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은~~~~ "
정말 좋은 곳이였다...
자려고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처음 고급 HSK 시험을 본 기억이 났다.
HSK는 듣기,문법,독해,쓰기,말하기 등등으로 구성되어있는 중국어 인증 시험인데,
그 시험을 위한 마지막 모의고사의 말하기 시험에서 고향을 주제로 말하는 문제가 나왔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서울의 모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는 말과,
어디어디를 거쳐 마지막 서울 거주지가 둔촌동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뿐,
나의 고향으로서의 서울을 아는게 없었다.
집안의 가풍상 내 위로 몇대의 조상님들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하여,
할아버지 윗대까지 대대로 우리 집안의 고향인 개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도 있었고,
부모님이 막 결혼하실 때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어서 서울 이야기를 지어 낼수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저는 제가 태어난 서울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가르키는 말이지만,
제 맘 속의 고향은 따로 있습니다. 그 곳은 제가 7살이 넘어서 온 도시이긴하지만,
10년을 넘게 살면서 정든 그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그 곳을 묘사하기란 참 쉬운 일이였다.
내가 가보지도 못한 개성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전달하는 것보다,
여러 자료와 단편적인 모습만을 알고 있는 서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정말 듣고 보면 별 내용도 없는 그저그런 평범한 도시의 이야기를 하는게 더 낳다고 생각한
이유는..............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해서 점수를 잘 받겠다는 첫번째 이유가 있었지만-_-;;;
내가 말하고 싶은 도시였기 때문이기도했다.
나는 지금도 내가 7살부터 17살을 꽉꽉 채우면서 산 그 곳을 아주 잘 기억한다.
빈 종이만 주면 내가 살던 곳부터 시작하여 뒷산의 등산로, 마을의 구조, 공원의 위치와 모양,
오른쪽 마을, 왼쪽 마을, 앞쪽 마을, 그 건너의 마을, 이쪽 지하철역부터 저쪽 지하철역까지....
백화점과 도로, 내가 다니던 학교의 내부구조, 학교 앞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의 위치까지..
모조리 다 그려낼 수가 있다.
그 곳에는 내가 100번이 넘게 약속 장소로 정하고 친구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던 곳도 있고,
1000번이 넘게 드나들고 기웃거리기도하면서 사사로운 추억을 남겼던 곳도 있으며,
10000번이 넘게 걷고 생각하고 느끼고 쉬었던 곳도 있다.
10년이 넘게 매일 복습과 복습을 반복한 그 곳을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할 것 같다.
( 내가 10000번은 걸었을 길... 왼쪽은 내 집, 오른쪽은 내 초등학교..)
그렇게 밤에 혼자 궁상떨면서 HSK에서 고향으로 생각이 번졌을 때,
문득 『삼포가는 길』이 생각났다.
읽은지 오래된 소설이였지만 꽤 많은 장면이 생각났는데,
그 중 가장 생생한 것은 도망치던 여자(이름은 다 까먹었지만;;)와 남자들이 만나던 장면,
그 여자가 "내 배위로 지나간 남자만해도 한 사단이야!"라고 말한 장면..;;;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여자에게 표와 빵을 사주던 남자의 마음과 울던 여자의 마음,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들이 오랜 세월만에 가는 고향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내가 자신의 고향이 거진 다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낮설어하다'라고 묘사한 장면이다.
당시에 그것을 읽었을 때, 마지막 장면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저 소설의 성격을 잘 살리는 좋은 끝마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느끼는 것은 정말 그것과 틀리다.
저 낮섬을 이때가지 내가 머리로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은 내가 그때의 나와 달라졌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 고향...을 생각하면 너무 편하고 그리운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어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어른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지금은 알 것 같다.
마지막 나의 쉼터,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과 그리움.
상투적인 표현들이지만 나도 이제 고향을 이렇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