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생각하기엔 쉬운 말이 막상 하려면 쉽지 않네요....
요새 메이커 한번 안입어본사람.. 안신어 본사람 몇이나 될까요..
저는 낳을때부터 고생이였답니다..
저희 아버지랑 어머니는 나이차가 13살이라는 엄청나죠...
아버지는 말을 잘못해서.. 노가다 잡부로 평생을 사셧죠...
제대로된 월급 한번 가져오지 못하셧구요
그런 아버지랑 결혼하신 어머니는 3급 장애인이시구..
그속에서 태어난 저는.. 태어 날때부터 힘들게 태어나 세상을
부모님 한번 보지못하고 태어날뻔했엇죠..
그새벽에 저는 나오려고하고 아버지는 일찍 일하러 나가셧고..
저희집이 다른일반집보다는 못살았거등요..
그새벽에 저를 낳으려면 그당시 80만이라는 큰돈이 필요했었죠..
그래 그래 힘들게 새벽에 할머니께서 동네 찾아다니면서..
아침에 은행문이 열리면 주겟다고 힘들게 빌리신돈을...
간호사에게 맡겼지만.. 그 간호사는 그당시에도 읍내나 이런곳에서
주로 활기치고 다닌다는 사기꾼 출생아 수술비를 가지고 도망가기
로 유명했었죠..
저희집안은 가방끈이 짧아 인간이라는 정하나만믿고 그렇게 큰돈을
냉큼 주셧죠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그 간호사
그제서야 사기당한걸 알고.. 저희 큰고모부한테 연락을했엇죠..
그리그리 간신히 저는 대구 파티마 병원이라는 곳에서 ..
엄마 배속에서 8개월만에 태어났엇죠..
그뒤로 어머니는 더이상 아기를 가질수없게 수술을 하셧죠..
큰고모와 할머니는 엄마에게 제가 죽엇다고 전햇답니다...
왜냐면.. 저희집 형편으로썬 도저희 저를 키울 형편이 안됬었죠..
그래도 어머니는 시체라도 보고싶다고 그리 간절히 부탁해서..
저를 보게된거죠.. 죽은건아니지만요....
이일을 알게된건 2년뒤 아버지께서 그당시 88고속도로 때문에,,
그일이 끈나고서야.. 아버지는 알게되셧죠 ..
그래서 그병원에 혹시나 나타날까바.. 그 간호사를 기다렸다고합니
다.. 제가 이 이야기를 8살쯤에 들었는거같네요 그래서 저는
사촌들한테 복수한다고 큰 인물이 되겠다고 마음속으론 다짐했었
죠.. 저는 어려서부터 저런 장난감 놀이감 그리 사고싶었는데...
왜그리리 안된다고 하시는지.. 참 얄밉고 그랬죠.. 다른애들은 다잇
는데 말이죠..
그렇게 한학년 먹을수록 사촌형한테 옷도 물려입고.. 분명 옷은
아이들이 처음봤을텐데 목티라 옆에 빵구는 왜 나잇는지....
딴애들은 자기 혼자 방쓴다는데.. 왜 나만 엄마랑 아빠랑 같이셋이
서 자는지.. 할머니는 제가 3살때 밭에서 정구지 메시다 뇌출혈로..
돌아가셧다고 하셧죠.. 늘 아버지께서 살아계셧으면.. 참 조아했을
거라곤 많이 그랬습니다..
그리 중학생이 되고.. 차츰 여러 개성있는 애들도 만나고...
차마 그런애들하고는 어울리지도 못하겠고..
동네 친구라 하나 있는놈은 부자라.. 같이 말해도 날로 갈수록
피하는지.. 참.. 한판 붙으면 암것도 아닌게말이죠.. 무시하고...
왜 동복을 입게되면.. 그 교복을 세탁하나요 ``?
저는 이옷은 빨래를 못하는 옷이니 그렇게 더럽히지말라고하시는
지.. 그런 동복을 하복입을때까지 한번안빨고 입엇다죠...
저희집은 할머니대신 시장에서 조그만한 채소를 팔았죠...
밭에서 쑥이나 정구지 이런걸 따서 팔고 했었죠..
저는 새벽부터 일어나 몸 불편하신 엄마 대신 그걸 배달하고...
학교를 마치고도 밀린 배달하고 그랬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저한테 공부하라는 소리는 하지안았답니다..
다른 애들은 많이 너무 귀찬게 들릴정도로 듣는 말인데 말이죠..
저는 학교에서 늘 맞앗답니다.. 숙제를 안해서.. 한날은 너무 속상해
서 엄마한테 말햇죠.. 엉덩이를 보여주면서.. 학교다니기가 실타고..
그런 어머니는 왜 숙제를 안했냐고 저한테 묻지도 안았답니다...
배달로 시작해서 배달로 하루 마치니.. 숙제라곤.. 연필한번 집에서
안잡아봤죠.. 책상도 없었구요... 한날은 아파트 단지에 단체로
김장을 담군다고 젓갈을 배달 해달의례가 왔답니다
그래서 구르마라고 잇는데 그걸 끌고 그아파트에 갔더니
경비 아저씨가 에레베이터를 못타게 하더군요
젓갈 냄새게 베기면 자기가 욕먹는다고.. 그 마지막 배달해야할곳이
14층인데 말이죠.. 어쩔수있습니까...
한 20분 끙끙 대면서 14층에 와서 벨을 눌렀죠
그런데 문을 연 아이가 제또래 인거 같았어요.. 제가 16살일이였으
니 코를 찍 마으면서 ㅇ ㅏ 냄새야 그러면서 말하는데 얼마나 얄밉
던지.. 그애 어머니가 와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지만..
애가 참 할말은 다하더군요 자기는 냄새도 안나나바.. 하고가버리
는 참 내려오면서 생각햇습니다.. 왜 이래야하는지.. 어쩔수없이
내가 아니면 할사람이 없으니.. 왜이래 속상하던지..
내가 만약 결혼하면 내꼴나지는 절대 안나게 키워야겠다고..
악착같이 돈벌어야겠다고... 고등학교들어와서는.. 어머니께서
만이 아프셔서 더이상 시장에서 일을 하지못했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는 더 큰부담이구요.. 한번 객지에 나가서 3~4달
기본이고 6개월씩 나가서 돈을 벌어오곤했지만..
정작 받는돈은 일반 노가다하는사람 2달치도 못벌엇죠...
나이가 만타고.. 제나이가 17살이믄.. 어머니가 37살이고..아버지가
50살 이시니.. 머 있겠습니까 만만한놈 좀 재수없는 것들 몇놈잡아
서 실컷 족치고 학교 그만두고 일했답니다.. 그러면서 돈을 버는데
그것도 쉬운게 아니더군요 엄마 시장에서 잔소리는 그래도...
내가 안하면 엄마만 손해인데.. 제가 유리했지만.. 사회생활이란게..
그게 아니더군요 그만두면 저만 더 손해더군요.... 그렇게 주요소
배달 안해본게 없이 한곳에서 6개월씩 잇다 딴곳옴기고 ..적성이
안맞으니.. 별수잇나요.. 그러다 더이상 아버지는 노가다에 힘겨우
시고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셨죠... 제가 돈조금 모은걸로
여기서 이렇게는 큰돈을 못버니 읍으로 나가서 사글세라고 얻어서
살자고 그래야 돈을 더 벌수잇다고 말해서 읍내 월50에 10만하는
방하나 구해서 살았답니다.. 그러면서 공장생활을 1년 반정도하고
어느정도 돈모았나 싶더니.. 아버지께서 작년 20살에 돌아가셧답니
다.. 그영감참... 돈좀 모아두고 가지.. 장례비로 그동안 모았는거
싹털어서도 안되는거 부저돈 모아서 .. 장례치루고..
저는 처음알았네요 사람죽으면 다되는줄알았더만.. 먼돈이 그리
들어가는지.. 지금껏 살아온게 참 헛수고 같이 느껴지고...
이제서야 모든게 후회되더군요.. 어렸을때 왜그리 사고싶은거
안사주고 안된다고하는지...
안된다고 말하지만.. 정 사주는것보다 못하고.. 얼마나
자식에게 미안한 말인지.. 이제서야 느끼게되네요..
다른 부모 그렇게 공부하라고 말하지만... 그럴 시간도 형편도
안되는 저에게 그렇게 담임한테 맞는데 왜 숙제안하니 라고
말한번 못하시는 어머님.. 얼마나 속상하고 저몰래 눈물 흘렸는지..
저도 남들 어른들이 하시는 인생이야기 미리 계획해라.. 생각해라
등등 하는 자기 소실적 이야기 지겹도록 들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본인 자신은 그순간 네네 예예 하겠지만 그걸로 흘려듣지
마시고.. 다 맞는 말이고.. 깊은 사연이 잇는 말이랍니다...
지금도 알바하는 곳에서 60만원버는데.. 방세 15만원에..휴대폰비..
전기세 물세... 막막 합니다 한달이라는시간.. 60만이라는 한정액에
서 어떻게 해야할지.. 이렇게 살다보니 친구들하고도 멀어지네요..
친한친구가 술한잔 먹자고해도.. 제형편이 이런데.. 어떻게
맘편히 마실수가 있겠습니까.. 그친구도 제사정 알면서 내가살께
내가살께 하지만.. 제가 미안해서 도저히 만나지를 못하겠습니다..
정재야 미안하다 니가 마흔이되고 성공하면 이 지금 겪었던거
그때쯤이면 나도 떳떳하게 그때 왜그랫는지 말을 해줄수있겠구나..
저희 사장님도 저처럼 힘들게 사셧답니다..
그래서 늘 저 붙잡고 이야기를 한답니다
모든건 결혼을 하고나서야 후회한다고 자기 자식들 낳봐야 부모심
정 알꺼라고.. 그때 왜그랬는지..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막는 말이더군요.. 자기 마누라 땜에 죽지는 못하지만
자기 자식을 위해서 죽는다면 죽을수있겠다고....
그게 부모님 정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무슨 소리하는지 이거 왜적었는지도 잘모르겠답니다..
그냥 내가 어찌산건지 글로 한번 적고 싶었을뿐이라고 생각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