으로 우상숭배를 한다고 비난한다. 모든 회교도들은 에수를 믿는다고 시인하지만, 코란에 제시된 예수는 다른 "예수"이다. 코란의 아사(Isa)는 많은 선지자 중의 하나이며,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났고, 가브리엘이 아버지라고 한다. 아사는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않았으며, 죽지도 않았는데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죽음을 철저히 부인한다. 이런 회교도에게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우정을 통해서 접근해야하며, 비평, 부정적인 접근, 편견과 공격을 피하고,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인 설명을 접하게하며, 대화를 논쟁으로 이끌지 말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와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를 강조하고, 삶 가운데서 어떻게 기독교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14. 복음의 능력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이는 역사상 최초의 그리고 어쩌면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의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증오에 찬 박해자와 살인자로부터 동정심 많은 전도자이며, 교회 개척자로 변화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비천한 자로부터 가장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구원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복음은 오늘에도 여전하다. 복음은 흰두교를 위한, 불교를 위한, 회교도를 위한, 정령 숭배자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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