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의사다.
의사 국가고시를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고,
지옥보다 조금 더 잠을 덜 재우는 유명한 병원에서의
인턴과정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성적으로
마쳤다.
의사로서의 그의 삶은 전도유망했다.
아니 하였다.
전공의 시험을 보러 가던 12월 어느 날.
길거리는 갑자기 내리는 눈으로
난리가 났다.
버스 전용차선에서는 속도를 죽인채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마냥
버스들이 꼬리를 물은채 정차해 있었고, 다른 차선들의 차들은
끝없이 땅을 향해 부딪히는 눈송이 처럼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시험장에 늦을까 조바심이 났다.
택시안에서 서둘러 계산을 하고, 시계를 보면서
시험장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였다.
아무리 복잡한 거리지만
채 1km가 되지 않는 시험장까지
남은 40분은 충분한 시간이였다.
추워진 날씨를 탓하면서 그는
가방안에 있던 MP3와 헤드폰을 꺼냈다.
그의 헤드폰은 음악소리를 벽으로 삼아
그에게 세상과의 단절을 선물하였다.
사람들 사이로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그는 황금빛 미래가 보장되는 시험장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었다.
그는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거대 기업이 운영하는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병원의 성형외과 레지던트!
9년전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던 날 꿈꾸던
자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는 정말로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워했다.
겨울의 날씨와는 반대되는 향기로운 미래의 봄날이
갑작스럽게
깨졌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색과 녹색으로 된 크고작은 원들이였다.
"아저씨,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원 아래, 숨어 있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눈처럼 하얀 얼굴. 눈보다 더 큰 눈물을 흘리는
꼬마숙녀였다.
"우리 엄마. 숨도 안 쉬고 움직이지도 않아요."
나이에 비해, 상황에 비해
아이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시험 시작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다.
'딱 10분만 살펴보자. 그리고 119에 신고하면 되니까
충분할꺼야.'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의무감보다는,
천사처럼 초롱초롱한 꼬마의 눈망울에
끌려 그는 움직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로 들어간 나는
쓰려져 있는 여인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녀의 체온. 땅바닥에
쓰러진지 벌써 몇분은 지난 셈이였다.
"아무나 119에 신고좀 하세요. 전 의사입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기 시작한다.
CPR... 응급실에서 지겹도록 해본 것이다.
호흡보조 2번에
가슴압박 15번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환자의 입안에 불어 넣으면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두손을 깍지지고
흉골 중간쯤을
갈비뼈가 금이 갈 정도로
힘차게 누른다.
그렇게 몇번만 하면 된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살아나도 휴우증이 크다.
최소한의 시늉을 넘는 정도로
나는 나의 양심과 나의 행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조금전까지
침착하던 꼬마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엄마, 죽으면 안돼."
꼬마녀석, 죽음이 뭔지는 알까?
꼬마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른들과는 다르다.
친구가 전학을 떠나 같이 놀 수 없는 것이나
친구가 죽어 같이 놀 수 없는 것이
다름이 없다.
꼬마들은
어른들이 누군가가 죽고 난 후에 생각하는 여러가지 것들.
재산, 유산, 자살인가 타살인가, 보험, 숨겨진 이야기
그런 일상적인 죽음이 가져오는 부록들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냥 있다가
없어지니까 슬픈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확하게 CPR을 실시하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신고한지 10분이나 지났는데, 왜 구급차는 안 오는 거야!"
"길을 봐요. 눈때문에 엉망이니 시간이 걸리나 보네요."
그의 시험 시작까지는 20분이 남았다.
그는 조금씩 여자의 가슴을 누르던 손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는 천천히
여자의 입술에 입을 댔다.
'폐는 잘 올라오는데, 자발호흡이 왜 안돌아올까. 이 여자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건가.'
조금의 연민을 느끼던 찰나,
반짝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눈물 모양의 펜던트
웬지 모르게 익숙한 꼬마의 목소리.
머리가 있고 있던 사실을
입술이 먼저 깨달았다.
"경민....................."
그녀다.
그의 심장은 갑자기 기어를 올렸다.
그의 몸은 지방을 태워 에너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욱 깊에 그는 그녀의 가슴을 눌렀다.
리듬감을 잃었다.
15번을 눌렀는지 17번을 눌렀는지
알수 없었다.
다시 입을 맞춘다.
급하게 공기를 불어 넣는다.
가슴을 보지 못한채
그녀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주위는 더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전화좀 해봐. 벌써 20분이 지났다고."
그는 갑자기 모든 행위를 중지하였다.
지치지도 않고 울던 꼬마가 그런 그를
바라본다.
"꼬마야 몇살이야?"
"다섯살이요. 우리 엄마 살았어요?"
"꼬마야, 너 산타클로스 믿니?"
"네. 엄마가 오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보여준다고 했어요."
"그럼 꼬마야, 우리 같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빌자. 엄마 정신차리게 해달라고. 알았지."
숨을 돌린채
바닥에 누은 그녀를 향해
그는 크게 외쳤다.
"전흉부 타법"
그의 주먹은
땅으로 향했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살아나라고, 내가 성공한 모습을 보고 배아파하면서 후회해야 할 너란 말이야. 살아나라고.'
그녀에 대한 원망과 5년이 지나도 남아버린 애증은
그의 주먹에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쿵"
한번의 주먹질에
그녀의 움찔거렸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오나보네. 뭐야 30분이나 걸렸잖아."
그는 다시 한번 주먹을 치켜세웠다.
'신이시여, 내가 그녀에게 퍼부었던 모든 저주의 말 다시 저에게 돌려주십시요.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녀를 잃었던 것 처럼, 그녀의 자식에게 똑같은 슬픔을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1초였다.
그가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서
늘 가슴 한 구석에 남겨두었던
그녀에 대한 마지막 미련까지
지워버린데 걸린 시간은...
"정신이 나십니까?"
히터로 훈훈한 구급차 안
누워있는 그녀,
그녀의 딸,
구급요원
그리고 그....
꼬마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그에게 씌우려 한다.
"아저씨, 우리 엄마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드릴것이
이것밖에 없어요."
"요녀석봐라, 아저씨는 필요없어요."
"아니에요. 엄마가 늘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 고맙다면 꼭 표현을 해야 한다고, 안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했어요."
5살짜리가 후회라는 단어를 경험해 보았을까.
그는 자신의 시계를 풀러서
꼬마의 손에 채워주었다.
커서 자꾸만 흘러내렸다.
"그럼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 네가 힘차게 우는 덕분에
끝까지 힘이 들지 않았어."
시계를 푼 그의 손목은
꼬마의 하얀 얼굴보다 더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
하루가 지났다.
의식을 차리고,
남편과 아이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는
안도의 웃음을 보였다.
"엄마!"
"여보"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한덩어리가 되었다.
딸의 손을 매만지던 그녀는 커다란 덩어리에 놀랐다.
"이게 뭐야?"
"엄마, 이거 산타클로스 의사 선생님이 주셨어."
"산타클로스?"
"기억 하나도 안나지? 당신 쓰러졌을때, 살려주신 선생님이 우리 딸내미 이쁘다고 주셨대. 참 우리 그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절이라도 해야해. 그 선생님 당신 살리느라고 중요한 시험도 못 보셨다고"
"그래? 어디 보...."
그녀의 손은 힘없이 건내 받은 시계를 떨어뜨렸다.
처음 그녀가 선물했을때보다 많이 바랜 가죽 밴드.
그리고 여기저기 생긴 흠집.
하지만 그녀의 눈에 쏙 들어왔던 본체의 빨간 베젤은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누가 오랫동안 잘 닦아준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말한다.
"그때도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6년전 겨울,
초롱한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에
눈이 팔려 떨어뜨린
그가 건낸 선물 박스에 함께 들어 있던 쪽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산타클로스보다 아직은 낯선 내 이름이겠지만,
일년에 한 번 나타나는 그 할아버지보다
앞으로는 더욱 친숙한 사람이 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