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책없이 버려진듯한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러시아에서의 첫번째 암울했던것과는 달리 왠지 오기가 발동을 하는것 같다.
특히 국경을 통과한후 갈길은 멀은데 사람은 없고 태양이 서편하늘과 지평선사이에 떨어지고 있는 경우라면...
아! 러시아에서의 황량했던 끝없는 대지가 던져주었던 무게감과 황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때의 느낌에 비하면 오히려 산뜻하다.
그리고 계절적으로도 러시아 입국당시의 8월과 거의 일치를 하였으나 이곳의 더위가 더욱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국경사이엔 이렇다할 강이나 산이 없어서 다소 의아스럽다.
대부분의 국경사이에는 지리적으로나 군사전략적으로 치고 받아야할 강이나 산이 가로막고 있는것이 상식적이다.
이 황량한 벌판에 놓인 덩그러한 오두막같은 입국소에도 서양의 하얀 피부들이 보인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고 단체로 서너버스에 탈 것 같은 인원들이 저마다 방향은 달리하여도 출입국 심사에 여념이 없다.
더구나 두명의 스위스에서 왔다는 서양 청년들은 자전거로 나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향하고 있엇다.
그들의 눈에는 아시아인 라이더를 만났다는게 신기하였었는지 카메라의 삼각대를 빼어들고 사진 거치대를 만들어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의를 한다. 그래 그들의 증인겸 기념품이 한번 되어주자라는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외국에서 상대방 라이더를 만나면 서로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식의 잠재의식이 발동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에서도 그 멀고 먼 땅덩어리의 어느 한 부분에서 우연히 프랑스 노인(?) 라이더를 만나 함께 도로에서 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목적지에 대하여 정보를 주고 받았던적이 있었다.
바람의 방향은 순풍이었으며 도로상태도 양호하였다.
독일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 두대에서 내려 투르크메니스탄으로의 입국심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하였는데 노인들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구성이 다양하였다.
수속을 먼저 끝내었으므로 모두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전거에 올랐다.
하루의 커튼이 내릴때면 늘 떠오르는 말이 '게으른 자는 석양에 바쁘다'
마치 하루를 게으름 피웠던 기분을 가져보며 발에 힘을 가하여야 했다.
독일인들이 머지않아 버스를 타고 달려와 추월을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엇으므로 혼신을 다하여 아쉬하밧 방향으로 나있는 도로위를 지쳤다.
바람의 영향인지 속도가 많이 붙었고 꺽인 더위탓에 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나라의 이름에 따라 느낌도 으느정도 유사하다.
왜이렇게 사람들이나 도로 그리고 자연환경들이 모두 투박하고 거칠은 느낌인지!
우즈베키스탄과 유사한 자연환경이지만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은 이란 터키등을 지나며 부딫친 적이있는 그런 유사한 유목민같은 외견을 보여준다.
황토집이라든지 더위를 막기 위한 토기 주전자에 천으로 덮어놓는 모습과 빵을 굽는 모습등까지 아주 흡사하다.
살라드란 말은 영어이지만 러시아에서부터 러시아권의 나라들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이었고
양고기를 얇은 쇠창에 꿰어 구워먹는 샤슬릭이란 말도 공통적이엇다.
아쉬하밧까지 민심은 그다지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고 우즈벡과 거의 같은 친절함을 받았다.
그런데 아쉬하밧을 포함하여 그이남으로는 사람들이 월등히 공격적이고 거칠은 태도를 보였다.
특히 외국인이나 여행객에 대한 증오심을 보이며 돌을 던지기까지 하는 마을의 아이들이 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한 20대의 청년들은 더욱 위협적이어서 금방이라도 주먹질이 나올것 같은 불쾌감으로 길도 묻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가능하면 50대로 보이는 사람들을 물색하여 길을 묻는 식으로 대처 하였다.
아쉬하밧에서는 분위기가 더욱 심각하여 서둘러 도시를 빠져나와 남으로 향한 도로를 타고 카스피해를 염두해 두었다.
언덕 한나 없는 평평한 지형이 벌판을 따라 이어지며 이란과의 국경으로 보이는 곳에는 달리는 방향의 좌편을 따라 산들이 늘어서 같이 달려 내려가고 있다.
모기가 밤이면 물었으므로 러시아 말인 "까말이 무노거"라는 말을 자주하게 되었다.
모기가 많다는 뜻이다.
하루저녁 2달러 정도의 숙소에서 머물다가 아쉬하밧을 지나 첫날밤에는 자정을 넘어서 까지 자전거위에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정적에 흐르고 있는데 청명하기 그지없는 달이 얼음처럼 높이 솟아있다.
매일보는 중앙아시아의 달밤이지만 이날처럼 얼음같아 보이기는 우즈벡의 남안강 못미쳐 자리잡은 거대한 산자락과 계곡에서 보았던 때 이후로 처음이다.
우주의 눈인양 우주의 감시자인양 응시하는 달빛은 골수를 쪼개고 별빛을 쏟아 부으려는 듯하여
정신이 쏴하다.
이슬람 국가들의 대부분은 국기에 초승달이 들어가 있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달은 지헤의 여신인양 깨어있을 것을 요구한다.
깨어서 수양하고 깨어서 사고하고 깨어서 판단하고 깨어서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달이 독야군림하고 별들이 금가루처럼 찬란하다.
밤이 낮처럼 밝은 그옛날 진주의 촉석루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이모님 댁에 머물렀던 때가 있었다.
자연이 맑고 공기가 오염되지 않닸던 당시의 밥하늘은 무수한 별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날개를 펼수 있었다.
진주의 금강과 진주의 촉석루의 달밤은 어린 내가슴을 무던히 깊숙히 파고들었엇다.
이렇다할 민가나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습관처럼 밤을 세울 마음을 미리 추스렸다.
간혹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들판에 호롱불을 기대하였다.
양치기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간 황량한 벌퍈엔 풀들사이로 풀벌레 소리만 이어졋다.
풀들도 외로와서 모여들고 불들도 외로와서 도로가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았다.
어두운 벌판에 달빛에 빛을 받아 지붕하나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인기척이 들렷다.
이미 늦은 시각이지만 일단 행동은 하고 볼일이엇다.
외로이 떨어져 있는 이름모를 작은 양치기 민가에 접ㅂ근하면서 미리 인기척을 내었다.
헛기침도 하고 영어로 인사말도 건네었다.
개가 짖기 시작하며 달려오는 듯하였다.
동시에 한남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개의 충성심을 무시하였다.
지팡이를 들고 어둠속에서 나타난 후리후리한 청년에게 영어로 하루밤 묵을 것을 부탁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손짓 몸짓으로 나의 의사를 밝혔고 상대방은 알아들은듯 집안으로 안내를 하였다.
개는 여전히 주위를 맴돌며 으르렁거려 심기를 불편하게하였다.
달칯조명 아래서 양치기인듯한 그청년은 자전거를 집벽에 세우고 지붕에 비스듬히 걸쳐진 사다리를 가리키며 올라가서 따라올라올것을 손짓하였다.
지붕에 올라서자 이불과 코란 그리고 차주전자등이 이곳저곳 널려있어서 이곳에서 밤에 잠을 잔다는 것을 알수가 있엇다.
모기는 없는 것 같아서 일찍 마음이 편안하다.
청년은 익숙하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와 대충이라도 씻을 수있게 배려를 하여주고는 다시 내려가 음식과 우유를 날랐다.
씻기를 마치자 먹을것을 앞에 내어놓고 먹으라는 흉내를 내었다.
허기가 있었으므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모래가 섞인 빵이었지만...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식을 먹게되어 다행일때도 있다.
음식을 먹기를 마치자 갈증으로 메마른 목은 많은 양의 차를 요구하였다.
이윽고 목동과 나는 각자의 이불을 덮고 하늘아래
누웠다.
달빛이 총년목동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유성들이 이따금 지상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국이 떠오르고 서울의 밤풍경이 눈에 떠오르는듯하다.
황토지붕은 한낮에 달구어져 밤이면 적당히 식으면서 일교차를 줄여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있었다.
양들도 잠이들고 새벽도 잠이들고 사방이 고요한 못잊을듯한 밤과의 안녕이었다.
새벽은 더욱 바쁘다.
다시 하루를 달려야한다.
이제는 마을들이 자주 보였다.
마을이 보이고 민가가 많이 보이면 외로움도 줄어든다.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수박으 비롯한 과일장수들과 음식장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낙타도 마을과 들판사이를 한적하게 오가며 멀뚱한 표정을 짓는데 겁이 많다.
밤사이의 바람은 사막의 모래를 옮겨놓기때문에 도로의 중간중간은 모래파도가 쓸고가며 점령한 곳이 생긴다.
어떤 때는 경찰초소에서 물과 차를 구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신분증과 필요한 검문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나라의 운전자들은 보드카를 많이 마시며 운전을 한다는 것을 어렵니않게 알수있는것은 길가에 빈 보드카병들이 많이 보이기때문이다.
각나라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곳에따라 콜라병이나 음료수 병이 많이 보이는 곳이 있고
동유럽처럼 빈 캔맥주가 많이 보이는 곳이 잇어서
운전자들의 운전문화를 엿볼수있엇다.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상점에들르는 운전자들이 보드카를 사들고 차에 오르는 광경이 자주 눈에 뜨었다.
그러다보니 달리는 중간중간 후미에서 접근하는 트럭등 대형 차들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멀리서부터 접근하는 후미차량의 소리가 들리면 눈을 돌려 운전상태를 살펴보았다.
움직임이 안정되었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대처를 하여야 했다.
카스피해에 접근을 하면서 만나는 숙박업소에서는
특히 과음자나 주정뱅이들을 많이 목격하게된다.
하물며 모텔 주인마저 안전을 책임 지지않느다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안으로부터 문을 잠그어도 도난이나 외부 침입자가 있을 수있다며 자전거도 실내라고 안심하지 말라고 재차 주의를 주었다.
창문도 온전한것이 없이 하나같이 깨어져있다.
그나마 음악을 저장하여 가져온 엠피3가 커다란 영혼의 안식이 되었다.
이제 정들었던 우즈벡도 아주 멀리 떨어졌고 카스피해를 건너서 아제르바이잔으로 발을 디딜날이 멀지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을 빌어보면 카스피해를 오고가는 훼리는 정기노선이 없다는둥 아예 카스피해는 배로 건널수 없다는둥 하는 상반된 정보만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부두에 다다르자 배편부터 수소문을 하였다.
제복을 입은 출입국 관리자의 말에 의하면 훼리가 있지만 승객이 어느정도 모여야만 배가 출항을 한다고 하였다.
정기 여객선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이제 배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편도배편은 팔지를 않는다고 생때를 쓰는바람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왕복 표값을 지불하였다.
아마도 경찰과 훼리사가 결탁하여 나누어 먹으리라는 심증이 굳게 느껴졌다.