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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지강헌

권민정 |2006.11.06 16:40
조회 36 |추천 0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이 사회는 너희처럼 큰소리치는 놈들이 망쳐 놓은 거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고, 돈 없는게 죄다! 나는 돈 없고 빽 없는 놈이라 이렇게 된 거다! 도둑놈?범죄자는 바로 너희 같은 놈들인데.... 바로 너부터 죽여버리겠다!” 사정없이 퍼붓는 폭언과 총부리를 거머쥔 지강헌의 눈빛은 살기로 싸늘하게 빛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북가좌동 골목의 현장에는 최재진과 인파, 경찰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탈주범들의 어머니, 애인, 가족 등이 밖에서 자수를 애타게 호소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집 안쪽에서는 지강헌이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 비지스의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핏 창문을 통해 탈주범들과 인질의 모습이 보였다. 지강헌과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 등 네 명의 탈주범들은 눈에 핏발이 선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권총과 칼로 인질인 고씨의 딸을 위협하며 경찰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인질로 잡힌 고씨의 딸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고 죽겠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게 한이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우리나라 법이 이렇다!” 탈주범 가운데 주범격인 지강헌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내 할말 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 세상에 마지막으로 시를 한편 남기겠다. 내 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이다!”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절규하는 그의 울부짖음 뒤로 가 마치 장송곡처럼 흘러 나왔다. 지강헌 사건"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 한동안 이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돈이 없으면 죄가 되고, 돈만 있으면 죄도 가벼워지는 어두운 시대의 모순을 향해 던진 한 탈옥수의 울분이었다. 이른바 ‘지강헌 사건’. 1988년, 온 나라가 올림픽 성공의 흥에 취해 있을 무렵 주동자 지강헌을 포함한 12명의 죄수가 이송 중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9일 동안 이들 일행은 수차례 인질을 바꿔가며 도주를 시도했지만,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했으며 가해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국 지강헌을 포함하여 최후에 남은 4인은 경찰과 대치하며 마지막 인질극을 벌였고,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목을 그어 자해를 시도했고, 그때 투입된 특공대는 지강헌 외 1명을 사살했다. 지강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이 70억원을 횡령 탈세하고도 고작 7년형을 선고받은 것에 비해, 잡범인 자신은 556만원 절도에 7년 언도, 보호감호 10년까지 포함하여 총 17년을 선고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탈주를 시도했다고 한다. 썩을 대로 썩었던 시대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사건이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강헌이란 인물 자체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강헌은 시인이 꿈이었고,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동료 탈주범에게 자수를 권고한 것, 마지막 인질 고선숙씨가 오히려 지강헌을 보호하려 든 것, 경찰과 대치하던 지강헌이 팝그룹 비지스의 를 틀어달라고 요구하여 하루종일 들은 것 등이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당시 이 사건은 사회의 밝은 면만 강조할 것을 강요했던 정부의 행태에 영향받아 그 진상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탈주를 시도한 한 잡범의 입에서 사회의 환부를 건드리는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이 주목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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