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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은 웰다잉으로 완성된다.

김진석 |2006.11.07 17:19
조회 52 |추천 0
웰빙은 웰다잉으로 완성된다
[웰빙의 마침표 ‘웰다잉’] ‘평안히 죽는 법’
노년기가 길어짐에 따라 ‘평안히 죽는 법’에 대한 관심 커져…
연구모임·강좌·보험 속속 등장
고령화 사회에선 노년기가 길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연장되지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편안히 잘 죽는 법인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웰다잉’이란 인생의 마무리를 밝고 아름다우며 품위있게 한다는 의미다.

노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건강하게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편안히 잘 죽는 것이다. 통계청이 올해 3월 100세 이상인 961명 중 796명을 직접 만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편안히 빨리 죽는 것’(23.8%)이었다. 자손 잘되기(21.8%)와 건강회복(16.8%)은 그 뒤를 이었다.

일본의 대표적 장수 지역인 나가노현에는 ‘핑핑 코로리’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팽팽하게 살다가 덜컥 죽음을 맞이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요약하는 말이다. 장수가 의미 있으려면 단순히 수명만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활기차게 살고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 서울시립노원노인복지관의 죽음준비학교에서 노인들이 역할극을 하고 있다.일본의 의사인 야마자키 후미오씨가 쓴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란 책은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현실에서 저자는 병원은 죽음을 맞이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16년 동안 1만명 넘는 환자를 진료하고 300명 가까운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고 “내가 만약 불치병에 걸려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면 마지막 순간을 절대 병원에서 보내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튜브로 호흡을 하고 수액과 진정제를 투여 받으며 자신의 의사표시도 못한 채 극심한 고통 속에 연명하다가 눈을 감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다. 이에 반해 저자는 바람직한 죽음의 사례로 40대 말기 암 환자의 예를 든다. 이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자 각종 약물과 치료에서 벗어나 마지막 몇 주일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엔 “지난 1주일이 지금까지 살아온 40여년보다 훨씬 소중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건열 단국대 의료원장은 ‘존엄사’라는 저서에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해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놓을 것을 권한다. 의식불명이 됐을 때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더라도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가 없다. 사전의료지시서는 그때를 대비해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의료진에게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적어놓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면 어떤 식으로든 삶을 연명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반대로 육체가 건강함에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웰 다잉’은 단지 고통을 줄이느냐 존엄성을 지키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이해와 결부돼 있다.

“죽음 준비는 삶의 시간이 제한돼 있음에 유념하면서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자는 것입니다.”

▲ 봉은사에서는 8주 과정으로 '웰다잉 체험교실' 강좌를 한다.지난 10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웰다잉 체험교실에서 오진탁 한림대 교수는 ‘웰빙 시대에 왜 웰다잉을 말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는 “평소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맞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죽음을 생각해 봄으로써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계기도 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서울대 서정선 교수(분자생물학) 등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주며 죽음을 종교적·철학적·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날부터 시작된 웰다잉 체험교실은 8주간 이어진다. 매주 월요일 낮에는 오 교수가 죽음과 관련한 시청각 강의를 하고 저녁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 8명이 ‘존엄사’ ‘호스피스 의사가 보는 웰다잉’ ‘바람직한 장례법’ 등에 관해 강의한다.

죽음준비 교육은 역설적으로 자살예방 효과도 있다고 한다. 오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 전과 후에 설문을 해보면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서울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선 5주 단위의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노인들이 자서전을 써보고 장묘문화센터와 장기기증센터를 방문하여 강의를 듣거나 변호사로부터 법률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죽음과 관련한 영화를 본 뒤 토론을 하고 캠프에 가서 역할극을 해보는 시간도 있다. 이밖에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노인복지관을 돌며 3시간짜리 죽음준비강좌를 열고 YWCA의 ‘멋쟁이 할머니 교실’에서도 유서나 자서전을 써보는 강좌를 연다.

학술적으로는 한국죽음학회에서 신학, 종교학, 간호학, 호스피스학 교수들이 일반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월례 포럼을 열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10월 25일 열린 포럼에서는 이원희 연세대 간호대 학장이 호스피스(hospice)에 관해 강의했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고 위안하는 봉사활동이다. 1815년 아일랜드의 수녀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가난한 환자들을 데려다가 수녀원에서 임종준비를 시킨 데서 유래한다. 국내에서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등 대부분의 가톨릭계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고 사회단체인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는 10여년 전부터 5000여명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배출해 여러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5년간 각종 죽음 관련 강연회와 세미나를 개최한 이 단체는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도 개설하고 있다. 4학기 강좌를 거친 수료자들은 양로원·복지관 등을 돌며 웰다잉에 관한 강연을 한다.

웰다잉 바람이 불자 관련 보험상품도 나왔다. 미래에셋생명은 사망보험과 장례 토털서비스를 결합한 종신보험 ‘미래에셋 웰엔딩보험’을 최근 출시했다. 이 보험은 보험금 지급과 별도로 계약자 및 계약자의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 540만원 상당의 장례토털서비스를 240만원에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복잡한 장례 절차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상품이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여 유언장을 써두거나 장례법을 정하면 살아남은 이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자손들이 장례법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는 흔하다. 일부 장례업자들은 마지막 가는 길이니 좋은 것을 해드리라고 유도하며 터무니없이 비싼 관이나 수의를 권하고 불필요하게 조악한 용품을 사용하도록 한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경제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장례 절차에 신경 쓰지 않아서 장례를 훨씬 더 경건하게 치를 수 있기도 하다.

죽음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면 오히려 막연한 공포감이나 걱정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므로 결국 웰빙에 도움이 된다.

박준동 주간조선 기자 jdpark@chosun.com
입력 : 2006.11.05 11:31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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