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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가을 풍경

허영우 |2006.11.01 00:33
조회 104 |추천 1

그곳에 가면 나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영화평론가 주유신을 설레게 하는
영화 속 가을 풍경

 

누구나 달콤한 사랑에 빠지고 싶고,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싶은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이제는 편안한 안식을 찾고픈 계절, 문화 예술과 함께 이 가을의 여운을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아마도 촬영현장에서 겪게 되는 가장 신기한 일은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현장의 모습과 모니터에 담겨진 장면이 너무나 다른 느낌이라는 점이다. 빛을 통해서 셀룰로이드라는 매개체에 기록된 아날로그적인 화면은 뭔지 모를 따스함과 신비스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 속에 기록된 가을 풍경들은 우리가 자연 속에서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한 편의 명화처럼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영화 마을’로 불리는 전남 장성 금곡 마을은 시골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서정적인 곳이다. 영화 , , 등의 배경이 된 장소.

임권택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리얼리즘적 영화 언어와 한국적 미학 속에 담아 온 감독이다. 그는 (1993)에서 ‘한국적 소리’에 대한 집착과 완성의 꿈을 통해 ‘민족적 이상의 충족과 한의 승화 그리고 여성의 희생을 통한 인간 구원’이라는 알레고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다.

한때는 잘나가는 예술가로 대접받던 유봉의 삶은 일본과 서양의 음악에 밀려 판소리가 쇠락해 가는 과정과 나란히 장터나 잔칫집에서 여흥이나 돋우는 소리꾼의 신세로 전락한다. 이러한 과정을 영화는 ‘사라져 가는 것’이 지닌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한 상실에 대한 애도를 뒤섞어 더없이 비감하게 기록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가족이 추수가 끝난 늦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각각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가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전라도 지방의 소리와 어우러진 남도의 풍경은 우리 민족의 고난에 찬 역사와 한(恨) 자체를 공간화하는 것이자 떠돌이 소리꾼들의 고단한 삶을 잠시 동안 위무해 주는 의미를 지닌다.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3부작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의 한 장을 연 변영주 감독은 그녀의 첫 장편 데뷔작 (2002)에서 몽환적인 분위기와 진청색 바다를 지닌 경남의 남해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격정 어린 욕망을 우아하게 변주해 낸다. 

한 평범한 중산층 주부 미흔의 삶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부터 산산조각 나 버리고, 그녀는 스스로를 무기력감과 상처 속에 유폐해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유부남 인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끝나게 되는 ‘섹스 게임’을 제안받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마치 홀린 듯, 미끄러지듯 서로에게 빠져든다.

서로에 대한 충동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두 주인공은 자신들을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숲 속에서 정사를 나누게 되는데, 마치 인상주의 회화가 빛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물의 형상을 포착하듯, 이 장면은 스스로를 가두던 주저함과 우울함의 경계를 벗어나 서로로부터 해방되는 두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찬란하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으로 격조 있게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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