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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영화를 이겼다?

박수호 |2006.11.05 23:45
조회 13 |추천 0

 난타 전용관에 이어 또하나의 난버벌(non-verbal)퍼포먼스 전용관이 생겼다는 소식이 지난 9월에 있었다. 그 주인공은 에딘버러 연극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점프'.

 

 그런데 그 전용관은 원래 예술영화의 산실이라 여겨졌던 시네코아였다. 지금도 일부 영화는 상영하고 있지만 지하 2층은 '점프'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영화가 공연예술에 자리를 내준 게 사건이라면 사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희생'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리던 예술영화 거품시대가 막을 내린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시네코아라... 97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대학 시험보러 상경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터였다. 하룻밤 잘 돈을 아낄 곳을 찾는데 영화 '킹덤'이 국내 최초로 심야영화를 한다는 것이다. 위치도 종로라 안암동과 그리 멀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정이 되기 전까지 권커니자커니 하며 얼큰하게 취한 채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낭패였다. 금,토,일요일만 야간 상영을 한다는 거다. 목요일 밤이었던 관계로 우린 결국 근처 여관방에서 소리만 열심히 지르는 여관표 심야영화를 관람하다 기절하고 말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수업을 찢고 홀연히 '강원도의 힘'을 봤던 기억도 난다. 심야에 열렸던 영화 '록키호러픽처쇼'에서는 비오는 장면이 나오자 서로 물총을 쏘고 우산을 펴드는 마니아 틈 속에 섞여 '이게 서울문화구나'라고 감탄했던 '비서울권 자기비하'감도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평이 참 좋았는데 상영하는 곳이 많지 않았을 때도 어김없이 시네코아를 찾았더랬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코아아트홀'이었고...

 

 공연장은 북적였다. 예전에 극단에서 일했을 때 보면 일요일엔 사람이 더 없었다. 다 놀러 나가느라 공연보러 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자체 분석이었다.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얇다는 자조섞인 한탄도 했다. 하지만 '점프'는 달랐다. 일요일 3시 공연인데도 만석에 가까웠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줄줄이 자리를 채운 영향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5년이 지난 오늘, 가족들끼리 놀러 나가는 곳 중 하나는 공연장이었던 것이다.

 

 공연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대사가 거의 없고 관객 참여를 위해 임시 대련의 장도 마련하고 아크로바틱, 태권도, 살사, 태껸 등 볼거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슬랩스틱은 관객의 수준에 따라서 혹은 문화차이에 따라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유치하단 사람도 있을 듯했다. 내러티브를 강화했다고 하나 여전히 빈 구석이 엿보이는 것도 숙제로 보이긴 했다. 출중한 무술 실력은 알겠는데 그것도 처음에는 '우와!'하다가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좀더 다른 거 없나'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속일 수 없다.

 

허나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앤딩 장면에서 다시금 배우들의 '투혼'이랄 수 밖에 없는 묘기들을 보고 나면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한결 바람이 싸늘해졌다. 옷장에서 잠자던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은 날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며 다시금 건물을 돌아봤다. 시네코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예매처 또 한켠엔 '점프'예매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보러 오는 사람보다 공연 보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공연이 영화를 이기는 날이 오기를 그렇게 빌었던 때도 있었다. 현장감의 진수를 잘 모르면서 왜 공연예술은 비싸냐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저며오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점프'는 분명 '난타'의 뒤를 잇고 있었다. 한동안은 계속 오늘과 같은 모습을 이어나갈 것이다.

 

시네코아는.... 영리한 대자본들이 속속 멀티플렉스를 디밀고 나올 때도 묵묵하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영화들을 내걸었던 극장이다. 오늘도 여전히 '조제 물고기~'를 상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겠다. '점프'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시네코아는 모르겠다. '희생'을 보던 관객들은 많이 줄었다.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타짜'를 보지 않으면 얘기가 안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관객들은 '붕어빵' 심미안을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추웠다. 오랜만에 겨울외투를 꺼내입고 나왔다. 하지만 '점프'로 몸이 달아오르자 외투를 벗었다. 그 상태로 공연장을 나왔다. '시네코아' 간판이 보였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왠지 다시금 외투를 입어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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