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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를 보다 김추자를 생각하다

정은영 |2006.10.31 23:31
조회 69 |추천 0


 

 를 보는 동안 나는 '인간성의 따뜻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잊혀진 것들'에 대한 대책없는 연민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비와 당신'이라는 새로운 영화 주제곡 밑에 묻혀있다가도 문득문득 튀어오르는 신중현의 '미인',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옛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철 지난 양복을 입은 안성기의 모습. 과거의 기억에 갇혀있는 채 도무지 현재의 시간을 견뎌낼 의욕을 갖지 못하고 있는 박중훈의 모습…….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들의 나열을 묵도하면서 나는 '빗속의 여인'을, '김추자'를 생각했다. 


 옆에 앉아 영화를 보던 80년대생인 동갑내기 친구는 '빗속의 여인'을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만약 그 친구가 김추자의 몽환적인 자태를, 전위적인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면 그애는 나에게 가장 끔찍한 동갑친구가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열광하기 시작하여 듀스, 룰라 등의 가수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일반적인 80년대생이 아닌가?)


 김추자,

 김추자는 트로트 가수들과 통기타 가수들이 범람하던 70년대에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여성 록커이다. 전형적인 청순녀 스타일인 긴 생머리와 청바지를 고수하며 시낭송을 하고 촉촉한 풀잎처럼 미소짓던 박인희와는 대조적으로 머플러를 머리에 두르고, 셔츠 단추는 다 푼 채 아랫단만 묶고, 타이트한 나팔바지를 입은 김추자는 당시에 가위 '스팩터클' 이었다고 한다. (김추자는 당시 록의 대부인 신중현을 찾아가 제자가 되어 음악연습을 한 뒤 신중현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를 몰고다녔던 김추자는 당시 대중가요 지형에서 돌출, 그 자체였다. (이미자, 하춘화, 조미미, 김상희, 정훈희 등의 여자가수들이 당시의 평균율이었다) 70년대 중반 가요계의 매카시즘이었던 대마초 사냥으로 격추되기 까지 김추자는 당시 가요계에 새로운 긴장의 틈새와 이단점의 제공처였다고 한다.

 

 김추자의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나의 모든 감각들이 끈적끈적해지는 느낌이다.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몽환적인 음색을 내뱉는 그녀의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도무지 쿨해질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끈적거리며 타자들에게 달라붙고자 하는 욕망의 기운을 느낀다. 김추자에 대하여 추억하는 이들이 남긴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70년대 대중음악 역사의 이단아임을 느낀다.

 물론 우리들의 역사는 박정희의 '긴급조치'를 비롯한 대중문화 정책에 대해서 소략하게 기록하였을 뿐, 김추자의 존재의미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역사가는 사실을 기록하고(반문하는 이들도 많지만) 가수는 유행가를 부른다. 역사는 역사서에 남겨지는 것으로 존재하지만 유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는숙명을 지니고 있다. 가끔 추억이라는 여유로운 행위에 의해 사람들의 입가에 올려지기도 하지만, 유행가는 타고난 속성대로 과거라는 시간 속에 갇힌 채 존재한다. '빗속의 여인'은 70년대라는 시대안에서만 '파격'이고 '돌출적인 노래'이다. 200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향수이거나 관심 없는 노래이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래인 것이다. 그럼에도 '빗속의 여인'으로 표상되는 옛 유행가가 의미있는 것은 그 노래 자체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노래에 열광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나는 옛날 유행들의 흔적을 좇아가보기로 했다. 유행은 새로움이라는 이미지를 살포했다가 또 다른 새로움에 밀려 묻혀버리기 일쑤인 '서글픈 존재'이다. 그것은 마치 삶의 비루함을 느끼게 하는 일면이 되는 것 같아서 내게 '비루한 것'이 된다.

 

 나름대로 삶의 비루함을 견뎌보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인지, 그것을 즐겨보고자 하는 속셈인지는 우선 좇아가본 뒤에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그것은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전차'를 타고 역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옛날 유행이라는 '비루한 것들'에 대하여 성찰해볼 것이다.

 

 그러나, 대체 옛날 유행들이 비루하다고 소리칠 수 있을 자격이 내게 있는 걸까? 고작 스물 일곱살밖에 먹지 못한, 80년대생인 내가!

 


* 김추자에 관한 평가는 이성욱의 『쇼쇼쇼-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43~45쪽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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