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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성진명 |2006.10.29 17:04
조회 29 |추천 0

일본 열도의 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沖繩)는 일본 본토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땅이다. 에메랄드빛 산호바다와 야자수, 망글로브 등이 빚어 내는 남국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일본사에 편입되지 않고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이어 온 류큐(琉球)왕국의 역사와 전통이 아직도 살아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본도와 동서 1,000km, 남북 400km의 넓은 해역에 점점이 흩어진 160여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진 오키나와에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한 데는 임진왜란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당시 조선 침략의 중심은 나중에 메이지(明治)유신을 이끈 사쓰마(薩摩·현재 가고시마현)의 군세였다. 이들은 조선 침략과 거의 동시에 류큐왕국을 침략, 1609년에 사쓰마의 조공국으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으로 대한해협을 바로 건너오기 어려웠던 사쓰마 수군이 바닷길을 멀리 돌아 오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1492년 오랫동안 거듭된 3대 세력의 각축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 왕국을 이룬 류큐가 일본의 지방 영주에게 굴복한 것은 류큐왕국이 평화를 존숭, 무장을 완전 해제하고 '가라테'(空手·唐手)와 '유주쓰'(柔術·유도) 등 최소한의 호신술만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쓰마의 조공국이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류큐왕조는 통치권을 행사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역사가 끊겼다.

오키나와 최대 도시 나하(那覇)에 남아 있는 류큐왕국의 도성 '슈리조'(首里城)의 정전에는 '만국진량(萬國津梁)의 종'이 걸려 있다.

한자로 새겨진 명문은 '류큐는 남해의 승지(勝地)에 위치해 삼한(三韓·조선)의 지혜를 본받고, 대명(大明·중국)과 일역(日域·일본)을 보거·순치(輔車脣齒·불가분의 관계)로 삼아…만국의 진량(津梁·가교)으로서 이산지보(異産至寶·이국 산물과 보물)가 나라에 넘친다'고 적혀 있다.

평화의 나라, 아열대의 풍부한 물산과 한중일 3국을 비롯한 동남아와의 해상교역으로 번창하는 나라를 겨냥했던 류큐왕국의 이상을 보여 준다.

이런 평화의 이념은 역사의 변전(變轉)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2차 대전이 끝나가던 45년 4월 미군의 상륙으로 펼쳐진 오키나와 전투는 일본 유일의 지상전으로 극도의 참상을 드러냈다. 이 전투는 민간인과 병사 등 20만여명이 희생자를 낳았다.

미군의 본토진공에 대비해 일본군이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편견이 참상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을 총알받이로 내몰았고 패배를 눈앞에 두고는 집단 자살을 강요했다.

2000년 7월의 G8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오키나와를 찾았을 때 나하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당시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편견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한동안 오이타(大分)에서 지냈는데 당시 주변의 일본인들은 나를 '류큐진'(琉球人)이라고 부르며 별종으로 대했다. 한반도 출신의 '조센진'(朝鮮人)과 마찬가지로 류큐진은 차별의 대상이었지 일본 국민은 아니었다."

오키나와의 불행은 2차대전 이후에도 이어졌다. 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은 영토 주권을 회복했지만 오키나와는 미군의 점령지로 남았다. 72년 일본 영토로 반환됐으나 점령 당시의 미군 기지는 그대로 존속했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75%의 주일 미군 기지가 밀집해 있고 오키나와 본도는 전체 면적의 약 20%가 미군 기지로 수용돼 있다.

95년 미군의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한동안 물밑으로 숨었던 오키나와의 반미감정이 폭발, 기지철수·축소론이 비등했지만 특별한 해결책은 나오지 못했다.

반경 2,000km안에 한반도 전역과 홋카이도(北海道)를 제외한 일본 전체,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홍콩을 잇는 중국의 중심 지역, 필리핀의 대부분이 포함되는 동북아의 전량 요충을 미국이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군 기지를 고려한 중앙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천혜의 관광자원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의 경제수준은 47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낮다. 미국은 물론 일본 정부에 대한 오키나와의 불만과 이에 따른 독립론이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다만 세계 제1의 장수국 일본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장수 지역이자 오랫동안 '시마우타'(島歌)라고 불려 온 전통 음악을 이은 '오키나와 팝'이 일본 대중음악을 선도하는등 문화적 자부심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   :  http://www.cyworld.com/sjm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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