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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초반 캐리어우먼의 업그레이드 일화... <GIRL 걸>

백혁현 |2006.11.06 00:25
조회 43 |추천 0

 

  살다보면 ‘아, 이제 나도 어른이야.’라고 혼잣말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재수를 하던 시절 집 앞의 자그마한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다가 어느 늙수그레한 아저씨로부터(그래봐야 서른 안팎쯤이었으리라) 불을 빌려달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바로 그렇게 혼잣말 했던 것 같다. ‘아, 이제 나도 어른이야.’

 

  오쿠다 히데오의 이번 소설은 30대 초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여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 여러 가지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결국엔 그 부조리함을 적절하게 이겨나간다는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20대 중반 정도까지의 미혼여성을 부르는 영어의 GIRL을 (영어 사용하기를 우리보다 더 즐기는) 사용하는 나이를 완전히 벗어난 여자들이 느끼는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업그레이드 순간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얼마전 읽은 정이현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옛 애인의 결혼식날을 울지 않고 잘 넘기면서 스스로 어른이 된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띠동갑」.

  띠동갑인 신입사원을 지도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고사카 요코는 완전 꽃미남인 사원을 보고 이래저래 마음이 부산스럽다. 말도 안돼, 라고 계속 외치는 마음 속과는 달리 그에게 접근하는 여사원들을 질투하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의 주변을 맴돌게 된다. 하지만... “그렇구나. 신타로는 나의 현실도피처였구나……. 차분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현실을 마주보는 게 싫어서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남자를 짝사랑하며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게 모라토리엄이다.” 지나간 세월을 지불유예 하듯이 그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붙들어 매려 했던 자신의 오류를 낙관적으로 수정한다는 이야기...

 

  「히로」.

  과장이라는 직위를 부여받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부하 직원을 거느리게 된 다케다 세이코는 자신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남편, 하지만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낙관적이기만 한 남편의 마인드에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남자들끼리의 알력과 헤게모니 싸움으로 점철된 조직의 생리를 관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자신의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걸」.

  나이는 서른 둘이 되었지만 여전히 GIRL과 같은 생활을 하며 자신보다 더한 직장 선배에게 동경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다키가와 유키코는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자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제 걸이 아니야, 라고. 유키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서른둘씩이나 되었으면 이제는 젊음을 내세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는 그렇다... 세상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축복받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특권이 지금 손가락 사이로 점점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여자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알고 찾아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이야기...

 

  「아파트」.

  독신으로 살아가는 친구 메구미가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이시하라 유카리는 자신도 아파트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렇구나. 남자들은 가정을 가지고, 집을 사고, 융자금을 짊어지는 것으로 서로 유대감을 가지게 되는 거구나. 회사에 묶인 몸이 되어야 온전한 회사 사람으로 보이는 거구나.” 그리고 그 순간부터 스스로에 대해 그전과는 다른 책임감을 갖기 시작한다. 이시하라 도지사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저돌적이었던 그녀는 그래서 간간히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폭발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러한 당당함이 결국 그녀를 지키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독립심에도 힘을 부여한다는 이야기...

 

  「워킹맘」.

  일하는 엄마인 히라이 다카코는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의 선처로 한가한 부서로 인사이동을 했지만 아이가 얼마간 자랐다는 생각에 다시금 영업부로 복귀한다. 글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을 향한 배려들이 오히려 히라이 다카코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하지만 어느 순간 히라이 다카코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다른 부서 동갑내기 여자와의 기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 이제 나도 어른이야. 그때 내가 나도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어린 시절의 해프닝이었을 뿐이야.’ 라고 저도 모르게 과거의 순간을 번복하고야 마는 현재의 순간이라는 것도 있는 것 아닐까... 직장 여성을 소재로 한 꽁트에 가까운 오쿠다 히데오의 단편들은 소소한 읽을거리로는 충분하지만 길고 긴 인생의 엑기스를 제대로 뽑아냈다고는 어려워 보인다. 서른 초중반의 직장 여성들이 읽으면 조금쯤 자신의 처지를 상기하며, 얼핏 웃음짓거나 ‘말도 안돼’ 코웃음 치게 될 그런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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